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인사 영입문제로 분당설까지 나돌았던 새정치연합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 리더십 위기는 박영선 원내대표 개인과 새정치연합이란 당뿐 아니라 정치계 전반에 오랜 상처로 남을 것 같다. 다른 나라 같으면 나라를 뒤흔들만한 사건이 줄줄이 터져도, 한국정치는 전혀 해결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자기 보호와 변명에 급급한 청와대와 여당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전혀 대안으로 역할을 못하는 야당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덕분에 한국 정치에 대한 혐오만 커지는 형편이다. 
 
물론 여기에는 특정 정당의 능력 문제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구조적 현실도 한 몫을 한다. 변화를 거부하는 노인사회, 기득권 유지에 집착하는 보수사회로 굳어가는 현실 속에서 변화나 개혁 화두는 유행 이상의 호소력을 가지기가 어렵다. 물론 모든 노인층이 보수도 아니고 진보가 말하는 개혁이 항상 정답이 될 수도 없지만, 이제 선거로 한국사회의 틀을 바꾸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징조가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보수세력이라고 이런 상황을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보수가 신봉하는 자유경쟁체제의 우월성은 근본적으로 경쟁이 가져다 주는 긴장과 이로 인한 역동적인 발전에서 나온다. 보수가 경쟁할 만한 상대가 없게 된 한국 정치판은 진보의 위기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수 자체의 퇴화와 자체 개혁능력의 상실을 통한 자멸로 이끌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좋은 소식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원인만으로는 이번 야당 위기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절제가 안 되는 파벌싸움과 분열로 현 야당은 제대로 된 정치적 협상능력을 가지지 못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현 정부를 대신할 수권능력이 있는 지는 더 미덥지 못하게 된 상황이다. 야당 일부에서는 유력한 대선후보 같은 실권자들이 나서서 ‘더 강력한 리더십’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지만 이것은 야당 위기, 더 나가서 현 정치위기의 핵심을 잘못 집어낸 이야기다. 야당의 문제는 분열이 아니라 분열을 조정하고 이것을 수렴할 조정 메커니즘의 부재가 낳은 위기다. 이러한 위기는 야당뿐 아니라 여당/청와대 안에서도 눈에 띄기에 야당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 정치문제다.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정치체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다양성을 제대로 반영하면서도 운영에 필요한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조정체계’다. 지금 위기를 맞은 야당뿐 아니라, 비교적 속이 편할 여당 역시 이러한 조정체계를 개발하는 데 실패하면 우리 자손들의 21세기 한국사회는 정치 때문에 망하게 됐다는 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단순히 여당의 독주를 막는 장치로 만들어진 ‘선진화’법을 여당에 유리하게 개정하는 식의 퇴보로 가자는 말이 아니다. 개헌까지도 포함한 한국 정치시스템의 재검토와 타협체계의 확립을 위한 국민과 여야 모두의 중지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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