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김치를 테마로 삼고 예명도 ‘김치다’라고 해서 김치를 그리는 화가로 예상했다. 기자의 추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는 김치를 영감으로 작품을 그리지만 그림에서 김치가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김치다 화가의 그림은 김치의 색감 그리고 김치가 지니고 있는 원숙한 과정들이 추상적이면서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중학교 때 호주에 와 AFY(All For You라는 의미의 호주국제문화미술그룹)을 창립하고, 김치를 메인으로 한복의 디자인 등 한국적 미를 미술로 녹여내어 호주 예술계로부터 센세이션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주목할 만한 화가로 손꼽히고 있는 만 27세 젊은 화가 김치다씨를 만나보았다.
 
▶김치다라는 예명이 매우 독특하다. 어떤 계기로 만든 것인가?
내 본명은 김태은이다. 처음 호주에 와서 만들었던 영어 이름은 리차드다. 당시 영화배우 리차드 기어의 팬이어서 이름이라도 리차드 기어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리차드라 했었다(웃음). 그러다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뭔가 의미를 담은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고민 끝에 만들어진 이름이 바로‘김치다’이다. 우선 발음이 외국인도 하기 쉽고 김치를 소재로 하는 내 그림 컨셉과 딱 맞아 떨어진다.
 
▲ 스트라스필드란 제목의 그림으로 스트라스필드 메인 거리풍경을 한복의 색동 저고리로 은유적으로 표현해 호주 현지인들에게 보기 드문 기발한 작품으로 찬사 받았다
▶김치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우리 집 식구는 부모님을 포함해 나와 남동생 이렇게 4명이지만 김장철에는 무려 배추 100포기는 기본으로 하는 집안이었다. 그래서 김장을 할 때면 부모님을 돕는 것이 일상관례였다. 그러던 차 김치달인이라 불리실 정도로 김치 맛을 기가 막히게 내시는 어머님을 보며 고유한 영감을 받았다. 소금으로 배추의 숨을 죽이고 고춧가루를 비롯한 재료로 화려한 색을 입혀고 숙성기간을 거쳐 맛이 완성되는 김치가 하나의 위대한 예술작품과 다를 바 없다고 여긴 것이다. 고로 내 작품 철학의 원천은 어머님의 손맛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천일염은 그림을 그릴 때 물감과 함께 사용하는 그만의 특별 재료다(물감에 소금을 섞어 손으로 직접 버무려 캔버스에 펼친다)
▶김치가 소재지만 당신의 그림에선 김치가 보이지는 않는다. 이유가 있는가?
김치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김치를 만드는 방식이 기반이 되어 제작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치를 담그는 느낌처럼 물감에 소금을 섞어 손으로 버무려 캔버스 위에 펼쳐낸다. 마치 김치도 손맛이 있듯 관객도 나의 그림을 보며 깊은 손맛이 느껴지길 원해서이다.
아울러 김치를 담그는 것이 사람이라면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은 자연과 시간이다. 그래서 나 또한 작품을 제작할 때 자연과 시간이 함께 작품을 완성한다 생각하여 숙성과정이 있다. 일정한 숙성기간을 거치면 완성된다는 점 또한 김치와 비슷하다.
 
▲ 호주 방송에 소개된 장면
▶호주엔 중학교 때 온 걸로 들었다. 어린 나이에 호주에 와서 힘든 점은 없었나?
어릴 때 꿈이 외교관이었기에 막연하게 외국에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호주유학을 하면 어떻겠냐 하셨을 때 적극적으로 동의를 했다. 그렇게 호주에 와 고등학교 때 미술을 가르쳐주셨던 앤드류 톰슨 선생님을 통해 단순히 취미로만 여기던 미술을 천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미술이 얼마나 자유로운 예술인지를 알려주셨던 그때의 미술 선생님이 계셨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 여긴다. 그 후 UNSW주립대 미술대학인 College of Fine Arts 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같은 대학에서 대학원을 졸업했다. 올해로 내 나이가 호주나이로는 27세이고 한국나이로는 29세다. 중학교부터 한국에서 군 복무를 마친 시간을 뺀 모든 기간을 호주에서 머문 셈이다. 처음엔 영어를 빨리 배우기 위해 한국 친구보다는 외국친구와 어울리기 위해 애썼다. 영어실력은 늘어났지만 그에 비례해 한국에 대한 그리움은 더 커졌던 점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고국에 대한 향수를 미술로 녹여낸 것인가?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미술을 타국에 와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나가고 또 그 일로 하여금 나의 욕심만을 채워주기보다는 많은 사람에게도 즐거움을 주고 더 나아가 고국에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원에 다닐 당시 김치를 소재로 미술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와 함께 미술을 통하여 국제문화교류에 기여하고자 하는 20여 개국에서 모인 32명의 화가들과 함께 AFY (All For You라는 호주국제문화미술그룹)을 창립했다. AFY미술그룹의 디렉터이자 화가로서 활동하며 여러 전시회를 기획했다.
 
처음 AFY미술그룹의 전시회를 기획하여 개막식을 했을 당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관객들이 전시회를 찾아주셨다. 수백 명의 관중들 앞에서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연설을 했을 때를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 다음날 녹초가 되어 집에서 혼자 저녁을 먹으며 TV를 켰는데 뉴스에서 내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놀랬던지 들고 있던 수저를 놓치기도 했었다(웃음).
 
▲ 외교통상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외교부에서 상도 받은 걸로 안다. 어떤 상인가?
우연히 외교부에서 주최한 ‘바람직한 국가이미지’ 에세이공모전을 알게 되어 참가했었던 것인데 감사하게도 내 글을 좋게 봐주셔서 외교부에서 상을 받은 것이다. 
 
▶당신 작품에 대한 호주인의 반응이 대단해 열렬 팬 층도 구축되었다고 들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호주 팬을 소개한다면?
내 작품을 좋아하는 호주 분 중 한 분이 보석회사 사장님이셨다. 우연히 길에서 그림을 들고가다 마주쳤는데 내 손에 들려있던 그림을 굉장히 맘에 들어 하시며 즉석에서 구매하길 원하셨다. 하지만 그때 그 작품은 부모님께 선물해드리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라 양심상 판매하기는 어렵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매우 아쉬워하셨지만 추후 나의 다른 작품을 구매해 주신 고마운 팬이시다.
 
▶당신처럼 호주에서 예술활동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
아쉽게도 호주에서 미술활동을 하는 한인 후배들을 만나본 적은 별로 없다. 그래서 앞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진심으로 응원도 하고 싶고 함께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격려도 해주고 싶다. 부모님 곁을 떠나 멀리 유학을 와 지낸다는 것은 몸도 마음도 힘든 일이다. 그럴 때일수록 유학생활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좋은 취미생활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배예술가로서가 아닌 유학을 먼저 온 사람으로서 건네고픈 조언은 스포츠를 외국인과 함께 즐기라는 것이다. 운동은 영어를 못 해도 통하는 것이다. 특히 호주는 각종 스포츠를 즐기기에 좋은 환경인만큼 적극적으로 호주인과 스포츠로 가까워지는 것을 권한다.
 
▲ 김치다 화가를 상징하는 패션아이템페도라를 쓰고 호주에서 전시회를 오픈한 이후 화가로서의 감각을 표현해주는 아이템이자 자신의 마스코트로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이루고픈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호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다. 내년 한국에서의 개인전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후 미국과 유럽 그리고 호주 등에서의 전시회 또한 준비해나갈 예정이다. 그리고 AFY미술그룹을 호주뿐만 아니라 한국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선보일 수 있도록 국제전시회를 기획해 나갈 것이다. 화가라는 직업이 해낼 수 있는 활동영역의 폭을 극대화 시키고 싶다. 그래서 작품을 만들고 전시회를 열고 기획도 하며 국제문화교류속에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문화외교관이 되고 싶은 것이 궁극적인 나의 꿈이다.
 
김서희 기자 sophie@hanhodaily.com / 사진 남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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