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mh.com.au

오랜 전 쓴 글에서 산을 나의 애인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에서 산을 자주 찾는 내 지인들도 그런 표현을 한다. 애인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만,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그것을 애인처럼 여길 수도 있으니 꼭 틀린 말은 아니다. 산을 애인이라고 했다고 해서 표현법이 틀렸다고 한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겠지만, 그래도 애인처럼 여기고 산을 오르는 일은 누적된 일상의 건조함을 촉촉히 적셔주는 묘미가 있다.

산 걷기를 즐기는 나는, 언젠가의 글에서 이미 썼지만 내 유년의 기억(원형의 기억)속에 있는 무엇이 작용해서 이다. 세상이 미성숙의 내게로 전이 시킨 느낌들, 예를 들자면 바람의 맛이라던가 햇살의 투명성이라던가 풀잎들의 광합성작용이라던가, 작은 생물들이 스치면서 내는 소리들을 인식하지 못하던 때에, 내 뇌의 한 부분에서 자연발생적으로 그것들이 인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산 속에 들면 가슴이 한없이 부풀어 날고 뇌는 급속도로 회전이 빨라진다. 지상에서 얼키설키 엉켜 있던 생각들이 하나로 가지런히 정리되는 싯점도 산을 걸을 때 이다.

일년에 한 번, 원거리 산행을 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산을 다녀오면 다음 산행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는데, 한동안은 고도에 초점을 두고 산을 택했다. 아마추어가 오를 수 있는 최고봉. 7대륙의 최고봉을 오르는 일은 산을 걷는 이들에게는 로망이다. 어쩌면 그들도 나도 버킷리스트에 7대륙 최고봉을 올라보는 게 꿈이라고 적을 것이다. 아마추어 트레커들이 꿈꾸는 7대륙최고봉은?아시아의 에베레스트(Everest,8,848m), 남미의아콩카구아(Aconcagua,6,959m),북미의매킨리(Macinley,6,194m),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Kilimanjaro,5,895m), 유럽의 엘브루즈(Elbruz,5,642m), 남극의 빈슨 매시프(Vinson Massif,4,892m), 오세아니아의 칼스텐츠(Carstenz,4,884m) 등이다. 이 산들 중에서 아마추어들이 오를 수 있는 산은 에베레스트를 제외하곤 거의 가능하다. 남미의 아콩카구아와 남극의 빈슨메시프는 전문 등반가가 되기 위한 전지 훈련코스로 택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머지의 산들은 체력훈련과 꾸준한 산행 훈련으로 다져진다면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산들이지만, 산의 고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고소에 대한 적응이 관건이기는 하다. 고소 또한 약간의 주의를 기울이면 이겨낼 수 있기도 하므로 아마추어들이 꿈꾸어 볼만 한 산들이 7대륙 최고봉에 속해 있다.

내가 오른 7대륙 최고봉은 킬리만자로 한 곳 뿐이다. 작년에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내려다보는 칼라파타르(5,550m)와 촐라패스(5,368m) 그리고 고쿄피크(5,360m)를 올랐지만 그곳은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산군의 한 부분인 솔로쿰부 일 뿐이다. 고도가 5,000m를 넘고 눈 속에 숨겨진 크레바스가 있었다. 고쿄피크로 가는 길에는 고줌바 빙하지대를 통과해야 했으므로 걷는데 집중해야 하기도 했다. 한발 한발 디딜 때마다 발 밑의 너덜지대가 무너질까 봐 스틱 또한 최소한의 힘을 가해서 짚어야 했다. 힘든 길이었지만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아련히 올려다보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었고 넘어도 산 넘어도 산이었던 고줌바 빙하지대에서는 돌아갈 수만 있다면 돌아가고도 싶었다.

안나푸르나와 킬리만자로를 오르면서 고소 적응에는 문제없다고 큰소리를 치고 갔지만 고소병에 따르는 고소합병증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었다. 하여 2,700여미터 지점에서 급성장염에 걸리고 말았다. 산의 고도가 매일 높아지다 보니 백약이 무효였다. 꼬박 열 이틀 동안 먹으면 토하고 설사를 반복하면서 칼라파타르 고쿄피크 촐라패스를 넘었다. 인솔대장이나 일행들이 한 봉우리쯤은 포기하라고 했지만, 내 안의 누군가가 나를 부추겼다. 오를 수 있다고. 촐라패스를 넘어서 내려오던 길에서는 헛것을 보기도 하는 기이한 체험까지 했지만 다시 2,700여미터 지점으로 내려오면서 고산병은 나았다. 고산병은 하산을 하게 되면 저절로 낫는 병이기 때문이다. 트레킹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체중이 무려 7킬로그램이나 줄어 있었으니 실로 힘든 산행이었다.

산행 도중, 스스로 맹세를 했다. 앞으로 2년간은 히말라야에 오지 않겠다고. 반복되는 구토와 설사병은 칼날 같은 눈바람과 더불어 나를 몹시 괴롭혔다. 다른 이들보다 열 번 스무 번은 더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고, 아침에 반 그릇 마신 누룽지 삶은 물도 토해내다 보니 오체투지를 하는 티벳인들처럼 내 스스로 나를 극복하는 느낌이었다. 자신을 극복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라고 자문을 하면서 봉우리 아래에서 봉우리를 향해 걷는 일행들의 모습을 부러워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올라서 마지막으로 환호성을 질렀지만 일행들 중 가장 큰 행복감과 희열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몸은 극도로 지쳐 있었지만, 눈바람을 헤치고 5,500미터의 정상에서 삶의 원기를 한 가득 짊어지고 내려왔다.

2,700여미터로 내려 온 날 저녁에 걸신이 들린 것처럼 먹었다. 열 이틀 동안 아무 것도 삼키지 못하던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맛나게 먹고 기운을 차렸다. 그리고 중간에 포기 하지 않고 세 봉우리를 다 올라가고 내려 온 내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워 그날 밤을 꼬박 잠들지 못했다. 추운 히말라야의 밤이었지만 창을 열어두고 루크라 비행장 너머의 산 위에 명멸하던 별빛들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밤 나는 기억의 나이를 되짚어, 유년을 보냈던 외갓집 마을의 산들과 사람들, 마을의 모습들을 떠올렸고, 친척들을 떠올리며 안개가 자욱한 옛 시간을 걸었다. 산을 걷듯이.

앞으로 2년간은 히말라야를 찾지 않겠다고 하였으므로 다른 산을 찾아야 했다. 내 애인이라고 자랑했던 히말라야와 잠깐 이별하고 싶었다. 영영 이별하지 못하고 유예를 둔 까닭은 맹세를 해버리면 나중에 다시 찾아 갈 때 부끄러워 질 것 같아서였다. 해서 올해엔 걷기에 더 없이 좋다는 뉴질랜드 밀포드사운드를 택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는 아름다운 길이라는 수식어만 믿고 나섰다. 그리고 걸었고 돌아왔다. 많은 이들이 찬사 하던 그 길. 미국에서도 오고 캐나다에서도 오고 일본에서도 영국에서도 그 길을 걷기 위해 사람들이 왔지만, 길을 걷는 내내 허전했고 허탈했다. 길은 너무 평이했고 단조롭다 못해 지루했다. 밀포드사운드는 아주 재미없는 애인을 만난 것과 같았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재미나서 헤어지고 난 후에도 여진이 있는 사람이 있다. 내가 선택했던 산들 또한 그랬다. 뒷담화를 몇 년을 두고 해도 늘 열변을 토하게 만드는 산들이었다. 그런데 밀포드사운드는 아주 재미없는 사람과 맛없는 저녁을 먹은 것과 같았다. 침을 튀겨가면서 들려 줄 이야깃꺼리도 없었다.

트레킹의 여운이 다 사라지려면 몇 달이 걸리던 때와는 다르게 밀포드사운드 트레킹은 돌아 온 날부터 잊혀졌다. 그래서 버린 애인을 다시 찾듯, 수신을 보내다 엘브루즈를 찾았다. 엘브루즈를 선택한 후에 킬리만자로와 쿰부히말을 인솔 했던 대장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가 말하기를 내 체력으로는 힘들다는 것이다. 내 체력으로 안 되는거라면, 발치에서 보기만 하겠다고 했더니 산은 거칠고 풍경은 설산의 단조로움뿐이라고 했다. 풍경이 끝내준다는 밀포드사운드에 가서 실망했다고 말하자 그건 성취감이 없어서 아닐까요? 라고 했다.

성취감. 그렇다. 나는 거친 산행을 즐겼다. 험난한 산행 뒤의 성취감 그것이 자꾸만 험한 산을 찾는 이유였다. 전문산악인들은 산을 정복한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산을 극복하는 일이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 또한 극복이 필요한 애인을 만나 험난하게 사랑을 하고 싶다. 사랑엔 많은 것들이 함유되는 것이 아닌 가. 너무 쉬운 상대라면 쉬이 돌아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그 상대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삶의 진정성을 회복하게 되고 진정성 속에서 극복한 대상에 대한 자랑스러움에 오래 행복할 것이다. 거친 산을 한발한발 오르는 일보다 더 극적인 일상이 어디에 있겠는가.

엘브루즈를 머리 속 깊숙이 저장했다. 손톱 끝부터 발톱들까지 엘브루즈를 기억하도록 주입하고 있다. 엘브루즈는 고산병과는 무관하게 일기가 불순하면 정상을 오르는 일이 쉽지 않다. 그곳까지 가서 예비일까지 기다리다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돌아 온 이들이 많다. 나 또한 그럴지도 모르지만 엘브루즈의 발치에서 코카서스 산맥의 거센 눈보라를 온 몸으로 체험해보고 싶다. 그리고 진실로 이별하지 못한 내 애인. 히말라야를 다시 가야겠다. 나를 몹시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주선영 (호주한인문인협회)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