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주총선 압승 축하 선물 받아 화근, ICAC 조사서 발뺌하다 덜미
“저의 중대한 기억 실패, 결과 정중히 수용, 새로운 자유당 대표 선출될 것”

베리 오파렐 NSW 주총리가 부정부패 혐의로 독립부패방지위원회(ICAC)로부터 조사를 받던 도중 돌연 사퇴를 발표해 충격을 주고 있다.

오파렐 주총리는 그간 ICAC 조사에서 닉 디 지로라모(Nick Di Girolamo) 전 호주수도공사(AWH) 사장으로부터 3000달러짜리 1959년산 펜폴즈 그렌지(Penfolds Grange) 와인 한병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해왔다.

하지만 오파렐 주총리는 자유국민연립이 2011년 3월 주총선에서 압승한 후 지로라모 전 사장이 승리 축하 선물로 보낸 그렌지 한병에 감사를 표시한 답장 카드가 공개된 16일 전격 사퇴를 발표했다.

이에 앞서 택배회사 디렉 쿠리어스(Direct Couriers)가 와인을 배달한 청구서(invoice)는 물론 와인을 구입한 2011년 4월 20일 당일 오파렐 주총리와 지로라모 전 사장이 28초 동안 대화한 전화 통화기록이 ICAC에 제출됐다.
오파렐 주총리는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주총리직에서 사임할 것이고 새로운 자유당 대표가 선출돼 NSW 주총리가 될 것”이라며 와인 수수에 대해 “저의 중대한 기억 실패”라고 밝혔다. 사실상 와인을 받았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는 와인 수수설에 대해 “와인 선물의 도착을 설명할 수 없다. 선물을 받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면서도 “그 결과는 정중히 수용한다”고 밝혔다.

택배회사 디렉트 쿠리어스는 ICAC에 제출한 3페이지의 문건에서 와인을 2011년 4월 20일 오후 3시 38분 호주수도공사 사무실에서 접수해 같은 날 4시 31분 오파렐 주총리의 자택으로 배달했다고 밝혔다.

● ICAC 오베이드 독직 조사 불똥에 치명타 = 15일 ICAC는 2011년 3월 26일 NSW 주총선에서 자유국민연립이 압승을 거둔 후 지로라모 전 사장이 승리 축하 선물로 보낸 고급와인 한병이 오파렐 주총리에게 전달됐다는 입증 진술을 들었다.

독직 혐의를 받는 에디 오베이드 전 NSW 자원부 장관과 연루된 호주수도공사에 대해 조사하던 ICAC가 자유당 정치자금 후원자인 지로라모 호주수도공사 전 사장을 심문하던 중 오파렐 주총리에게 불똥이 옮겨붙은 것이다.
지로라모 전 사장은 15일 ICAC 조사에서 그 와인을 택배회사를 통해 오파렐 주총리의 로즈빌 자택으로 보냈으며 나중에 주총리로부터 감사 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오파렐 주총리는 와인을 구입한 2011년 4월 20일 저녁 9시 30분 지로라모 전 사장과의 통화기록이 공개됐음에도 불구하고 와인 수수와 통화 사실을 계속 부인했다.

오파렐 주총리는 16일 사퇴 성명에서 “와인 선물에 대한 저의 감사 메모(thank-you note)가 ICAC에 제출될 것이라는 정보를 간밤에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오파렐 주총리의 감사 표시는 와인을 받았음을 인정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그는 “1959년산 그렌지 한병의 선물을 받은 기억이 없다. 그 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 없다”면서도 “제가 서명한 감사 메모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책임감이란 측면에서 저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이어 “제가 15일 ICAC에게 제공한 증거는 제가 아는 한 최선의 증거였다. 그것이 신뢰할만한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국민들이 경찰 법원 ICAC 같은 감시기관을 신뢰로 대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저는 악의를 갖고 ICAC를 오도할 생각이 전혀 없지만, 이는 저의 중대한 기억 실패가 분명하다. 제 행동의 결과를 수용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또 “다음주에 자유당 의원총회를 가능한 한 신속히 소집해 그 직책에서 사임하고 NSW 주총리 직을 인계받을 새로운 자유당 대표를 선출하도록 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전했다.

● “그렌저 한병은 매우 특별한 선물임에 틀림없다” = ICAC는 오파렐 주총리의 감사 메모를 16일 접수했으며 지로라모 전 사장이 그 결정적인 증거의 출처라고 밝혔다.

제프리 왓슨(Geoffrey Watson) ICAC 자문 변호사는 오파렐 주총리의 감사 메모 카드 내용을 숨겨온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저는 무엇인가 정확한 것을 원한다. ICAC가 카드 관련 정보에 접근했다는 내용을 전해듣고 오파렐 주총리가 자신의 증거를 내놓길 기다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왓슨 변호사는 이어 “무엇인가 거짓을 말한다면, 차라리 밖으로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솔직히 저는 ICAC의 모든 사람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그 말이 거짓이라면 불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2011년 3월 26일 NSW 주총선에서 대승해 노동당의 16년 장기 집권을 종식시키고 3월 28일 제43대 NSW 주총리로 취임했던 오파렐 주총리는 차기 주총선을 약 1년 앞두고 중도 하야했다.

토니 애봇 연방총리는 오파렐 주총리의 사임을 “호주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정직하고 영예로운 행동”이라며 “그는 매우 진실되고 품위있는 사람이다. 지난 3년간 유능한 주총리였다”고 호평했다.
애봇 총리는 하지만 오파렐 주총리가 ICAC를 본의아니게 오도했다(misled)고 지적했다. 그는 “공직자는 수시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은 넥타이, 펜, 와인 한병 등 무엇인가를 선물한다. 그렌저 한병은 매우 특별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 차기 두고 베어드 재무 vs 베레지클리안 격돌 예상 = 오파렐 주총리의 갑작스런 하야에 NSW 정치권에선 차기를 이을 주자를 두고 하마평이 무성하다.

현재 마이크 베어드 재무부 장관과 글레디스 베레지클리안 교통부 장관이 오파렐 주총리를 뒤이을 차기 유력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자유당 관계자들은 차기 후보군이 유동적이라고 밝혔다.

베어드 장관이 차기 주총리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인물이라고 호주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좌파계열인 베어드 장관은 공공자산 민영화 지지 입장 덕분에 우파계열 의원들로부터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2007년부터 맨리 지역구를 대표해온 베어드 장관의 부친은 NSW 교통부 장관과 자유당 부대표를 지내고 존 하워드 연방정부에서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브루스 베어드 씨다.

문제는 베레지클리안 장관이 주총리 경선에 뛰어들지 여부다. 그녀는 오파렐 주총리가 가장 선호하는 후계자로 인정받아 왔다. 그녀는 출마 여부를 두고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좌파계열의 강골인 베레지클리안 장관이 주총리에 등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파계열 의원들이 적극적인 방해공작을 펼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자유당 관계자들은 “누가 정권의 안정성을 제공할지 여부가 핵심 변수다. 이는 파벌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의원들은 NSW를 위해 무엇이 최선일지를 눈여겨 볼 것”이라고 밝혔다.

권상진 기자 jin@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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