이명순 데레사 (1990년 창간 당시 번역기자)
이명순 데레사(사진) 코리아 여행사 대표는 1990년 호주동아일보의 창간 멤버로 번역기자로 6개월 동안 근무했었다.
초창기 사무실은 캠시에 있었고 지금은 돌아가신 호주동아일보의 창립자 오직일 회장님은 사무실에 잘 나오시지 않았던 터라 제대로 된 기억이 없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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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으로는 편집국에 조동국 편집국장, 번역기자 3명, 취재 기자 3명이 있었다.
번역기자들은 모두 대학생이었고 난 당시 36세의 시드니대학 사회복지학과 학생이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틈틈이 번역한 기사를 손으로 노트에 써서 수요일에 신문사에 가져가면(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다) 조 편집국장이 내 글을 읽어 보고 만족할 때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 지시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한국의 중앙일보 기자 출신이었는데 기사 쓰는 것에 민감하고 꼼꼼하고 엄격했지만 좋은 분이었다.
번역기자들은 알아서 시드니모닝헤럴드와 데일리텔레그라프의 기사를 발췌했고, 내가 뽑아 번역한 기사들이 신문에 다 실릴지는 전적으로 편집국장의 결정에 따랐다.
물론 당시에는 모바일폰 같은 통신수단이 없어서 번역기자들끼리 기사가 서로 중복되는 경우도 있었다”
1990년은 유학생과 한인들 수가 많지 않았고, 신문이나 잡지가 3-4개 밖에 없었던 시절이라 그리 경쟁이 치열하지는 않았다.
그는 “당시는 컴퓨터 보급도 충분치 않았던 시절이다.
목요일 마감날, 기자들과 직원들이 전부 모여 기사를 프린터로 뽑아 사진과 함께 신문 모양으로 오려 붙이는 편집 수작업을 했다.

비록 시작 단계(처음엔 주간지)였지만 그야말로 전문가들의 손에서 신문의 형태가 제대로 갖춰진 신문다운 신문이 나왔다는 평을 들었다.
당시 사무실의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고, 회식도 1주일에 한번씩 하고, 나의 주급도 200-250달러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호주동아일보가 앞으로 더욱 더 발전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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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형 기자 catherine@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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