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정국이 계속되면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마음은 동정하면서도, 현 상황이 필요이상으로 현정부에 대한 반대 운동으로 이용될까 하는 걱정이 없지 않았다. 물론 세월호 사태를 통해 드러난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에는 현정부가 뿌리를 두는 ‘보수 기득권층’의 책임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월호 사태가 진정한 국가개조의 기회가 되기 위해서는 야당으로선 안타깝겠지만 정치색을 빼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여당과 기득권층의 본능적이고 조직적인 반발을 가져올 수밖에 없고, 그런 분위기에서는 의미있는 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야당은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전략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이것은 유족이나 야당, 시민사회 내 강경파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해 온 새정련 지도부의 모습이 반증한다. 덕분에 사회적으로도 세월호 사태 논란에 대한 피로감도 더 빨리 누적되면서 여론도 싸늘해지고, 실질적인 국가개조의 기회도 더 멀어져가고 있다. 지금으로는 무능한 야당을 통해서나 비현실적인 유족/시민사회/야당 내 강경파들의 고집보다는, 여당 내에서 박근혜 차기를 걱정하는 주자들의 반응에 더 기대를 거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덕분에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전과 다름없이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할 힘없는 국민들이다.
 
그러나 최근 세월호 유족들과 갈등을 일으켰던 일부 극우파 단체의 행동은 우리사회가 가진 문제가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사회가 문제 해결이나 갈등 해결 능력이 부족한 것뿐 아니라, 이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유혹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희생자 추모를 위한 노란리본 철거를 주장하며 나섰던 보수단체들이 동참하는 ‘서북청년단’ 재건이 바로 그 경우다.
 
서북청년단은 해방후 극단적인 좌우 대립시기 때 월남한 청년실업자를 동원, 극단적인 폭력을 사용해 사회적 공포를 조장하고, 정부의 비호 하에 수많은 인권유린을 자행했던 단체다. 이들이 주장했던 반공이 결과적으로 옳은 내용이라 해도, 이들이 사용한 폭력과 수많은 민간인 희생은 전혀 모범적이지 않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수준을 반영해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하더라도, 현대사회에서는 전혀 발을 붙이도록 해서는 안되는 야만적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유능한 ‘협상’능력, ‘대화’능력, 이질적인 사람들이 조화하며 살아가는 능력이다. 강자가 무조건 강요하고, 목소리 큰 사람에 끌려 다니는 방법은 답이 아니다. 만일 (재건)서북청년단이라는 단체가 단순히 좌파 견제를 넘어서, 사회적 갈등을 과거처럼 폭력이나 공포로 해결하려는 시도라면 우리는 싹부터 잘라내야 한다. 이것은 한국사회가 수많은 갈등과 상처를 통해 이룬 진정한 현대화 근대화의 결과를 부정하는 전근대적인 회귀다. 이러한 야만, 무지로 돌아가는 시도는 결국 상대를 없앤다는 명목 하에 사회 전체가 자멸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도가 성행하던 1930년대의 일본, 독일, 이탈리아의 기억을 되살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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