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기초반에 오는 대부분의 학생들을 모면 겉모습은 분명히 동양인 아니 한국인 같은데,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등 어느 것도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가 있다.
아마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시는 많은 선생님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이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첫 수업을 시작하는 날, 나는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우리들이 1년 동안 반에서 지켜야 할 약속 몇 가지를 정하였다.
그 중의 한가지 약속이 ‘교실에서만이라도 한국말로 말하기’ 였다.
영어권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 아이들에게 그것은 쉽지 않은 약속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한 약속이라 선지 되도록이면 한국말을 사용하려는 노력이 많이 보여서 아이들이 대견했다.
우리 반에 유난히 얌전한 여자아이 한 명이 있었다.
이 아이는 한국말을 알아는 들으나 말하기가 자신이 없어 언제나 조용히 선생님이 시키는 것만 했다.
그런데 방학을 마치고 개학 후 아주 활발한 아이로 바뀌었다.
알고 보니 방학을 맞아 이 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한국의 친척분들이 방문하면서 이 아이에게 좋은 한국어 선생님이 되었던 것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레 한국말을 사용하고 아이들에게 한국말로 대화를 많이 한 결과 아이는 한국말이 조금은 능숙하게 되었고, 한국문화며 한국음식도 좋아하게 되었다.
더욱이 한국말에 대한 자신감은 수업시간에 적극적인 자세로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렇다.
우리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단지 그 아이들이 어떤 것을 얼마만큼 체험하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들을 반성하게 되었다.
사실 난 우리 아이들에게 글자 몇 개, 한국 말 몇 마디만을 가르쳐 주었지 그 외에 해준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하여도 한국말을 잘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였는데, 방학 동안 친척들의 방문으로 한국을 많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기에 자신감 있는 아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기초반 아이들을 보며, 내가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잘 구사하는 것과 한글 습득을 완벽하게 해 줄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한 더 열심히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사용하고 한국의 이야기가 듬뿍 들어있는 이야기 책도 많이 읽어 주며 다양한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한글학교는 교육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3월이면 3.1절을 설명하면서 한국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태극기를 만들거나 색칠하는 시간을 가지며 애국가를 불러 보는 수업을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2대 명절인 설날과 추석은 학생들에게 한국적인 정서와 한글을 연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에 매년 특별활동을 하며 절기를 기억하고 즐기고 있다.
추석 하면 보름달과 송편을 빼놓을 수 없기에 학교에서는 학생들과 같이 송편 만들기를 하며 옛 조상들의 삶과 지혜를 배우고 본받고자 한다.
그리고 10월 한글날은 자랑스러운 우리글인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 대왕께 감사하며 후손인 우리들이 아름다운 한글을 잘 익혀서 빛내야겠다고 다짐해 보기도 한다.
그 외에도 한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기념일과 명절에 맞추어 그에 맞는 수업안을 짜고 학생들에게 그 의미를 설명하며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이해시키려 하고 있다.
외국에 사는 많은 가정이 그렇듯이 그 나라의 휴일에 맞춰 살다 보니 한국의 많은 기념일과 명절을 잊고 살거나 별 의미 없이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우리 한글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우리가 비록 해외에 살고 있지만, 뿌리는 한국이라는 것을 많이 가르치려고 하고 있으며 모든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좋은 수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시드니 시내에 한국문화원이 개원을 하여 한국 문화를 직접체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약 한 시간 정도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한국의 전통적인 것을 체험하는 시간을 갖게 하여 아이들에게 좋은 문화 공간이 되고 있다.
아이들에게 우리의 전통의상인 한복을 입어 볼 수 있는 체험 수업과 우리 영화 보기가 곁들여져 있으며 책이나 스크린을 통해 보기만 하던 부채를 만들고 자신이 만든 노리개를 달아보며 한국 문화에 빠져보게 한다.
몇몇 선생님들은 벌써 문화원을 견학하는 수업을 수업과정에 넣어 두셨다.
나도 이렇게 좋은 참관 수업을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하리라 계획해 본다.
해외에 사는 많은 교포 아이들이 한국말은 서툴지만 그래도 태극기를 보면 대한민국 국기라는 것을 알고, 애국가가 나오면 가슴 한구석에서 어머니의 나라 한국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한글학교가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아직 글 읽기가 어려워 새로운 낱말이 나오면 ‘아,야,어,여….으,이’ 를 속으로 중얼거리며 한 글자 한 글자 겨우 발음해내는 모습이 귀엽고도 대견스럽다.
그리고 한글학교에 아이를 보내기만 하면 금방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기 보다, 꾸준하게 한국 문화를 익히고 한글학교에 나오다 보면 언젠가는 한글도 깨치고 한국말도 자연스럽게 하리라는 희망을 가지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열심히 도와주시는 우리 학부모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배운 게 가르치는 거라 겁없이 시작한 한글학교에서, 가르친 것보다 배운 것이 더 많음에 감사 드린다.
내 건강과 열정이 허락하는 동안 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오늘도 나는 나의 길을 가고 있다.
유정애(시드니 한인 천주교 한글학교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