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죠이태평양에서 가장 큰 섬나라 호주에는 아주 유명한 블루 마운틴이라는 산이 있어요. 한글로는 푸른 산이라고 불려요. 이 이야기는 호주에 사람이 살지 않던 아주 오래전 이야기에요. 이 푸른 산에는 다른 대륙에는 살지 않는 많은 특이한 동물들이 많았어요. 이제 푸른 산의 동물식구들 이야기를 들어볼까요?(코알라가 하품을 하며) “하악..아이 졸려.. 아침에 잠들어서 밤에 깨었는데도 여전히 졸려. 이 나뭇잎만 먹었다하면 잠이 온다니까 . 꼭 감기약 같아.’’ 금방 잠에서 깬 코알라가 투덜거렸어요. “음…코코야. 그럼 그 나뭇잎만 먹지 말고 다른 것도 먹어봐. 매일 유칼리 잎만 그렇게 먹으면 나라도 물리겠다.
” 작은 왈라비 죠이는 자기가 생각해도 좋은 생각이라는 듯 무거운 꼬리를 바닥에 퉁퉁 치며 우쭐댔어요. “안 돼. 그건 무모한 짓이야. 우리 코알라들은 유칼리 잎만 먹을 수 있어.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그러셨어!” “다른 걸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았으니 결과는 모르는 거잖아.” 겨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단호한 코코 앞에서 더 이상 죠이는 말을 할 수 없었어요. 코코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어요. “죠이 저 녀석은 만날 저렇게 잘난 척이야. 아이 맘에 안 들어.” 한편 죠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터벅터벅 산기슭을 올라갔어요. 밤이 되어 숲이 어둑어둑 해졌어요.언덕을 조금 올라가니 마침 덩치가 큰 킹캥거루들의 권투시합이 열렸어요. 킹캥거루들은 권투 글러브를 끼지도 않고 상대와 겨루고 있었어요. 상대가 가까이 오면 주먹을 날리다가 조금 뒷걸음질을 치면 재빨리 두발로 하이 킥을 날려야 확실히 이길 수가 있었어요. 어느 쪽이라도 땅바닥에 먼저 주저앉게 되면 패배하는 게 규칙이었어요. 오늘의 우승후보인 잭은 상대선수인 키를 약 올리며 덤벼보라는 듯 말했어요. “자 점프해봐. 다 받아주지. 어디 감히 나한테 도전장을 내밀어? 하하하.” 구경을 하던 다른 동물들도 막 흥분하기 시작했어요. “잭! 잭! 잭!.. 권투하면 잭이 최고지.” 그러자 이때 상대선수가 두 발을 번쩍 들었어요. 잭도 동시에 두 발을 들었어요. 네 발은 서로 박수를 치듯 ‘짝’ 거렸어요. 그런데 곧이어 키가 착지를 제대로 못하고 발을 접질리며 넘어졌어요. 키가 바닥에 앉아버린 덕에 규칙대로 잭이 이 시합의 승자가 됐어요. “거봐 키, 너 같은 녀석은 내 적수가 안 돼. 하하하.” 잭은 으스대며 말했어요. 키는 아픈 발목 때문에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퇴장했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죠이가 갑자기 소리 쳤어요. “이건 반칙이에요. 잭은 점프를 하면서 일부러 배주머니에 든 돌멩이를 키 쪽으로 흘렸어요. 키는 돌멩이 위로 미끄러졌고 잭은 돌멩이를 피해 멀리 착지했어요.” 동물들은 모두 잭을 쳐다봤어요. “날 의심해? 그럼 내가 이제껏 모든 시합을 다 내 실력으로 이긴 게 아니라고 생각해? 저 수다스런 왈라비 말이 맞는다고 생각 하냐고.” 동물들은 고개를 끄덕였어요. 항상 시합을 앞에서 봐왔던 동물들로선 잭의 실력을 의심할 수는 없었어요. 잭은 이어서 말했어요. “ 죠이 보라고. 내 실력을 모르는 동물들이 있는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내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그리고 이참에 하는 말인데. 죠이.. 넌 캥거루가 아니야. 몸집이 그렇게 작으니 기형으로 태어난 게 분명하다고. 그러니까 지능도 엄청 낮을 거야. 너 주제를 알고 떠들어. 너 말을 누가 믿어줄 줄 알아?” 죠이는 그 말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어요. 그리곤 혼잣말을 하며 그 자리를 도망치듯 나왔어요.“잭의 주머니 속을 확인해보면 내 말이 틀리지 않은 걸 알 수 있을 텐데….” 죠이는 생각했어요. ‘왜 다들 내말을 듣지 않는 거지. 내가 정말 쓸데없는 말만 했나? 아님 정말 내가 머리가 나빠서 다른 동물들이 날 무시하는 걸까?’ 죠이는 날이 캄캄한 것도 모르고 쉴 새 없이 걸었어요. 그때 파란 부엉이 할아버지가 나무 사이에 앉아서 부~~부~ 울었어요.“죠이야… 한참 찾았단다.
이렇게 멀리까지 왔니. 너무 상심하지마라. 나는 분명히 잭이 돌멩이를 흘리는 것을 봤단다.
캄캄해서 다들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이 부엉이 할아버지는 밤에 눈이 더 좋아지잖니. 네가 했던 말이 옳아.” 부엉이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죠이를 위로했어요. 그러나 죠이는 기뻐하지 않는 눈치였어요. “이젠 제 말이 맞고 안 맞고의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아무도 제 말을 믿어주지 않아요. 제가 말하면 왜 다 싫어하는지…..”부엉이 할아버지는 나지막이 말했어요. “다른 동물들도 머지않아 네 말을 믿어 줄 거야. 너는 머리가 나쁘지 않아. 오히려 아주 영리하단다.
그걸 다른 동물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란다.
”죠이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우두커니 바위 위에 앉아 있었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부엉이 할아버지가 날개를 위~하고 조용히 피며 높이 날았어요. 인사도 안하고 갈 리 없는 부엉이 할아버지라 죠이는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십 분이나 지났을까 매캐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요. 왠지 숲이 밝아진 느낌도 들었어요. 부엉이 할아버지가 큰 눈을 껌벅거리며 날개를 퍼덕이며 죠이 앞에 내려왔어요. “죠이야 큰일 났다.
숲에 큰 불이 났구나. 위에서 보니 어느 방향 할 것 없이 사방으로 불이 온통 번지고 있다.
어서 대피해야 한다.
집으로 어서 가거라.” 점잖으시던 부엉이 할아버지도 이번엔 몹시 당황했어요. 자세한건 물을 새도 없이 죠이는 발걸음을 옮겼어요.“네. 어서 빨리 엄마 아빠에게 가봐야겠어요. 꼭 다시 봬요 할아버지.” 죠이는 엄청난 속력을 내며 부리나케 뒷발로 껑충껑충 뛰었어요. 집에 도착해보니 죠이의 부모님들도 죠이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어요.… 죠이 엄마가 다급히 말했어요. “아이고, 죠이야. 큰일 났다.
어서 대피하자. 가만있자. 불이 어디로 번진다더라? 그래 아래로 번진대. 그러니 우리는 위로 올라가야지. 세자매봉 쪽으로 가자." 어머니의 성화에 밀려 문밖을 나서니 그렇게 용맹하던 맹수들도 어찌 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 댔어요. 바깥은 금방이라도 불이 덮칠 듯이 숲을 점점 밝게 비추고 있었어요. 죠이는 조용히 눈을 감았어요. 생뚱맞은 행동에 죠이 엄마가 잔소리를 했어요. "얘가 이 와중에 잠이 오니… 서서 잘 셈이냐?" 이 때 죠이가 무릎을 탁 치며 크게 소리쳤어요."엄마. 바람은 지금 서쪽으로 불고 있어요. 불이 산 아래에서 시작됐으니 우리는 되도록 동쪽 산봉우리 쪽으로 가는 게 안전할 거예요" 그런데 죠이의 이 말을 엿듣던 다른 동물들도 죠이의 말을 듣고 하나 둘 따라오기 시작했어요. 걸음이 느린 코알라도 잘난 척하던 킹캥거루들도 심지의 맹수들도 죠이의 뒤를 따랐어요. 죠이는 다른 동물도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어요. “서쪽 계곡을 타고 올라 갈 거예요. 모두 물을 몸에 끼얹고 계곡 옆에 바짝 붙어서 행군하시고 혹시라도 바람에 불이 옮겨 붙을 라 치면 얼른 물로 뛰어드세요." 죠이는 자신을 따르다 낙오되는 동물들이 없게끔 꼼꼼히 신경 쓰며 행렬을 이끌었어요. 몇 시간이 지나자 연기도 점점 잦아드는 듯 했어요. 그러나 안심하지 않고 동쪽계곡을 연신 올라갔어요. 점점 날이 밝아 왔어요. 동물들은 기력이 다했는지 하나 둘 바닥에 주저앉아 쉬었어요. 그렇게 쉬기를 반복하며 이틀을 꼬박 등반을 한 결과 동물 무리들은 큰 계곡에 도착했어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는 숲속 친구들의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었어요. 계곡에 원래 살고 있던 동물들은 산에 불이 났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어요. "우린 태어나서 불이란 건 본 적이 없는데? 설명을 좀 해봐. 불이 어떤 건지…." 그 말에 죠이는 안전한 곳에 온 것을 확신했어요. 코코도 흐뭇하게 나무들을 바라보며 말했어요."여긴 유칼리나무가 많아서 좋아. 배부르게 먹어야지." 새들은 깃털을 몸에 적시며 "여긴 샤워시설이 제대로야. 수압 보라고." 그 말에 동물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어요. 동물들은 시원한 계곡물에 목을 축이고 저마다 보금자리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때 죠이를 따라 왔던 천적들이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리더니 죠이를 향해 다가왔어요. 며칠을 굶어 몹시 배고픈 그들을 죠이는 알고 있었기에 무서웠어요. 딩고가 입을 열었어요. "죠이.. 우리를 여기로 안내해줘서 고마워. 너희들은 여기서 살면 좋을 것 같아. 그런데 우리들은 좀 더 서쪽으로 이동하려고 해. 이제 친구인 너희들을 잡아먹고 살 순 없잖아. 그러니 여기서 작별인사를 해야겠어. 잘 있어…" "어 어어.." 뜻밖의 말에 죠이도 당황하며 손을 살짝 흔들며 인사를 했어요. 여우 비단뱀 독수리들도 아쉬워했지만 함께 떠나기로 했어요. 딩고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걷다가 뒤를 돌아서서 죠이에게 말했어요. "넌 내가 본 동물 중에 가장 지혜로워." 딩고의 마지막 말로 이제껏 괴로웠던 죠이는 드디어 마음의 자유를 찾았어요. 한 주, 두 주가 지나고 동물들의 정착도 점점 자리를 잡아갔어요. 그러고 보니 이제 다른 어떤 동물들도 죠이를 무시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귀를 기울이게 됐죠.하루는 잭이 폭포수에서 수영을 해 보겠다며 안간힘을 썼지만 자꾸 가라앉기만 했어요. "아 왜 난 안 뜨는 거야. 다른 애들 다 뜨는데." 그 앞을 지나던 죠이가 말했어요. "우린 배 주머니에 물이 차니 물에 뜨기 어려운 게죠. 다른 취미거리를 찾으시는 게. 낚시 어때요. 물속에 앉아 있다가 물고기가 배에 들어가면 얼른 일어나는 거예요…." "하하 그거 괜찮겠구나. 고마워.." 잭은 죠이의 재미난 상상도 이제 칭찬해주게 됐어요.그리고 어느새 죠이는 어른 왈라비로 성장했어요. 숲속의 동물들은 뭐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죠이를 찾아갔어요. 죠이는 명성에 걸맞게 늘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어요. 독버섯 구별법, 재난재해 대처법, 약초효용 같은 것을 가르치는 학교도 설립했어요. 학생들은 매 학기마다 넘쳐났어요. 푸른 산, 천적도 없는 산 중 깊은 곳의 동물들은 그렇게 사이좋게 지금껏 평화롭게 살고 있어요. 가끔씩 산불이 나기도 하지만 죠이 덕분에 숲속 동물들은 아무 걱정 없이 산답니다.


[당선소감]큰 상을 받게 되어서 너무나 영광입니다.
제가 글을 잘 써서 주는 상이라기 보다는 이국에서 문학을 통해 우리말 우리 글을 사랑하라는 격려라 생각하며앞으로 더 자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글쟁이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혜진님의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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