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와 만나 결혼해 귀하고 어여쁜 아들과 딸을 낳고 근 30년 넘게 살았다. 지난 생활을 뒤돌아 보며  ‘다 짝이 있게 마련이다.’  라는 말을 실감한다.

연인들은 서로 마주보며 좋아하지만, 부부는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라고들 한다. 부부는 피가 섞인 것도 아니고 같은 환경 속에서 자란 것도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전혀 다른 사람으로 서로 태어났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뭐라고 정의 내리기가 어려운 것이 부부 사이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감정으로 사랑을 먹고 살 수 있지만 그것도 한 삼년 뿐이라고 한다. 아내와 나는 매형이 중매하여 만났다.

정작 색시는 보지도 못하고 네 번씩이나 장인만 보았다.
그때 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안하무인 이었는데 어찌 그 오욕을 참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오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어떤 여자 이기에 그럴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5번째나 돼서야 지금 아내를 만났다.
호텔 스카이 라운지에서 쥬스를 시켰는데 그 여인이 쥬스 잔을 들지 못하고 손을 덜덜 떠는 것이었다. 같이 나온 언니가 그 떠는 손을 잡아 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저런 사람이 다 있을꼬.

하여튼 선 본 사람들이 다 그런 것처럼 나도 이것 저것 물어보고 같이 밥을 먹고 나서 집에 데려다 주려고 택시를 탔다. 아내는 영등포 어느 아파트에 살았는데 육교를 건너야 했다. 어느 아파트에 사는가 보려고 뒷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아니 이런 일이. 그 여인은 육교에 올라 가자마자 어깨에 맨 가방을 손에 쥐고 빙빙 돌리며 가는 것이었다. 도대체 아까 그 모습이 맞는 것인지? 지금 이 모습이 맞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때 장인은 딸들을 빨리 시집 보내고 편히 살려고 그랬는지 이제 갓 학교를 졸업한 방년 22살의 어린 아이를(?) 치워 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거역했다.
장인은 그녀의 어린 동생들의 용돈을 모두 끊어 버렸다.

너의 누나도 다 키워주니 이제 말을 안 듣는데 너희들도 그럴 것이 아니냐는 이유였다. 그래서 돈이 궁해진 동생들이 누나에게 애걸복걸 했단다.
“누나 한번 나가봐.”
지금 생각하니 처녀의 맘에 들어 장가 간 것이라기 보다 장인의 맘에 들어 장가 간 것이 아닌가 생각들 때도 있다.

딸 아이가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딸만 외국에 보낼 수 없어 호주로 이민을 가기로 했다.
내 나이 45살 때였다. 그 당시 이민법이 바뀌어 45살인 사람은 영주권 받기가 어려웠다.
다급해져 나보다 어린 아내의 이름으로 영주권을 받기로 하고 그 때 영주권 획득을 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 식당업이었다.

활발하게 식당을 경영하는 아내에게서 나는 처음 만나던 날 가방을 빙빙 돌리며 가던 모습을 다시 보았다. 전혀 직장생활을 해본 경험도 없고, 더욱이 사업이란 ‘사’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사람인데 자기 나라도 아닌 외국에서 그토록 사업을 잘 해나갈 수 있을까.

아이들이 공부를 마칠 때쯤 해서 그 사람의 엉뚱한 생각이 다시 발동하였다.
자기는 한국에 가서 사업을 정식으로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 때는 가정의 주도권이 이미 아내에게 넘어간 후라 나는 전혀 발언권이 없고 그저 따라야만 했다. 그런데 한국에 나간 아내가 어린아이의 장난이 아닌 어마어마한 사업을 펼치는 것이 아닌가.
소심한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에게 모든 주도권을 주고 나는 뒤로 물러나 앉기로 했다. 이런 모습을 보신 노모는 “이 못난 놈아, 어찌 마누라에게 모두 주고 너는 그 꼴이 뭐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말씀이세요. 모든 것이 다 내 이름으로 되어 있는데요” 했더니
“이름만 네 이름이면 뭐 하냐” 하시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떨어져 산 것이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이렇게 사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우리 부부 사이에 무슨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오해한다. 글쎄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부는 한번도 크게 싸워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알콩달콩 이야기 해본 것도 많지 않고 정말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묘하게도 아내는 북반구에서 나는 남반구에서 떨어져 살며 정말 아내의 존재가 내게 무엇인지 감득하게 되었고 내가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점점 깨닫게 되었다.

그대 자리 비어있고
그대 가고 없으니…

혜선! 너는 나의 영원한 내 짝이야!

임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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