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힌다. 옆집 울타리 나무인 차이니스 쟈스민 향기를 맡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일은 마치 큰 선물을 받은 듯 호사스럽다. 푸른 나무에 자잘하게 달린 순백의 꽃. 촘촘한 가지 뒤에 숨어서 향기를 뿜어내는데 그 모양새가 바라보는 이들에게 방긋방긋 웃는 듯하다.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에 실려 싱그러우면서 달콤한 향기가 담장을 넘어서 마실 오듯 들어 와, 향기를 내 집에 잔뜩 흘려놓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향기가 방안에 가득 차면 그 향기가 내 몸에 배여 들기도 하여 하루 종일 향기 나는 사람인양 착각하기도 한다. 향기 나는 사람이라……. 생각만 해도 절로 행복해지지 않는가. 살면서 누군가에게 진정 어린 향기를 뿜어본 적이 있었나? 하곤 골똘히 생각도 해본다. 하여 울타리에 향기가 좋은 나무를 심은 이웃에게 감사하다고 말해야지 라는 충동이 일기도 한다. 내가 교제하는 많은 이들이 울타리나무의 꽃 향기 같은 향기를 풍기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우리네 삶이 아름답고 충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도 향기는 여기저기 존재한다. 맛의 향기, 꽃의 향기, 사랑의 향기, 심지어는 미움에도 향기가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향기 중에서 사랑의 향기가 으뜸이 아닐까 여겨진다.

 
브리즈번에 정착한 지, 근 40년이란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그 동안에 세상은 많은 발전과 더불어 여러 방면으로 생활 수준이 달라졌다.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은 말 할 필요가 없겠지만, 삶의 질이 높아졌다 하여 진정으로 사람의 질도 높아졌는가? 하는 의문이 일지만 주변에서 보기 드물게 향기 나는 가정을 본다. 시내에 인접한 카리나라는 동네에 4대가 한 집에 사는 K교수 댁을 보면 존경스럽다. 전통을 지켜가는, 그야말로 향기가 있는 가정이다. 가족의 위계질서를 중요시하고 교육적 본보기로 가정과 가족사랑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한다. 아울러 오늘날 삼덕의 길인 신(信), 망(望), 애(愛), 덕(德)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가정이다. 할아버지께서는 말씀 하시는 것 보다 경청을 즐기시고 노(老) 할머니는 인자하게 너그럽게 두루 두루 감싸 안는다. 시아버지는 시원시원 하시며, 시어머니는 언제 어느 때 보아도 덕이 넘쳐흐른다. 손자는 다정다감하며 손자 며느리는 사근사근 늘 웃기를 잘 하고 애교가 넘친다. 증손녀 손자들은 현 세대의 즐거움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선사를 하는 꽃들이다. 사랑의 향기가 온 집안 구석구석에 가득 차 있다.       
 
괴테는 ‘사랑은 최대의 모순을 융화하고 친지를 통합하는 길을 알게 한다’ 고 말했다. 옛말에 딸의 혼례를 올리고 시가로 보낼 때 친정부모는 당부한다. 벙어리 삼 년, 맹인 삼 년, 귀 먹어 삼 년을 살라고 했다고 했다. 즉 입을 다물고 말을 많이 하지 않음과 보고도 안 본 척 들어도 아니 들은 척 해야만 시집 가문에 백골을 눕힌다는 이야기다. 예로부터 사람 하나 들면서 가문이 망하기도 흥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며느리 자리에 들어서는 사람의 본분에 따라 가정의 화평을 얻기도 잃기도 했다. 모든 것을 수용하는 사랑. 사랑은 모든 것을 감싸주고 이해하고 괴로움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K교수 댁 가정을 보면서 그 속에서 삶의 경건함과 사랑이 충만한 숭고함의 향기를 느낀다. 상호간에 존재하는 사랑의 본질이 그 가정에 저마다의 향기를 피워내었기 때문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이라고 본다. 
 
이웃집에서 바람 타고 살랑살랑 넘어오는 맛있는 향기를 음미하는 동안, 아름답게 통합하며 사는 K교수 댁 가정을 생각했다. 생각만 해도 흐뭇한 가정을 지척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또한 행복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우려 낸 한 잔의 차를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곤 더러 더러 삶을 힘겨워 했던 내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해 본다. 어찌 식물들만도 못한 아집의 그물에 얽혀 있었나 하는 탄식도 한다. 일년을 살다 세상과 이별하기도 하는 작은 존재의 식물들. 식물의 작은 씨앗들이 세상에 나아가, 작은 씨앗이 꽃이 되고 꽃은 향기를 뿜어내어 세상에 퍼진다. 조건 없이 나누는 사랑이 바로 이것이다. 꽃들처럼 나눔의 향기를 전하는 전령사가 되어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스스로 당부하기를 누군가에게 향기 나는 사랑을 주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래오래 건강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를 한다.
  
김미자(호주한인문인협회, 브리즈번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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