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나는 학생들 이름을 외우는 것에는 소질이 없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없고서는 도대체 기억을 할 수가 없다. 이 특별한 기회가 얼마 전에 있었다. 여느때처럼 이른 아침 캠퍼스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는데 강의 시간에 본 적이 있는 한 학생이 동참을 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우리는 같이 운동을 하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이튼 킹 (Ethan King)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학생은 현재 학년 대표를 맡고 있어 나도 얼굴은 익지만 이날까지 그의 이름은 모르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약간은 어색해 보이는 그의 머리모양에 눈길이 갔다. 주말에 아버지가 머리를 잘라주었다고 했다. 서툰 솜씨로 자르다 보니 들쑥날쑥한 머리가 되었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해 준 사랑의 징표가 못내 소중한 모양이었다.

 
매년 새학기가 되면 전년 한해동안의 성적 우수자에 대한 학장상 수여식이 각 단과대별로 열린다. 학교에서 현재 맡고 있는 보직으로 올해는 내가 이 수여식의 사회를 맡기로 했다. 사회자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수상 학생들의 이름을 한명씩 호명하는 것이다. 받아 본 명단을 보니 며칠 전 만난 이튼 킹의 이름이 있었다. 단조로울 수 밖에 없는 수상식의 분위기에 윤활유 역할을 할 소재로 나는 이 학생의 이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생 두명을 둔 내 자신을 소개하면서 나는 일단 학장상 수여식장을 가득 메운 학부모들과 내가 같은 처지임을 밝혀두었다. 대학생을 가진 우리 학부모들이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성원 중 자식을 위해 이발을 해 주는 것 또한 무시못할 중요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튼 킹의 예를 들어 그 부모를 칭찬했다. 물론 이튼 킹의 부모는 내가 자신들의 아들 이야기를 대중 앞에서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리라. 그리고 나 또한 성인이지만 집에서 아내가 매번 해 주는 이발 덕분에 큰 사랑과 성원을 입고 있다고 했다. 다소 천편일률적일 수 있었던 학장상 수여식의 공기가 단숨에 훨씬 부드러워졌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 중에서>
 
내가 이튼 킹이라고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그는 다만 하나의 학생일 뿐이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학장상 수여식에서 불러주었을 때 그는 온전한 학생이 되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동료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돋보였고 그의 부모는 큰 감명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바로 다음 날 이튼 킹의 아버지는 나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문학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문학회 회원들과 처음 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 회원들 이름은 도무지 얼굴과 연결이 되지 않았다. 만남의 횟수가 거듭되고 한사람 한사람들의 인생사를 알게 되면서 이 연결고리는 점점 명확해지고 있었다. 특히 서먹서먹한 사람간의 관계를 진득하게 해 준다는 음식을 같이 들면서 평소에 타인과 나누기 어려운 이민 이야기, 고부간 이야기, 부부간 이야기, 자식 이야기, 건강 이야기 그리고 가슴이 아려오는 이야기들에 공감을 할라치면 그들의 면면은 이름과 더불어 나에게 꽃으로 다가왔다. 
 
황금 주말이 낀 연휴동안 등산클럽 회원들과 며칠 동안 산속에서 지내다보면 별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자주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가 왜 발음하기 어려운 한국이름을 사용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석천이 아니라 그냥 석이라고 하면 안 되는지 물어오면 나는 단연코 정색을 하면서 안 된다고 대답을 한다. 한국이름은 영어 이름과는 달리 두 음절인 이름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고 부연설명을 한다. 또한 매년 수 편씩의 논문을 외국 저널에 발표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한국 이름을 고집할 수 밖에 없다. 외국인과 같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화 중간중간에 자주 상대방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성이나 직함이 아닌 이름이 대화의 양념 역할을 하는 서양 문화에서는 정확한 이름 사용법이 중요하다. 그래서 방문교수로 호주에 오는 한국 분들이 현지인들과 발빠르게 동화할 수 있는 방법은 한국에서 익숙한 성과 존칭 또는 직함이 들어가는 명칭을 과감하게 버리고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다. 
 
진도 앞 바다에서 침몰한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한 수많은 십대 학생들 부모들은 바다를 향해 자식들 이름을 부르면서 목놓아 운다. 원숭이 어미를 철장에 가두고 원숭이 새끼를 철장 밖에서 학대를 했더니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아야만 한 어미의 속이 얼마나 뭉그러졌는지 나중에 어미의 배를 해부해보니 창자가 다 마디마디로 끊어졌다는 동물실험에서 보듯이 정부의 구조만을 지켜보면서 애를 태우는 우리 부모들은 단장의 아픔을 겪고 있다. 소우주를 품고 있는 부모는 자신들이 외치는 자식들 이름 소리가 팽목항의 바닷물을 솓구쳐 올라 대우주를 뚫고 공명을 일으켜 꽃이 되어 자신들 가슴에 따스하게 살아 되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박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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