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정지용 作, ‘향수’ 중에서)향수를 읊고 있으면 너른 벌판과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 얼룩백이 황소의 금빛 게으른 울음, 풀섶 이슬과 서리 까마귀까지 포근하고 평화로운 모습의 고향을 묘사하는 언어에 매료되어 도시에서 자란 이도 어느 누군가의 시골 고향에 대한 묘한 향수를 품게 된다.
실제로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자연의 모습이나 소리에서 비롯된 기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봄을 알리는 개구리 울음 소리와 즈려밟기에는 너무나 고운 진달래, 여름이면 뜨겁게 울어대는 매미, 귀뚜라미의 가을 향연과 소복한 눈밭 위로 날아오는 철새 떼가 떠오를 지도 모른다.
호주의 숲 속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라면 집 밖의 화장실에 갈 때마다 변기 뚜껑에 붙어 있던 개구리를 먼저 쫓아내야 했던 기억이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출현하기 시작하는 크리스마스 비틀(Christmas beetle: 풍뎅이과 곤충)도 추억거리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것들을 추억으로 떠올리는 이유는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이기 때문만 아니라 이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소리와 풍경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실제로 호주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00년과 2009년 사이에 개구리 4종, 조류 23종, 포유류 27종이 멸종했다.
멸종된 식물도 48종에 달한다.
(ABS, 2009)호주에는 60-70만 종의 생물이 살고 있으며, 이 중 식물의 84%, 포유류의 84%, 조류의 45%가 호주에만 서식하고 있는 종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호주를 생물다양성 부국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생물다양성이란 무엇일까?생물다양성은 생물종의 다양성과 그 종들이 살아가는 서식처의 다양성을 총칭하는 말이다.
우리가 사는 환경 안에는 무수히 다양한 종의 생물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동물과 식물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서로에게 의존해야만 한다.
생물이 살아가는 이러한 방식을 생명의 그물망 (Web of Life)이라고 하며, 촘촘한 생명의 그물망으로 연결된 생물다양성 덕분에 우리의 삶이 지속가능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메뚜기는 식물 잎을 먹고 살며, 개구리는 메뚜기를 먹고,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는다.
그리고 수명을 다한 동식물은 박테리아 등에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모든 생물과 토양은 서로 관련이 있는 셈이다.
이런 먹이 사슬이 모여 생명의 그물망을 이루고, 이 생명의 그물망이 튼튼하게 연결되어야 생물다양성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따라서 이 그물망을 잘 유지하는 것은 생태계는 물론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생명의 그물망(출처: ThinkQuest)또한, 먹이 사슬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개구리의 수가 감소하면 그 먹이인 메뚜기 수가 늘고 천적인 뱀의 수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메뚜기가 먹는 식물 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국 개구리 수의 감소는 관련 먹이사슬의 붕괴를 초래하고, 나아가 생물다양성을 파괴할 수 있다.
개구리의 수가 정상으로 늘어나면 이 먹이 사슬은 다시 균형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먹이 사슬이 균형을 잡고, 생명의 그물망이 다시 촘촘해지면, 생물다양성이 회복될 것이다.
하지만 개구리가 멸종한다면 어떻게 될까? 개구리가 멸종하면 관련 먹이사슬이 끊어지고, 생명의 그물망 어느 한편이 무너져 생물다양성이 감소하게 될 것이다.
어릴 때 늘 듣고 자라던 개구리 소리를 더 이상 듣기가 어려운 것은 이들이 이미 멸종됐거나, 멸종 위험에 처했거나, 개체 수가 현저히 줄었거나, 서식지를 옮겼기 때문일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이런 생물다양성의 파괴는 우리 삶과 큰 관련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개구리를 환경의 질적 수준을 가늠하는 환경 지표라고 한다.
물과 육지에서 서식하는 개구리는 양서류의 한 종류로 물과 공기가 투과하는 매우 민감한 피부를 갖고 있다.
피부로 숨을 쉬고 물을 마신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서식지가 오염되면 피부를 통해 쉽게 오염물질을 흡수하고, 자외선이 강하면 쉽게 피부가 손상되기도 한다.
서식지의 오염으로 인해 파리나 모기를 잡아먹는 양서류의 수가 줄면 해충의 수가 늘어나 전염병이 퍼지기 십상이다.
예전만큼 눈에 띄지 않는 무당벌레는 진딧물의 천적이다.
진딧물을 잡아먹어야 할 무당벌레 수의 감소로 그 개체수가 늘면 어쩔 수 없이 살충제를 이용하여 진딧물을 방제해야 하고 그 화학 성분은 결국 우리 몸이나 생활에 침투하게 된다.
건강에도 해롭고, 토양에도 나쁘다.
서식지는 어떻게 해서 오염될까? 인간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기, 수질, 토양 오염 및 소음, 진동 등이 자연 환경을 손상하는 것이 바로 환경오염 즉, 생물 서식지의 오염이다.
결국 인간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사실 생물다양성의 보존은 서식지 보호나 환경 보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최근 타즈마니아 해에 대형 트롤 어선을 끌고 나타났던 네덜란드나 포경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한 한국 모두 과학적 연구를 가장한 상업적 포획 행위라는 거센 비난을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풍부한 생물다양성은 무한한 가치를 지닌 자원을 공급하기도 하므로 너도 나도 이를 이용하고 싶어하는 반면, 무분별한 행위로 인한 한 종의 파괴는 다른 종의 파괴도 일으켜 이 귀한 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감시자의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다.
이번 대형 트롤 어선 사건은 호주 정부와 환경 단체, 시민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환경법을 통과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새 법안의 통과로 이제 환경부 장관과 수산자원부 장관은 환경을 위협한다고 판단되는 대형 트롤 어선과 새로운 어업 활동을 호주 영해에서 금지할 수 있다.
목화 나무가 없으면 솜과 면화는 어디에서 얻을 것이며, 누에가 없다면 천연 실크는 어디에서 얻겠는가? 나무가 고갈되면 목재를 이용하는 그 어떤 것도 만들 수가 없다.
더 나아가, 예전에는 합성섬유를 이용하여 방탄복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천연 거미줄을 이용하여 강도를 4배나 높인 방탄복을 개발하기도 한다.
각종 동식물에서 추출한 재료는 의약품을 만드는 중요한 원료이기도 하다.
생물다양성, 우리 곁에 있을 때 그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마음의 안식처이자, 자연의 미(美)를 감상할 수 있는 화랑이며, 지구 상 생명체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열쇠, 그것이 바로 생물다양성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오늘부터 내가 사는 주변의 생물다양성을 더욱 눈여겨 보고, 그 고마움과 소중함을 한 번 더 생각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실천해보자. 2주 후에는 생명의 귀한 열쇠, 생물다양성을 함께 지켜가는 방법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이계영(NSW 다민족커뮤니티위원회 환경교육담당자)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