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ul Newton의 작품 Portrait of Frank Lowy AC, Oil on Belgian Linen, 222 x 122cm
또 일년이 지났다! 벌써? 매년 아치볼드 위너가 발표될 때마다 너무 빨리 흐르는 시간에 당황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분명 386세대였던 나는 이제 486, 아니 586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지나는 세월을 아치볼드와 함께 느끼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해마다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만나는 건 언제나 설레고 재미있는 일이다.  
 
아치볼드 프라이즈(Archibald Prize)는 NSW 주립 미술관에서 주최하는 명실공히 호주에서 가장 인기있는 초상화 공모전으로 해마다 최고의 인물화에 수여되는 상이다. 인물화의 모델은 반드시 호주의 정치인부터 과학자, 연예인, 예술인 혹은 스포츠인까지 호주 사회에 주목할만한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한정하고 있다. 따라서 호주사회 깊숙히 어떤 어떤 사람들이 포진해 있는지 판가름 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신문 불리튼(Bulletin)의 편집장이었던 아치볼드(J.F. Archibald)가 재산의 십분의 일을 기부하면서 만들어진 이 대회는 1921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이후 93년이 흘렀으니 그 긴 세월만큼이나 그에 따르는 수많은 에피소드와 논쟁거리가 있고, 당연히 호주 미술사의 흐름이나 역사까지도 엿볼 수 있다.
 
아치볼드의 위너가 된다는 건 예술계 스타를 넘어 유명인사로 등극하는 등용문이 되기도 하니(벤 퀼티를 보라, 소년처럼 수도 없이 자동차를 그려대던 그가 이제는 호주의 국민 화가가 되었다!) 호주에 거주하는 모든 아티스트들의 로망이요 워너비 공모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Joanna Braithwaite의 작품 Bright Spark, Oil on Canvas, 198 x198cm
올해 아치볼드상에는 총 884점이 출품되어 그중 54점이 전시되고 있다. 그 중 우승자는 올해 나이 마흔의 시드니 아티스트 피오나 로리(Fiona Lowry)로 올해의 상금 7만 5000달러와 함께 보장된 명성과 미래를 집으로 가져갔다. 
 
꿈꾸는 듯 신비스런, 동시에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올해 우승작 모델의 주인공은 페넬롭 사이들러(Penelope Seidler)다. 호주 건축계의 빅 네임, 해리 사이들러(Harry Seidler)의 미망인이며 그녀 자신 또한 건축가이다. 작가는 6년 전 알렉산드리아의 한 전시 오프닝에서 처음 페넬롭을 보고 그녀의 분위기에 매혹되어 작품화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작품 속 페넬롭의 세월의 흔적을 음미하는 듯한 시선에서는 강한 향수가 묻어난다. 아름다운 은발을 늘어뜨린 초로의 여인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해리 사이들러와의 48년간의 결혼생활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남편이 디자인한 킬라라 소재 모더니즘 하우스의 정원에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있고 그 센치멘탈한 순간을 피오나 로리는 얄미울 만큼 영악하게 잡아냈다.
 
아치볼드전은 때로 누가 그렸냐보다 누구를 그렸냐가 더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올해 입선작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 ‘가시나무새(The Thorn Birds)’의 작가 콜린 맥컬로우(Colleen McCullough)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책에 묻혀, 악화된 건강에도 포기하지 못한 담배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최근 우디 알렌의 영화 ‘블루 재스민’에서 흔들리는 눈빛과 불안정한 목소리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자랑스런 호주산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의 같은 사람, 다른 표현도 볼만하다. 시드니모닝헤럴드 미술 비평가 존 맥도날드(John McDonald)에 의해 올해의 가장 지루한 작품으로 평가된 또 다른 작품의 모델은 웨스트필드 그룹의 창업주 프랭크 로위(Frank Lowy)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서재에 걸어놓기에는 흠잡을 데 없지만(아마도 금빛 액자틀을 하면 그의 금시계와 뱃지, 그리고 금색 버클과 아주 잘 어울릴 것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14년이나 지난 시점의 입선작으로 걸리기에는 말 그대로 참 싫증난다. 맥도날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 2014년 아치볼드 당선작품과 모델 Penelope Seidler, 그리고 작가 Fiona Lowry
올해의 아치볼드 당선작은 전통적으로 보수적 시각이 지배적인 아치볼드 선정 경향을 여러 가지 의미에서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은 지난 90여 회 동안 당선작가의 90%, 당선작 모델의 85%가 남성이었던 편파적인 성별 기호가 뒤집어졌다. 또한 전통적인 오일 페인팅에 대한 종교도 무너졌다. 피오나 로리는 에어브러쉬를 이용하여 붓에 의한 직접적인 물리적 접촉이 전혀 없이 작품을 완성했다. 그녀의 작업실을 상상해보자. 카메라, 프로젝터,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공업용 페인트와 에어브러쉬 도구, 다양한 굵기의 노즐들, 클수록 안정적인 파워를 보장하는 컴프레서, 그리고 컴프레서가 공기를 압축할 때마다 불쾌하게 뇌파를 자극하는 간헐적인 소음들, 환기 시스템...화가의 아틀리에라는 단어에서 오는 감성적인 공간은 그야말로 워홀(Warhol)이 말하는 공장(factory)의 모습이 되어있다.  
 
나아가 지난 93년 동안 당선자는 100% 코카시안 백인, 그리고 오직 3%의 원주민을 제외한 우승작 모델 역시 97%가 백인이다. 인종적으로 아치볼드는 아직도 백호주의의 우산 아래 있다. 그 많은 애보리지날 아티스트는 어디서 뭘하고 있으며, 그 수많은 이민자들과 그들의 재능있는 2세들은 과연 언제쯤 철옹의 흰 장막을 뚫고 우승자로 입성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7월 19일 시작한 전시는 9월 28일까지 계속된다. 올해는 특히 한국어 작품 안내도 들을 수 있다. 8, 9월 두달 간 매주 수요일 오후 1시에 미술관 입구 안내데스크에서 시작해 약 한시간 정도 진행된다. 한국어 작품 안내는 무료이지만 전시 관람료는 성인 기준 $12이다. 또한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 하일라이트 작품에 대한 레귤러 한국어 안내도 병행 진행된다.
 
이규미
NSW 주립 미술관 커뮤너티 앰버서더(Community Ambassa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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