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호주를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랜만에 얼굴을 폈다. 일본 총리로는 세 번째로 행한 호주 연방의회 연설에서 호주-일본과의 특별 관계를 강조한 아베 총리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자유무역협정’도 체결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아베 총리가 호주의 토니 애봇 연방총리로부터 최근 일본의 재무장과 집단자위권 확대정책에 대한 적극적 지지를 얻어냈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대로 아베 총리는 ‘힘 있는 일본’을 회복한다는 기치로 경제뿐 아니라 군사적으로 일본을 세계 정상으로 만들겠다고 큰 소리를 쳐왔다. 그러나 아베노믹스로 알려진 경제회복정책은 별 뚜렷한 성과를 만들지 못했고,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군사와 외교면에서 ‘강한 일본’을 드러내려고 더 신경을 쓰고 있다. 때문에 쉽지 않은 현 평화헌법의 개정보다는 정부의 공식 재해석이라는 꼼수를 통해, 그동안 공격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었던 일본군을 선제 공격까지 할 수 있는 군대로 바꿔 버렸다.
이는 군사비 지출 기준 세계 5대 군사강국에 속하는 나라의 정책 변화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기존 질서를 뒤집을 만한 사건이다. 그러나 여기에 역사적 맥락까지 더해지면 이 상황은 더 위험하다. 한국, 중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은 한 세대가 끝나기도 전에 일제의 만행을 경험한 적이 있었고, 일본이 충분히 과거사를 청산했다고 믿기 어려운 입장이다. 때문에 최근 시진핑 중국 주석의 한국 방문에서도 한중의 역사적 공감대를 재확인하며 아베 정부를 압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변화에 대한 위기감은 주변국 뿐 아니라 일본 안에서도 발견된다. 여전히 다수의 일본인들은 평화헌법이 전후 경제부흥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정착을 가져온 근간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아베 수상의 시도 속에서 과거 일본의 경제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황폐화시킨 군국주의의 부활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 같다. 불행히도 근대 일본의 역사를 보면 항상 자국의 이익과 보호를 이유로 주변국을 침략 학살하고, 자국 내 국민의 권리까지 억압했던 전력이 분명히 드러난다. 현재 일본의 경제 불황이 계속되고 민족적 자존감이 많이 무너진 상황에서, 예측불허의 북한과 점점 더 커져만 가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은 과거에 향수를 잊지못하는 일본 우파들에게는 충분히 과거회귀의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호주정부가 아베 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적지않은 유감이다. 물론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한 나머지 호주-일본의 군사적 공감대가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덧붙이긴 했지만, 일본의 재무장이 노리는 진짜 타깃이 누구인지는 누구나 다 아는 상황에서 눈가리고 아옹하는 식이다. 쇄락해가는 미국을 대신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이런 시도에 대해 몇마디 외교적 수사로 문제를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애봇 정부의 국제정세 파악 수준도 너무 안이하다고 할 수 있겠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을 부추김으로써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깊은 뿌리를 가진 동북아의 긴장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이러한 행동은 결국 호주에 살고 있는 교민들까지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 동북아의 평화관계가 강화되고, 한국의 입장과 호주의 입장이 더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만 호주에 사는 한인들이 불편한 선택을 강요받지 않게 될 것이다. 이점에서 재호 한국공관은 지금이라도 더 부지런히 나서서, 동북아 상황의 심각성과 일본 재무장에 대한 한국정부의 공식적인 우려의 입장을 널리 전달하고, 적어도 호주정부가 별 실익도 없는 부분에 한국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그냥 있어도 각국의 이해가 첨예하고 맞서는 시대에 보다 긴밀한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적어도 복잡한 정세 덕분에 우리 교민들이 새우등이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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