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조직문화로 상사 눈치보지 않고 칼퇴근한국식의 반강제적인 회식문화나 뚜렷한 갑을관계 희박언어장벽으로 인해 호주인 동료에게 의기소침하기도“한인들 호주의 엄격한 문화 코드 제대로 인식 준수해야”“한국어와 한국 문화의 특수성은 나만의 경쟁력” 이민자들이 인구의 30%에 육박하는 호주는 모범적인 다문화사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일민족이라는 한국도 외국인 거주자들이 100만명을 넘어선 다문화사회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제 다문화사회에 대한 이해와 실천은 현대인의 필수 교양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호주동아일보는 호주의 한인들이 직장이나 가정생활을 통해 외국인 상사나 배우자 또는 한인 자녀와 겪는 문화적 갈등의 실태를 3회에 걸쳐 보도합니다.
이 기획기사는 한국이나 호주의 한인사회가 성공적인 다문화사회로 발돋움하는데 기여할 목적으로 추진됐습니다.
기획기사 ‘다문화사회의 문화갈등을 극복하는 한인들’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재정 지원으로 완성됐습니다.
- 편집자 주
호주에 이민 와서 현지 직장을 잡기란 결코 쉽지 않다.
우선 언어 문제가 걸리고, 취업이 되더라도 한국과는 다른 직장문화에 당황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상대적으로 수평적인 구조를 갖고 있고, 여성에게도 평등한 호주의 직장 문화에서 큰 메리트를 느끼기도 한다.
호주와 한국의 직장문화를 비교해 보고, 호주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애환들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 보기 위해 3명의 한인들을 인터뷰했다.
방위산업체 시스템 개발 분야에 근무하고 있는 김순호 씨(가명, 37세, 남), 호주의 한 대학에서 유학생 상대 행정 및 상담직을 하고 있는 선유정 씨(가명, 35세, 여), 유치원 교사를 하고 있는 이혜경 씨(가명, 35세, 여)가 호주 주류 사회 직장에서 근무하며 겪은 경험담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김 씨는 30세, 선 씨는 20세, 이 씨는 26세에 호주에 왔다.
▶ “호주 직장, 한국 직장보다 근무 조건 좋아”=셋 중 한국에서 직장 경험이 있는 사람은 김 씨가 유일했다.
한국 대기업에서 약 6년간 일했다는 김 씨는 한국과 호주의 가장 큰 차이는 근무시간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 직장에서 부장님 퇴근 전에 제 일이 끝나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사무실 직원 전체가 쳐다보더군요. 부장님이 ‘집에 무슨 일 있나?’라고 해서 ‘아니요, 영화 좀 보려고요’했더니 분위기가 싸해지더라고요.”김 씨는 한국 대기업 직원 중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자신의 동료 중 과로사한 경우도 있었고, 아내가 애를 낳아도 병원에 들러 잠깐 아내와 아이를 본 후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늦게까지 근무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김 씨는 호주에서는 휴가도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고 개인 일을 보기 위해 잠시 양해를 구하는 것도 비교적 자유롭다고 말한다.
한국에서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을까? 처음 호주 직장에서 일할 땐, 상사보다 먼저 퇴근할 때 괜히 눈치를 보며 쭈뼛쭈뼜 했었다는 김 씨는 어느샌가 출퇴근 시 눈치를 안 보는 자신을 보며 ‘나도 호주 사람 다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선 씨도 호주에서는 직장 생활과 사생활 중 당연히 사생활에 비중이 있다고 강조했다.
선 씨는 현재 직장에 오기 전에는 호주 내 한국 사람이 경영하는 직장에 근무한 경험이 있어 호주 직장의 이런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병가(sick leave) 내는 게 너무 편해요. 아프면 오히려 회사에서 못 오게 하죠. 옮을까봐요(웃음).”업무량이 많다는 이 씨도 여기에 동의했다.
호주는 가족 중심의 문화이기 때문에 직원들이 가족과 관계된 사유가 발생했을 때 편의를 잘 봐 준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한국에 비해 근무 시간이 분명하고, 회사 중심적인 문화가 아닌 각 직원 개인과 그들의 가족을 우선시 하는 문화가 호주 직장의 장점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이들이 꼽은 호주 직장의 아쉬운 점은 무엇일까?▶ “문화와 언어 장벽 절감”=김 씨는 직장 내 친구 사귀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직장 내 한국인은 자신을 포함해 2명 뿐이고, 아시안도 거의 없어서 호주인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어울리기가 어렵다고 한다.
꼭 영어의 문제라기 보다는 정서가 형성되는 어린 시절을 다른 곳에서 보낸 탓에 호주인들끼리 공유하는 문화에 파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호주인들이 어릴 때 가지고 놀던 것, 이들이 먹었던 음식, 예를 들면 ‘불량식품’이라던가… 이런 것들은 아예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이질감 때문에 이들 그룹에 끼기가 힘들죠.”이 씨는 문화도 문화이지만 언어적인 장벽도 크다고 말한다.
영어가 더 자연스러우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텐데, 언어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되다 보니 직장 내에서의 성격까지 소극적이고 내성적으로 변한다고 했다.
“너무 억울할 때 그걸 말로 다 풀어내기가 힘들어요. 예를 들어 한국말로 ‘나 억울해 죽겠어. 분이 풀리지가 않아’라는 말도 영어로는 ‘불공평해(It’s not fair)’ 정도 수준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죠. 이런 어려움 때문에 여기에선 과묵해지기도 하고 내 원래 성격을 다 못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선 씨도 여기에 적극 동의했다.
“아무리 어렸을 적 온 교포라도 자기 출신국가 애들하고만 어울린 사람들은 표현이 고착화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들이 쓰는 영어는 귀에 쏙쏙 들어오죠(웃음). 이렇게 해도 소통은 되고 큰 불편함은 없으니까 그냥 생활하지만, 화를 내야 할 때 표현의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아요.‘이 단어를 이 상황에 쓰면 너무 센가?’ 이런 생각을 하다 그냥 평범한 단어만 쓰게 되고 뉘앙스 조절이 힘들어요. ‘한국말로 했으면 넌 죽었어’라고 속으로 생각하기도 하죠. 한 번은 하도 답답해서 가방을 발로 차고 나왔는데 하필 근로 시간 기록표(time sheet)를 안 쓰고 나와서 다시 들어간 적도 있어요(웃음).”이처럼 갈등을 일으킬 때 뿐만 아니라 자기 업무와 관련해 프레젠테이션을 하거나 회의 때 자기 주장을 말할 때에도 언어적인 부분이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국방 분야이다 보니 약간의 실수도 치명적일 수 있어 항상 조심하게 된다는 김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가야 할 때 ‘이럴 수도 있다’, ‘이래야 한다’, ‘이럴지도 모른다’ 등등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는데, 적절한 표현을 고민하다 결국 안전하게 가장 약한 표현을 즐겨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주장이 약한 사람으로 느껴질 수 있죠. 반대로 정작 약한 표현을 써야 할 때 너무 강하게 말해서 사람들이 놀랄 때도 있었고요.”▶ ‘한-호 갈등’보단 ‘한-한 갈등’=세 사람 모두 직장에서의 대우와 평등한 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인종 차별은 오히려 호주인들이 먼저 조심하기에 심지어는 그들이 ‘역차별’ 당하는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고 한다.
일의 성격 상 한인 고객들을 상대할 수 밖에 없는 선 씨와 이 씨의 경우 이른바 ‘진상을 부리는’ 한인들을 만날 때면 창피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같은 한인으로서 동료들이 그들에 대해 비난할 때 자신의 기분도 좋지 않다고 토로했다.
선 씨는 “한인 학생들은 제가 같은 한국 사람이니까 더 특별하게 뭘 해주길 바라는 것 같아요.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호주인이든 일이라는 게 다 똑같은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말이죠. 다른 직원들이 못 알아듣는다고 자신의 감정을 저한테 다 쏟아내면, 제가 그 말을 그대로 통역하지 않고 조금은 순화시켜서 해야 했던 때가 많아요. 나중엔 안 되겠다 싶어서 학생에게 ‘네가 한 말 토시 하나 안 빼고 그대로 통역할 거다’라고 미리 얘길하고, 그 학생이 거친 표현을 쓰면 통역할 때도 ‘이 학생이 말하길 …이라고 했다’라는 식으로 가감없이 전달했어요. 원칙대로 해야 결국 제가 보호받을 수 있거든요.”이 씨도 이 부분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한국 유치원은 학부모들을 잘 대하는 게 중요한 업무지만, 여기에선 어린이들의 안전, 위생 이런 부분이 가장 중요해요. 식사, 투약 이런 부분에도 정말 철저하죠. 엄마가 어린이용 감기약이라며 점심 때 아이에게 주라고 제게 건내줘도 규정 상 그 약을 줄 수가 없어요. 그 약을 주면 저는 감옥 가거든요. 처방전이 있어야 하고, 엄마가 몇 시에 주라고 했다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약 하나 주는 데도 정말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죠. 이런 것을 아무리 설명드려도 ‘에이, 화이투벤 애들건데 왜 못 주죠?’, ‘그건 아는데… 같은 한국 사람끼리 알면서…’라는 식으로 막무가내로 부탁할 때는 정말 힘들어요.”▶ 한국식 ‘갑을 관계’ 호주에선?= 뿌리는 한국인이지만 어느덧 호주 문화에 더 익숙해진 세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식 갑을관계는 어떨까? 아무래도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해 본 김 씨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갑을관계라는 게 물고 물리는 것 같아요. 제가 엘지와 삼성에 근무했기에 갑인 것 같지만 국방부의 수주를 받아서 일을 했으니까 또 을의 입장이기도 했죠. 결국 갑일 땐 이른바 ‘갑질’하면서 더 얻어내고, 을일 땐 ‘납작 엎드리고’ 그랬던 것 같아요.제가 갑일 경우 늦은 시간에 을에게 전화해서 ‘내일까지 이러 이러한 자료 부탁해요’라고 하면 그 전화를 받은 을은 퇴근하려다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 해요. 그 일을 하기 위해 그 사람은 또 다른 을에게 전화를 해서 ‘이러 이러한 서류 당장 가져다 주세요’하면 전화 받은 그 사람은 밤 11시에 오토바이 택배를 부르고, 택배 업무를 마친 배달부는 12시에 출출하니까 또 야식 배달시키고… 그런데 이처럼 을인 사람들이 삼성이나 엘지 제품을 사는 고객이니까 다시 갑이 되고, 이런 식으로 계속 물고 물려서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거죠.”호주에서의 갑을관계는 어떤지 김 씨에게 물었다.
“여긴 회사 간 계약관계가 갑을관계가 아니에요. 우리 회사의 경우만 봐도 판매자(vendor)로서 요구조건을 맞춰주는 것일 뿐이죠. 계약이 문서 기준으로 가기 때문에 한국식으로 ‘갑’에 놓인 회사라 할지라도 계약서에 사인한 순간 문서 외의 것을 추가로 요구할 수 없어요. 요구하려면 추가 비용과 시간을 더 줘야 하니 갑으로서도 고민해야 하는 거죠. 대신 문서에 나와 있는 계약 내용에 대해선 을도 그대로 해줘야 하고요. 한국에서처럼 갑이 전화해서 ‘아… 저희 부장님이 바꿨으면 하는데 안 될까요?’라며 ‘부탁’의 형식을 빌린 ‘강요’를 할 수 있는 구조 자체가 아닌 거죠.”선 씨는 우리 나라가 너무 짧은 시간 내에 급속히 발전하면서 효율성만 추구하다보니 갑을관계가 그렇게 극명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호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한국으로 치면 ‘을’인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퇴근시간이 임박하면 손님을 ‘쫓아내는(?)’ 상황도 너무 잘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저는 5시 쯤 되면 아예 가게에 안 들어가요. 들어가더라도 종업원들에게 ‘저 금방 나갈게요’라며 배려해 주죠.”이 씨도 동감했다.
“저도 근로자잖아요. 처음엔 가게가 일찍 문을 닫으니까 불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저런 문화로 인해 저도 부당한 근무를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드니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죠.”▶ 회식문화, 한국은 ‘형식적’ 호주는 ‘자율적’=세 사람 모두 호주 직장으로 와서 가장 좋은 것 중 하나가 한국식 회식문화가 없다는 점을 꼽았다.
김 씨는 한국에서는 회식비가 할당되고 정해진 기간 내에 ‘의무적으로’ 그 비용을 써야 부장의 인사고과에도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12시까지 야근해야 하는 날에도 ‘반드시’ 회식을 해야만 하는 상황도 있다고 말했다.
“부장 입장에선 ‘부서 내 단합 증진을 위한 노력’이라는 측면에서 실적을 쌓기 위해 회식할 때가 많아요. 일이 산더미 같은데 ‘오늘 무조건 회식한다’고 선언하면 무조건 해야 하죠. 6시에 예약했다가 10시에 겨우 간 적도 있었어요.”호주로 이민 온 큰 이유 중 하나가 한국식 회식문화가 싫어서였다는 이 씨는 “한국에선 술 못 마시면 힘들다”면서도 때론 직장 동료들과 소주 한 잔 하면서 상사 뒷담화를 하는 맛이 없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 같은 데 보면, ‘김 과장, 죽여버리겠어’라고 하면서 회포도 풀고 그러잖아요. 여긴 그럴만한 동료가 없어요. 이런 걸 해 보는 게 제 ‘로망’이에요(웃음).”세 사람 모두 호주에는 반강제적인 회식 문화 대신 자율적이고 가족 중심의 파티 문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회식비 조로 부서에 예산이 할당되는 것 자체가 없고, 친한 동료들끼리 ‘한 잔 하자’며 자연스레 회식이 이뤄지고 자비로 계산하기 때문에 누구도 억지로 참석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회사 전체의 회식이라면 크리스마스 파티 정도인데, 이 때에도 직원만 모이는 게 아니라 직원들의 지인과 가족까지 대동한 파티이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 소수민족이라 차별받지는 않지만…=세 사람 모두 직장 내 차별은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러나 자신이 소수민족 출신이고,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야 관리자급으로 올라갈 수 있기에 아예 포기하고 현재에 만족하고 사는 경우도 있었다.
선 씨는 “실제로 더 높은 포지션에 자리가 나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하지만 사람의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저는 1에서 40 정도까지 일에 쓰고 60은 저 개인을 위해 투자한다는 원칙이 있어요. 그런데 승진하려면 호주인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해요.40 이상을 써야 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제 사생활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그냥 이대로도 편하게 먹고 살 수는 있으니까, 여기서 멈추자’ 이렇게 생각하고, 기회가 있어도 귀찮아하죠. 제 삶의 균형을 깨뜨리고 스트레스 받으면서까지 직장생활 할 필요 없잖아요. 제겐 제 삶이 더 중요하거든요.”그러나 김 씨의 경우, 진급과 승진은 언어적 문화적 장벽보다는 개인적 성향 차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김 씨는 관리직(매니지먼트)과 전문직(스페셜리스트) 중 전문직을 택했다.
그러나 언어나 문화적 장벽으로 인해 스스로 전문직을 선택한 것은 아니며, 본인의 성향 자체가 누구에게 일을 맡기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전문직이 편하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 내에서 동양인 매니저도 심심치 않게 봤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말하는 김 씨이지만 한국에서처럼 진급이라는 개념이 희미한 호주 직장에서는 ‘동기부여’가 결여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는 수직적 문화가 아니라서 제 위로 매니저 한 명 있고, 그 위에 총괄 매니저 그리고 바로 사장이에요. 제 바로 위 매니저가 근무연수 20년이 넘는 왕고참이죠. 진급이나 승진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한 거죠. 이게 좋을 때도 있지만 ‘제가 정체돼 있는 건 아닌지’라는 생각이 가끔 들 때도 있어요.”한국식 ‘수직적 문화’, ‘헌신하는 문화’와 호주식 ‘수평적 문화’, ‘개인이 먼저인 문화’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고충도 있었다.
이 씨는 “원장이 무거운 짐을 나르고 있어도 여기 직원들은 자기 일이 아니라며 잘 도와주질 않아요. 이 때 제가 도와주면 ‘오버한다고 하지 않을까’라며 오히려 조심하게 돼요. 여기 직원들은 원장과 맞담배도 스스럼없이 피우고, 한국처럼 ‘직장 선후배’의 개념도 잘 없어요. 원장에게도 그냥 친구처럼 ‘하이’하면서 손만 흔드는 걸 보면서, 조금 적응이 안 되기도 했죠. 저는 지금도 왠지 ‘원장님’께는 일어나서 고개 숙여서 인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당당하게’=양성평등에 관한 이들의 의견은 확고했다.
‘남자이니까’ 혹은 ‘여자이니까’를 내세우며 더 대접받으려고도, 책임을 회피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선 씨와 이 씨는 한국 문화와 호주 문화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취하는 여성들이 가장 한심하다고 전했다.
선 씨는 “(호주 내 한국인 직장에서 일할 때) 언젠가 생수통을 바꿔야 해서 들어보니까 잘 들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바꿨는데, 다른 언니가 ‘남자 직원을 시키지 왜 네가 하니?’라고 해서 황당했어요. 사실 하나도 무겁지 않은데 말이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조차 ‘네가 남자이니까 해라’라고 말한다면, 남자 입장에선 ‘내가 무거운 생수병 갈았으니 너는 커피 타’라고 할 수 있잖아요. 남이 하는 건 나도 할 수 있다는 기본 마인드가 중요한 것 같아요.”이 씨는 “호주에선 아이들 픽업을 아빠가 오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한국인들은 엄마가 아무리 바빠도 꼭 엄마가 픽업을 오죠. 아빠가 집에서 놀더라도 그걸 보이기 싫어서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라며 한국인들의 남녀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꼬집었다.
선 씨와 이 씨 모두 한국 여성들의 ‘외모 지상주의’, ‘금전 제일주의’에서 문화적 차이를 느낀다고 말한다.
선 씨는 “’한국에 사는 여성들도 저와 똑같이 순수했던 20대 시절을 보냈을텐데, 현실 때문에 저렇게 변했구나’라는 생각에 일면 측은한 마음도 들어요”라고 말했다.
선 씨는 특히 한국인들이 타인의 사생활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이 많다고 지적했다.
“’(결혼 전에) 너 노처녀인데 언제 결혼할거야?’, ‘(결혼 후) 애 언제 낳을거야?’라고 하도 물어서 처음엔 기분이 너무 나빴어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죠.”이 씨는 한국 여성들과 호주 여성들 사이의 관심사 자체가 너무 다르다고 말한다.
“한국 여성들은 외모에 치중해요. 어떤 가방을 메고, 어떤 머리 스타일을 하고 등등이요. 여기에선 ‘이번 휴가 어디로 가?’ 이런 대화를 주로 나누죠. 처음엔 저도 ‘트레이닝복에 운동화 신고 화장도 안 하고 어떻게 회사에 가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생얼’로 다녀요(웃음).”▶ 문화 갈등도 결국은 ‘하기 나름’= 세 사람은 하나 같이 ‘문화 갈등’, ‘인종 차별’과 같은 것들은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입을 모았다.
호주가 다문화 사회인 만큼, 인종 차별적 발언이나 행동은 제도적으로 이미 규제하고 있고, 법적인 처벌도 감수해야 하기에 한국에서 우려하는 만큼의 차별은 없다고 말한다.
피부색과 출신 국가를 떠나 ‘동료애’라는 따뜻한 마음으로 하나될 수 있는 문화적 토대가 이미 호주 직장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민자로서 호주인들과의 경쟁이 힘에 부칠 수도 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라는 특수성이 있기에 얼마든지 자신의 경쟁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부당한 차별에는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면서도 호주 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는 이들의 노력에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서기운 기자freedom@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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