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삼대 미항 중 하나인 시드니항의 오페라하우스 선착장을 갔다. 그곳의 황홀한 광경에 빠져 나도 모르게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무아경으로 거닐었다. 웃통을 벗고 모자 하나만 쓴 채로 긴 퉁소를 불고 있던 악사. 전신에 금 물감, 은 물감을 칠한 남자 예술가. 갖가지의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 가히 인종 시장을 방불케 하는 삶의 모습을 보며 인간의 생존 과정은 천태만상 만물유도라는 생각을 절감했다.
 
싸늘한 강바람을 마셔가며 오페라하우스 쪽 난간을 따라 거닐었다. 여러 인종으로 섞인 인파가 몰려오는 모습이 문득 색다르게 보였다. 젊은 사람들은 손에 손을 잡고 행복감에 취한 듯 희희낙락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또한 갈색머리의 한 청년은 어머니인 듯한 노인을 휠체어에 태우고 이리저리 다니며 손으로 사방을 가리켜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여줬다. 모자간에 따뜻한 대화가 오가는 것을 보며 이것이 진정한 효자상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찬란한 네온사인 불빛에서도 우산을 펼쳐 둘만의 공간에서 다정하게 속삭이는 젊은 연인들이 행복하고 예쁘게만 보였다.
 
세계적 명소인 오페라하우스는 환희에 찬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긴다. 그 사람들은 저마다 가는 길도, 생각도, 마음에 둔 뜻도, 그 날 그 날의 행적도 다르다. 이것이 진정한 만물유도가 아니겠는가! 이 항구에서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고 감상하는 모든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내는 원동력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나’라고 하는 인격도 형성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페라하우스의 아름다운 모습에 새롭고 많은 희망들로 가득찬 삶이 창출될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관광객, 현지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찌들고 힘든 생활과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기 위해 이 시원한 선착장에 몰려드는 것 같다. 진정 이 아름다운 곳에서 두뇌를 재충전하면 우주 개발인, 예술인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갖가지 분야에 중요한 인재가 나타날 것 같다.
 
문득 30여년 전 온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 나폴리 항구를 갔던 게 기억난다. 그 때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려 했는데 노천명 시인이었다. 그 분을 그곳에서 만날 줄이야. 생각해보니 그 분도 잠시 모든 것을 잊고 바닷바람을 느끼며 새로운 것을 충전하려고 왔던 것 같다. 그 때 서로 안부를 주고 받으며 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써큘러키 선착장 난간에 손을 얹고 네온사인 불빛이 반사돼 금빛으로 출렁이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과거, 현재, 미래를 회상해 봤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한국 땅의 자그마한 마을에서 고고한 인생의 첫 출발을 했다.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으로 자랐지만 어릴 때는 일제 강점기라는 혹독한 상황 속에서 성장했다. 지금 이 호주 땅에서 과거와 미래를 돌아보며 저 푸른 바다와 황혼으로 물든 아름다운 하늘과 출렁이는 바다 위의 배를 바라봤다. 이렇게 우주와 인생에 대한 각가지 인간의 삶을 생각하니 노년 말기에 이르러 명소 오페라하우스 앞 아름다운 선착장에서 서 있는 나를 다시 한 번 조명해 보게 된다. 진정 저렇게 아름다운 황혼의 광경처럼 아름답게 생을 마감해야 하는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인간을 풍자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인간의 욕심의 발로로 과거, 현재, 미래는 생각지도 않고 무작정 큰 고기만을 잡으려고 했다. 결국 큰 물고기 한 마리는 잡았지만 너무 멀리 가서 돌아오는 길에 폭풍우를 만났다. 구사일생으로 멕시코만에 도착하니 그렇게 고생하며 잡은 고기는 이미 다른 고기 떼에게 갈기갈기 뜯어 먹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였다. 인생 항로에 있어서 과욕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교훈을 남긴 문학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과욕은 무욕과 같다고 했던가?
 
문화와 예술 분야는 삶의 길을 결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다양하게 비춰 보려면 문화와 예술은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른바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도 할 만큼 이 분야는 중요하다. 아울러 앞으로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해 뻗어나갈 수 있는 가장 유리한 분야이기도 하다. 정말 한국의 작은 땅에서 오래 전에 태어난 ‘나’가 이 곳 호주에서 살 줄 꿈엔들 알았을까?
 
어느덧 고층 건물 빌딩마다 불빛이 발사되며 천지가 아름답게 물들었다. 아름다운 색채를 띤 물결 위에 어둠이 깔리니 갈매기들도 자기의 보금자리를 찾는 것 같았다. 즐겁게 모여들었던 많은 사람들도 가로등 불빛이 하나 둘 켜지는 모습에 발걸음을 어디론가 재촉했다. 불빛에 감싸진 남녀의 모습이 더욱 아름다웠다. 소녀 시절 영화에서 본 환상적인 그림 같은 장면이었다. 나란히 서있는 그 둘이 뒤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 모습이 물결에 비쳐 참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꿈의 세계인 것만 같았다. 선착장에 정박한 큰 여객선. 바다에 비치는 오색찬란한 아름다운 빛. 로마풍의 장대한 건물. 조개 껍데기 모양의 오페라 하우스. 주위의 멋있는 건물들. 물결 위에 떠 있는 수많은 레스토랑들. 이 광경이야 말로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꼭 보고 싶어하는 명물 오페라하우스의 환상적인 전경이다. 지금 이 유명한 거리에 서 있는 행복감을 만끽하며 틀에 박힌 삶의 연속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다. 또 즐거운 삶의 토막을 한 번쯤 맛보는 기쁨을 갖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이미 우리들은 인간의 삶의 과정이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 인생 행로는 다양한 과정을 겪어야만 생을 마무리 짓는 것을 알고 있다.
 
기쁠 때도 있고 눈물 흘릴 때도 있다. 혹독한 삶의 시련으로 밤을 설치기도 한다. 재난과 고통을 겪기도 하고 병마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렇게 인생에는 다양한 상황이 도래한다. 그런 와중에도 대자연에 뻗은 무지개처럼 각자 희로애락을 느끼며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신기한 느낌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고귀하고 올바른 참된 길을 찾아 값지고 만족할 수 있는 행복이란 정점을 찾아야 한다. 인성과 지성의 조화에서 창출되는 나를 찾아가는 모습이 그립다. 하느님은 주일마다 천국의 메시지가 갈급한 심령에게 단비와 축복을 내리신다. 이것이 하느님의 은혜인 것 같다. 이제 범사에 감사해야 할 때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던 ‘나’. ‘아! 나는 지금 행복을 진정 맛보고 있구나.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나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둠 깔린 바다 위의 잔잔한 물결이 넘실거리고 가로등 불빛에 비친 사람들은 다들 행복해 보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보이고 그 모습이 바로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행복은 바로 나의 마음인 것, 나의 곁에 있는 것!
과거는 항상 아름다운 마음의 고향, 그리고 즐거워야 할 오늘의 인생이란 노천명의 시 한 수를 무성으로 중얼거리며 써큘러키의 아름다운 야경을 머릿속에 다문 채 발길을 돌렸다.
 
유성자(호주한국문학협회 부회장,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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