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통하는 소중한 사람들과 떠나는 여행은 즐겁고 행복하다.
지난해 연말, 문인회 회원들과 농장에 다녀왔다. 일박이일의 짧은 여정 이었지만 그 기억은 오래 갈 것 같다.

시드니 근교 윈저를 지나 콜로리버에 있는 농장은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분지를 지나 큰 나무들이 즐비한 계곡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스트라를 떠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와 농장 입구에 도착한 회원들은 수려한 경관에 기분이 한껏 부풀어 보였다. 그런데 우리를 반겨야할 농장의 정문이 쇠사슬에 감긴 채 굳게 잠겨 있었다. 미리 와서 우리를 안내하기로 한 농장 관리인이 오지 않은 것이다. 예약을 한 J선생이 서둘러 전화기를 눌러 대더니 짧은 한숨을 내쉰다. “통화 불능 지역이네요. 전화가 안돼요” 낭패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화 연락이 안 되니 관리인이 올 때까지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넘어가자 오후 햇살이 어스름으로 변하기 시작 했다.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지고 냉장고에 들어 가야할 음식을 염려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도드라져 들렸다. 그때였다. 서울에서 방문한 중견시인 P선생이 기타를 꺼내 들더니 게이트를 등에 지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조~개 껍질 묵어~ 그녀의 목에 걸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귀에 익은 경쾌한 리듬과 가사가 산등을 타고 몇 소절 피어오르자 다들 여행자의 즐겨야할 의무를 새삼 기억해 낸 듯 부산 해졌다. 자리를 펴고 준비해온 음식을 나누며 막걸리를 권하고 한 여름 밤 숲속의 합창에 따라 나섰다. 술이 몇 순배 더 돌고 “ 긴~머리 짧은 치마” 하며 토요일 밤에를 부를 쯤 어둠이 나무들을 덮기 시작했다.

얼마 후 사람 좋게 생긴 농장 관리인은 죄송하다는 인사를 방패처럼 들고 나타났다. 농장 안 숙소는 넓었고 승마 광 이라는 주인의 명성에 걸맞게 말 장식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짐을 풀고 난 뒤 거실 바깥쪽에 붙어 있는 널찍한 발코니에서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솜씨 좋은 여자 회원들이 준비해온 음식은 맛이 있었다. 즐거운 대화가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유쾌한 웃음소리는 노을처럼 밤하늘에 번져 갔다. 술을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술자리는 좋아하고 술에 취해 가슴이 데워지면 노래 한곡 불러 젖히기 좋아 한다는 ‘우수 파’ 시인 P선생. 그의 찬란한 기타 연주와 노래는 우리를 내내 즐겁게 해주었다. 농장 관리인이 농장에서 수거한 말 배설물로 피운 모깃불이 천천히 연기를 내고 있었다. 멍석위에 둘러앉아 삶은 옥수수를 먹던 고향의 여름밤이 흑백 사진 속 풍경처럼 떠올랐다. 입심 좋은 H선생이 첫 사랑의 아픈 사연을 만담처럼 풀어가자 또 한 번 폭소가 쏟아 졌다. 밤이 이슥해 졌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모두 시간을 잊고 있었다. 그 무렵 농장 관리인이 나와 농장의 밤 비경인 유성을 볼 수 있게 안내하겠다고 했다. 관리인을 따라 우리는 어둠을 더듬어 농장 앞 언덕에 올랐다. 하늘엔 성근 별들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올려다 본  남반구의 밤하늘은 눈이 시리게 아름다웠다. 유성을 찾는 우리의 가슴속엔 어느새 고향의 별똥별들이  무수한 사선을 그으며 떨어지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식사는 베이컨과 에그를 곁들인 바삭한 빵으로 마쳤다. 카페를 운영하는 여자 회원이 정성을 다해 차려 낸 메뉴였다. 오전 시간에는 각자 준비해온 주제 발표와 합평회를 하면서 진지한 시간을 보냈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누구도 피곤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전 프로그램을 마치고 발코니에서 느긋하게 점심을 즐기는 사이 우리 뒤에 머물 사람들이 들어 왔다. 이제 시드니로 떠날 시간이다. 전화도 터지지 않는 고립무원, 무릉도원에서 세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온 것이다. 짐을 챙겨 떠나며 농장에서 멀지 않은 콜로리버 강변에 들러 가기로 했다 .

부드러운 모래밭을 감싸며 흐르는 콜로리버 강물은 맑았다. 물장구를 치며 놀던 고향의 여름이 생각났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 정겹게 느껴졌다. 그 옛날 강에서 자맥질하던  원주민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물속에서 솟구쳐 오를 것만 같았다. 어디선가 아이들을 부르는 원주민 엄마의 목소리가 들릴 듯 했다.  강변 옆 공원에선 크리켓 게임이 한창이었다. 푸른 잔디와 하얀 운동복의 색감이 햇살에 어우러져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였다. 강위를 지나는 다리를 커다란 콘크리트 기둥이 떠받치고 있었다.  그 기둥 사이를 지나다 기둥 밑 부분에 붙은 수많은 곤충의 허물들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매미가 남긴 선탈의 흔적이었다. 선탈은 매미가 성충이 되기 전에 하는 마지막 허물벗기를 일컫는 단어이다. 낡은 형식을 벗어 버린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매미는 애벌레로 7년 정도를 땅속에서 지낸다고 한다. 그사이 몇 번의 우화(허물벗기)를 거쳐 나무나 바위위에 올라가 선탈을 한다. 그리고 열흘 남짓 살며 짝짓기를 하다 죽는다고 한다. 7년여를 준비하고 기다린 끝에 사는 열흘여의 짧은 생, 그 삶은 치열 했을 것이다. 수컷은 목청껏 울며 암컷을 부르러 다녔을 것이다. 적당히 단장한 암컷은 종족 번식의 의무를 위하여 수컷 앞에서 기꺼이 옷고름을 풀었으리라. 생명 순환의 한 고리를 잇고 떠나는 매미들의 삶을 생각하니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윈저가 가까워 오자 전화기의 밀린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경고음이 울렸다. 세상과 다시 연결된 것이다. 저잣거리에 나서는 동자의 각오처럼 갑자기 어떤 힘이 내안에서 꿈틀 댔다. 콜로리버에서 두터워진 마음의 근육들의 용솟음이리라.

홍 순(호주한인문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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