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측부터 옥상두(스트라스필드 시의원), 김병일(전 시드니 한인회장), 양상수(어번시 시의원)
호주 한인 이민 역사는 이제 반세기를 넘어섰다.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려 온 이민 1세대는 이제 한숨을 돌리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현재를 자축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보다 객관적으로 교민사회가 어디까지 왔는지 되돌아볼 필요성을 느낀다. 호주동아일보는 호주 한인사회가 정치와 문화 면에서 어디에 와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다루는 대담을 3회에 걸쳐 다룬다. 이 기획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재정 지원으로 완성되었다.  - 편집자주
 
현재 한인사회가 호주 정치 안에서 어떤 위치와 역량을 가지고 있는 지 진단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현역 한인 정치인들과 관계자-스트라스필드시 옥상두 시의원, 어번시 양상수 시의원, 김병일 전 시드니 한인회장- 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시의원을 배출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한인정치참여를 위해 미래를 가늠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며 좌담회의 문을 연다.
 
호주 한인 정치 활동의 현재
호주정치에 참여한 한인 정치인들의 활동 현황과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양상수: 한호관계를 살펴보면 한국에 호주선교사를 파견한 것은 1880년대였지만, 본격적인 호주이민은 57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대한민국과의 외교 수교는 올해로54년이 되었다. 또 호주 내400여개 종교단체, 50개 이상의 한인단체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2008년 노동당의 권기범 시의원이 연임 당선된 데 이어 2012년에는 3명의 한인 시의원이 당선되었다. 레바논계나 유태계의 경우, 호주 연방정부까지 진출한 상태로, 이에 비하면 한인 정치계 진출은 출발이 늦은 편이다.
 
김병일: 사전에 보면 정치란 주권자가 영토 및 국민을 통치하고 권력을 행사하고 유지하는 행위이고, 통치는 지역을 도맡아 다스린다는 뜻이다. 여기서 다스림이란 사회, 집단의 일을 보살피고 맡음이란 뜻이다. 그래서 정치인은 일꾼이다. 특히 자신이 판단해 움직여야 할 어려운 자리로, 정직, 공정, 자율, 책임, 잘못 시인, 포용력, 겸손, 지혜, 능력 등을 갖춰야 한다. 만만치 않다. 그래서 정치는 어렵고 호주사회 정치에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한인의 호주정치진출이 늦었다 해도 이런 원론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그러면 다음 세대에서는 인물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김석원: 현재상황을 보면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당선된 정치인이 따로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개인 능력을 바탕으로 정당에 들어가 당선된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한인사회는 연합, 통합이 어렵고 독자적으로 정치세력화 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옥상두: 정치는 한마디로 리더십이다. 그러나 다수의 바람을 파악하고 앞장서 실천하는 리더는 많지 않다. 그래서 좋은 리더를 위해 사회 전체가 공을 들여야 한다. 한국역사가 보여주듯이 국가와 사회는 리더 한 사람에 의해서 운명이 좌지우지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좋은 리더를 뒷받침해주는 공동체적인 기반을 갖추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먼저 우리는 살고 있는 호주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이민자라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주변자로서 머물다 갈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이민 1세대 정치인들은 언어 제약에도 불구하고 의지력으로 정치권에 진입했다. 이를 위해서 앞장서 나서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양의원의 결단력을 존경하며, 이전의 남기성, 권기범 시의원의 활동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한인사회의 정치 성숙도는 경제력이나 개인 능력에 비해 아직 높지 않은 듯하다. 선거 때 혼자 전단지를 배포해야만 할 때마다 그것을 느꼈다.
 
▲ 김 병일회장과 NSW 지자체 양상수, 옥상두, 남경국 시의원들이 코리안가든 추진을 협력하겠다 결의하는 모습
타 소수민족의 정치참여도 비교
현재의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나? 다른 소수민족과 비교해 볼 때 여러분의 정치참여과정에서 한인사회가 보인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옥: 최근 한호정경포럼을 준비하는데 어떤 분이 광고를 보고 연락을 하셨다. 이전에 비슷한 행사가 없었다는 점에 의아해 하며, 이번 행사를 반가워했다. 나는 한인만큼 조직적이고 열성적이고 집행력이 우수한 민족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로 힘을 모으는 능력이 부족하다. 이에 따라 호주정계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한국의 날 행사 때 주 수상이 함께해야 하는데 올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좀 더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특히 호주 고위 정치인들과 얼굴을 맞대는 자리가 이어져야 한다.
 
김석원: 한인 정치인이 공개적으로 한인 사회를 기반으로 움직이면, 보다 다양한 시민을 대표해야 하는 시의원 활동에 제약을 주거나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는 않는가?
 
옥: 양면이 있다. 한인사회 자체가 크다면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현재로는 기존 정당에 들어가 그 안에서 어울리며 한인사회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방향이다. 스트라스필드 시청의 7명 시의원 중 3명이 자유당 소속이며, 저도 그 중에 하나로 더 비중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2008년 스트라스필드 선거에 출마할 때는 많은 한인들이 비난하기도 했다. 이미 노동당 한인 시의원이 있는데 자유당으로 출마하며 한인 표를 갈라먹는 것이 아니냐고 질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달랐다. 정권은 항상 바뀐다. 누가 정권을 잡든 한인 교두보를 만들어야 한다. 당락은 한인표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양쪽 다 당선될 수도 있고, 그러면 한인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다. 코리안 가든을 예로 보더라도, 스트라스필드 시청 내에서 한인사회는 세 번째 규모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위상을 높이 사고 시의원들이 동조했기에 부지까지 얻어낼 수 있었다.
 
김: 제가 한인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정치적 활동이 어어졌고, 이전 한인회장들도 코리안 가든을 건의해 왔기에 현재와 같은 결실을 맺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못에서 고래는 절대 안 나온다. 바다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인사회를 바다로 만드는가에 따라서 고기종류가 결정된다. 이를 위해 중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한인정치인을 키워야 한다. 
 
한인 이민 역사가50년이나 지났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다. 앞으로 정치현황을 잘 이해하고 폭넓게 보고 다음 세대에서 열매를 맺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인회장으로 있는 동안 한인 시의원이 세 명이나 당선되어 진심으로 기뻤다. 이후에도 좋은 결실을 맺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 한인회는 호주정치인들이 한인사회에 더 관심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인회장 임기 동안 한국의 날에 주 수상을 두 번이나 초대했고, 다른 많은 호주 정치인들을 초대했다. 의지를 갖고 노력하면 문은 열린다.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고, 희망이 있다고 본다.
 
양: 한인 이민 1세대는 의지와 끈기, 성실과 열정이 자산이다. 저는 기술이민으로 호주에 왔지만, 기반을 잡고 나서도 여전히 비영어권 배경으로 주류가 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의지만 있다면 결국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다.
 
▲ 김 병일회장과 옥상두 스트라스필드 시의원이 위원들과 코리안가든 추진 관련 협의하는 모습
주류 정치계에서의 소수민족의 생존 비결
당 내에서 한인 정치인이 살아남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인가?
 
양: 발로 뛰는 것이 비결이다. 어느 곳이든 어려움이 있다는 연락을 받으면 집까지 찾아가 문제를 듣고 즉시 답하고 담당자들과 바로 처리하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새벽 2시까지 이메일 답장을 쓰느라 못잘 때도 있었다. 우리는 발로 뛰고 성실하게 칼같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 어번시에 중국인 가장 많고, 한국인이 두 번째, 세 번째가 터키인이다. 터키인은 한국에 우호적이라 선거 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 기존 의원들의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 공인으로써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모두에게 평가되기도 하고, 젊은이들에게 롤 모델뿐 아니라 정치 참여의 촉매제가 될 것이다
 
옥: 자유당에서50명의 자유당 연방의원 포함 지역구 위원장들이 예비 시의원 후보자들을 평가하고 결정한다. 출마 순서도 이 때 정한다. 먼저 시의원으로서 참여 동기를 듣고 5분 질의응답을 받는다. 제 경우에는 기억에 남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스트라스필드 역 주변에 위험요소가 많은데 어떻게 그 문제를 풀겠느냐"는 질문에 난 이렇게 대답했다. “호주에 오래 산 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보겠다. 나는 한국인으로 호주 다문화를 접한 경험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민자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새로운 비전과 아이디어로 문제를 풀겠다”. 이 답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주류 정치계도 뉴 블러드(new blood),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했기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 어번시 한인사업자협의회 정식 출범식을 겸한 어번시 구정축제 후원의 밤에서 인사하는 양상수 시의원
이와 함께 한인회의 꾸준한 활동이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한인 사회의 좋은 이미지도 긍정적으로 작용했고, 그 토대 위에 지금과 같은 결과가 생긴 것이다. 이제 우리가 꽃을 피울 차례가 되었다. 아무리 토양을 닦아놓아도 그 안에 들어가서 활동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앞으로도 한인사회가 같이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단 500달러를 후원하더라도 한인사회가 도움을 주면 큰 파장을 만든다. 작은 참여지만 관심을 보이고 참여할 때, 연방의회에도 한인 정치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호주정치권의 움직임도 주목해야 한다. 주요 지역에 중국계나 베트남 난민출신 후보를 출마시켜 소수민족을 후원하는 이미지를 만들려는 경향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제 호주 전체 인구에서 소수민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25%이나 된다. 한쪽 부모가 소수민족인 경우까지 포함하면 절반에 육박한다. 이제는 우리도 호주 정당에 들어가 남이 나누어주는 파이를 받는 수준이 아니라 직접 자를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김석: 일부에서는 한인 정치인들을 앞장세우기 보다는 기존 정치인들 뒤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로비를 강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옥: 조금 극단적인 생각이라고 본다. 저는 호주와 한국 중에 어디에 애국심을 갖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호주라고 답할 것이다. 이제 자녀들이 살아가는 나라가 호주이며 당연히 호주의 발전이 우선이다. 물론 모국이기에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를 위해 그라운드에서 활동할 플레이어가 많이 나와야 한다. 관중으로 보는 것과 직접 운동장에서 뛰는 것은 천지 차이다. 물론 한인 정치인들이 호주 정치계에서 한인 이익만 챙겨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호주사회 전체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김석: 호주 정치계에 가장 큰 소수 민족중 하나인 레바논계는 오히려 역풍을 받을까 우려해 본인들 그룹을 대변하는 발언에 극도로 조심한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겐 적용되지 않는가?.
 
옥: 어디에나 안티가 있다. 우리 시의회 안에도 반대편이 있고, 이들은 한국관련 안건은 무조건 반대한다. 그러나 안티를 극복하는 방법은 그런 것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그러면 안티를 다수가 아닌 소수로 만들 수 있다. 스트라스필드에서 실시하는 새마을 운동도, 처음에는 한국 컨셉이라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한인들이 직접 나와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반응이 바뀌고 있다. 물론 정치 3년차를 거치면서 항상 칼날 위에 서 있는 기분이기는 하다. 누구 말대로 호랑이 등을 타고 있는 것 같다. 행동에 더욱 책임감을 느끼고 조심한다. 그러나 안티를 의식해서 움추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양: 실제로 우리 시청에서도 반대편 호주인들이 많다. 그래서 난 내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한다.
 
옥: 호주인들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태도로 결정을 쉽게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한인 정치인은 그렇지 않다. 밀어 붙이는 결단력이 뛰어나다. 작년에 한국의 자매도시를 방문할 때도, 호주계들은 주민 돈으로 해외를 갈 수 있느냐며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다녀온 뒤에는 격렬히 반대하던 이들도 성공적인 여행을 축하해 왔다. 이렇게 추진해서 결과를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다음주로 이어짐)
 
홍태경 기자 edit@hanhodaily.com
김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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