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구조는 흔히 스토리텔링(storytelling)과 동일한 개념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큰 범위를 내포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는 오직 문자 언어로만 이루어지는 서사 구조가 예술세계에서는 영화의 배경이나 대사, 미술의 이미지, 음악의 효과 그리고 과학, 의학, 법학 등 모든 일상생활 속 깊숙이 까지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에서 발생하는 모든 인과 관계로 엮어진 실제 혹은 허구적인 사건들의 연결이 곧 서사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학적인 측면에서 이야기 효과란 성향적으로 접근이 어려운 각종 병력을 가진 각각의 환자들 또는 전문적인 의학상식이 부족 하거나 이해능력이 결여된 환자들 에게도 쉽게 서사구조로 접근하면 심상적으로 환자와 치료자의 감정 교류를 통하여 잠재되어 있던 전혀 새로운 관점을 부활, 호기심을 유발시킴으로써 특정한 기대를 형성시키고 만족시킴으로써 보다 쉽게 목적(치료)에 도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학분야 독자들을 위한 문학적 개념
의학도나 의사들은 장르, 내러티브적 관점, 독자 반응, 서브텍스트, 메타텍스트, 심상 등의 문학적 개념을 습득함으로써 방법론적으로 그동안 가지지 못했고 임상진료에 적용하고자 생각지도 못했던 능력을 가지게 된다. 
 
“무의식도 역시 언어처럼 구조를 갖고 있다” 는 자끄 라캉1)에 따르면, 문학과 의학은 질병과 건강 역시 언어와 같은 구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 
 
산문의 의미생성에 대한 미셸 푸코2)의 설명 역시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또한 이 명제의 흥미로운 역이 되는 이른바 언어가 질병과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는 점 또한 시사하고 있다.
 
언어는 우선적으로 그 원초적인 존재에 있어 단순하고 물질적인 형태로서 사물에 대한 낙인, 즉 언어의 가장 선명한 형태의 일부인 세계에 걸쳐 새겨진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자연과 언어가 서로 섞여 무한의 효과를 형성함으로써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이들에게 하나의 광대한 단일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질병이 언어와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면 의사는 환자의 말을 잘 듣고 질병의 의미를 해석해야 할 것이며, 환자와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받을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할 것이다. 
 
질병이라는 언어의 심층구조가 전달하는 내용을 포함한 의학적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이야기 구조의 틀, 시간, 플롯, 욕망 등의 기본적인 문학적 개념들이 문학과 의학의 광범위한 목표를 향한 과정을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쟈끄 데리다3)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죽음이란 부재의 여러 사례들 중 하나가 아니라 부재 그 자체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10년 전, 나는 말기 췌장암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비행기에 올랐었다. 
 
그로부터 4개월... 아버지가 운명하시기까지 병원에서의 사투는 환자는 물론 우리 가족 모두의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한줄기 희망으로 붙잡고 싶었던 치료에 대한 열망 그러나 의료행정이나 치료방법이 환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그 기억들을 통하여 당시 의사와 환자 혹은 의사와 가족들과의 부재된 소통 그리고 실종된 신뢰와 불합리한 요소들을 통해 그동안 나의 내면에 고여 있는 후회와 아픔, 그리고 분노를 확인하고 해소를 위한 방법론적 욕구(글쓰기)에 접근해 보기로 한다.
 
병(illness)의 이야기
췌장암이란 췌장에서 발생한 암이며 췌장은 위장의 뒤에 있는 길이 20cm정도의 길쭉한 장기로서, 우측은 십이지장에 둘러 싸여 있으며 왼쪽 끝은 비장과 접하고 있다. 췌장의 주된 역할은 소화액을 만드는 것 (외분비)과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 등 여러 호르몬을 만들며 (내분비)췌장이 만드는 소화액은 췌액이라고 불리며 췌장 속에 그물처럼 존재하는 췌관이라고 하는 가느다란 관 속으로 분비된다. 
 
원래 췌장암은 암중에서 악성인데다 말기에 발견되므로 말기 진단이라면 6개월 이내에 대부분 사망한다.
 
한국 암 등록사업 보고서에 의하면 췌장암은 60대에서 많이 발생하며 남녀의 비율은 비슷하지만 남자가 여자에 비해 조금 더 많다. 
 
췌장은 몸의 한 가운데에 있으며 위, 십이지장, 소장, 대장, 간, 담낭, 비장 등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암이 발생해도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고 수술도 어렵다. 
 
수술을 하려면 주변 장기를 다 드러내야 하는 큰 수술이 되며 초기단계에서는 특징적인 증상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위암이나 대장암처럼 조기일 때에 발견되는 일은 거의 없고 말기에 이르러서 발견된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었던 치료과정
연로한 아버지는 심한 말기암 통증에 시달릴때마다 죽음을 떠 올리셨다. 
 
사실상 암환자들이 통증보다 더 무서운 공포는 죽음이다. 
 
그런데 어느 날 병원에서 느닷없이 퇴원을 강요했다. 강제퇴원을 놓고 가족들은 설왕설래 추측이 많았지만 속 시원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좀 나아졌으니 집에서 쉬다가 아프면 오라' 는데 환자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은 의학 전문지식이 없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다음호에 계속)
 
그라시아(문학사랑회 회원)
 
각주
1) 쟈크 라캉(Lacan, Jacques Marie Emile 1901~81) :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파리 태생. 1932년 의사자격을 취득한 뒤 평생을 정신과의사 겸 정신분석학자로 보냈다.
2)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1926~1984)는 프랑스 철학자로서 프랑스에서는 사르트르 이후의 최고의 철학자로 꼽힌다.
3) 쟈크 데리다 (Jacques Derrida, 1930~) 프랑스 철학자. 알제리 엘비아르 출생.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활동, 난해한 사상가이다. 주로 해체(deconstruction)이라 불리는 학파 또는 계보의 선두주자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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