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선현들의 말을 근래에 와서도 새록새록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도 감수성이 예민해 푸른 하늘에 흰구름 한점만 둥실 떠 있어도 마음 속에서 복받쳐 오르고, 봄 동산에 꽃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만 보아도 ‘가는 시간을 잡지 못한다’는 속담을 새삼스럽게 실감하면서 거울 앞에 비춰지는 주름살 투성이의 자화상(自畵像)을 바라본다. 그래도 미수가 되도록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면서 스스로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눈이 맑게 보여서 감사하고 귀가 청청하게 들려서 감사하고 거울 앞에 앉아서 문장할 정도의 밝은 기력이 있어서 감사하고 나름대로 걸어 다닐 수 있어서 감사하고 여러 벗들과 정담을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리고 책을 읽고 독서 삼매경에 심취하며 식욕이 왕성하고 그리운 고향 소식 접할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니 인생의 종착역을 눈 앞에 둔 노년에 이 모습이 쑥스럽기도 하다.
 
간혹 자녀들이 집에 들러 음식이 짜다 싱겁다 평가할 수 있어서 감사하며 때로는 부부 간에 가치관과 견해 차이로 논쟁도 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무엇을 어떻게 입을까 망설이는 감각도 있어서 감사할 뿐이다. 조석으로 조용한 시간 따라 혼자서 중얼거리며 그 옛날에 익혔던 음정을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며 정서적 감각이 조금은 살아있는 것이 참으로 감사할 뿐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가장 감사한 것은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영성과 인성 지성의 조화를 모색하며 영육 간에 건전함을 주시니 더욱 감사할 뿐이다. 속담에 수염이 삼척이라도 먼저 먹어야 양반이라고 했던가? 참으로 무엇을 먹어도 꿀맛 같아서 정말 감사하다.
 
뜰 앞을 바라보니 소리 없이 봄은 성큼 다가왔다. 앙상했던 조그마한 대추나무에도 파릇파릇한 잎이 솟아났으며 집집마다 담장에는 철쭉꽃이며 울긋불긋한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있다. 그리고 보니 우리 집 정원에 얼마 전에 상추며 고수 등 여러 가지 씨를 뿌려놓고 어서 빨리 땅을 헤치고 나오라고 매일 아침 바라보며 인사하듯 중얼거렸더니 그 소리를 들은 듯 새싹들이 무거운 땅을 비집고 야들야들한 모습을 드러냈다.
 
신비스럽고 귀엽고 신기하다. 참으로 자연 법칙은 거짓이 없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새싹의 수줍은 듯한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다. 새싹 옆에는 큰 공기만한 돌 조각이 흙을 누르고 있다. 돌을 치워주며 ‘얘들아 언제까지나 나의 옆에서 예쁘게 자라다오, 그리고 언제나 정원지기가 되어서 함께 살자꾸나’하고 속삭인다. 새싹 옆에는 잡풀이 함께 솟고 있다. 그 풀을 제거하며 거듭거듭 그들 새싹과 정을 나누었다. 이들은 나의 속삭이는 사랑의 소리를 분명 들은 것이다. 예쁜 새싹을 두고 나는 선약을 지키기 위해 헤어져야만 했다. 달리는 차 속에서도 계속 그 새싹들의 자태가 아른거린다. 나는 오늘 젊은 학생들로부터 특별히 초청을 받고 타운홀 행사장에 갔다. 그러나 기차의 연착으로 조금 늦어서 그 곳은 이미 끝나고 제 2 장소인 오페라 하우스 선착장으로 갔다. 젊고 패기 넘치는 대학생들 중 특히 우리 교회에 자랑스러운 귀염둥이 ‘김태수’군과 그외 남녀 여러 명이 선착장에 태극기며 전단지를 붙여놓고 우리의 전통 악기 꽹과리, 북, 징을 잡고 어깨에는 사물놀이 띠를 두른 뒤 공연을 시작한다.
 
오늘은 해외 청년 동포들이 각 나라에서 같은 시간에 한국의 일제치하 해방의 날을 상기하며 세계 유일의 분단 한국의 남북 통일을 기원하면서 전통 한국음악으로 한국을 홍보한다고 한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알리는 갖가지의 노래 가락을 징과 북과 꽹과리를 울리며 분단된 조국통일을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 공연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나라를 빛내는 애국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 나라마다 해외동포 청년 학생들이 인파가 운집한 여러 지역을 순회하면서 ‘대한민국 만세’ ‘조국통일 만세’를 외치고 풍악을 울리고 한다. 이 젊은 학생들은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한국의 고전 악기, 고전 의상을 입고 열심히 한국을 홍보한다. 어느 기관에서도 알아주거나, 협력해주주지 않아도 대한민국의 아들딸들이 해외에서 광복의 날을 상기하며 분단국을 통일할 날을 기원하며 열심히 혼신의 힘을 다해 하늘 아래 대한민국의 앞날을 기원하며 풍악을 울린다.
 
때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사무실 밀집지역에서 식사 차 나오는 인파와 관광객이며 배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풍악 소리를 듣고 손을 흔들며 환호한다. 우리 한국의 청년 남녀들이 장차 나라를 이끌어갈 일꾼들인데 이들의 소망이 하늘 창공을 타고 소리 높이 외치는 풍악 소리로 머지않아 결실이 있을 것이다.
 
조국 분단의 서러움이 가슴 아팠지만 오페라하우스의 아름다운 선착장에서 한국의 얼이 담겨있는 전통 풍악의 장이 전개되며 이 젊은이들의 통일을 염원하는 정신적 기도가 머지않아 꼭 이루어질 것으로 확신한다. 나는 가슴이 찡하며 뜨거워졌다. 감격스럽고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껴안고 격려했다. ‘대한민국 만세’ 통일을 위한 기도를 하며 그들 앞에 다가가서 등을 어루만지면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짐을 느꼈다.
 
내가 소녀 시절 해방되었던 그날, 거리마다 태극기를 들고 어른들 노인들이 춤을 추며 기뻐했던 그 생각이 새롭게 떠오르며 근 70년이 되었어도 그 때에 그 기뻐하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그 기뻐하는 모습과 같이 남과 북이 통일이 되는 그날 온 국민이 얼마나 기뻐할까 생각하니 징과 북과 꽹과리를 울리는 이 소리는 분명 머지않아 안겨줄 마음의 기쁨을 예고하는 타종이 분명하다.
 
우리 모든 국민이 힘을 합쳐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겠다. 세계 속에 자랑스런 국가관을 확립하고 통일한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도약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한다. 봄이 되어 그 무겁고 딱딱한 흙을 헤치고 나오는 가냘퍼 보이는 새싹들의 당당한 모습과 같이 우리도 연약한 것 같으나 힘을 합치면 어떠한 것도 다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단결하여 서로가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도약하며 우리 모두가 확고부동한 국가관과 애국관을 확립하여 홍익사해에 서광이 빛날 것을 기원한다.
 
유성자(호주한국문학협회 부회장,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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