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만의 한가한 시간이었다. 내가 시간이 있을 때는 보고 싶은 손자 손녀들이 그들 나름대로 갖가지 행사가 겹쳐서 시간이 없고, 그들이 할머니를 찾을 때는 이 할미가 사정이 생기고 왜 그렇게 시간이 서로 맞지 않는지. 참으로 한 번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까! 인생의 종착역이 그리 멀지 않은 나 자신이 시간을 할애하려고 해도 좀처럼 여유있는 시간을 낼 수 없는 것이 한편으로 생각하면 축복이며 다행이다.
 
늙어서 하는 것 없이 지루한 시간을 보낸다면 그것 또한 큰일이 아니겠는가. 우리 꼬마녀석들 과자 하나를 사주려고 해도 달면 안되고 초콜릿이 많이 묻어 있어도 안되고 향이 강해도 안되고 유치(乳齒) 다칠까 너무 딱딱해도 안된다. 이런 응석받이들에게 맞는 먹거리를 찾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랄 때에 비하면 참으로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실감하게 된다.
 
나이든 할미의 식품선택은 자라나는 아이들에 대한 것만을 중점을 두지만 요즘 젊은 엄마들은 우리들 세대와 많은 차이가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부정 색소며, 위생, 출품일자와 제조연도, 첨가물, 함유된 열량, 위생적인 포장, 알레르기 등 요즘 현대 엄마들의 식품선택의 면밀한 과정 살핌이 옛날 우리들의 식품에 관한 관념적 상식과는 격세지감을 실감하면서 그들 기호에 맞게 진열장을 살피며 찾으려니 너무도 힘이 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꽃봉오리 같은 이 녀석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집 문전에서 기다리다가 쫓아나오며 할미보다 선물보따리부터 받고 나서야 할미를 보고 “할머니 나 예쁘지, 많이 컸지!” 하며 힘차게 끌어안고 놓지 않는다. 이들이 너무 힘차게 포옹하는 통에 쓰러질 뻔했다.
 
이렇게 애정을 나누고 나서는 선물보따리가 가장 궁금한 모양이다. 이들은 큼직한 선물보따리를 안고 들어가서 풀어보기 바쁘다. “와 내가 좋아하는 동물과자다. 이건 처음 보는 과자다. 맛있겠다!”하며 엄마에게 보여주고 뽀뽀를 다시 하고 악수를 청한다.
 
“할머니 이것은 누나와 나눠먹으면 되지요?” 하며 의젓하게 경어를 쓰는 모습이 많이 컸으며 예의도 익혀가며 자라는 것을 보니 참으로 대견하고 신기하다. 특히 4살배기 손자 녀석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보따리를 가슴에 안고 할머니가 사주셨다고 하며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좋아한다. 누나는 조금 컸다고 얌전하고 조용하게 할머니 옆에 와서 앉으며 “할머니 고맙습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하더니 “할머니, 나 우리 반에서 반장됐다. 할머니 나 예쁘지? 그리고 반에서 2등했다!”하며 학교에서 상으로 받은 책과 상장을 가지고 와서 읽어주며 자랑한다. 아니 반장이 됐다고! 그리고 2등을 했어! 영어권 학생들 틈에서 말 한마디 못하던 그 녀석이 이렇게 반 전체에 동양인 두 사람밖에 없는 곳에서 반장의 명예를 자랑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그 녀석을 힘껏 끌어안으며 “잘했다. 장하다. 예쁘다”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소학교에 다닐 때 상을 타고 기뻤을 때에 기쁨에 비할 바가 아니다. 왜냐하면 타국에서 말 한마디 들을 줄 모르고 입학해서 그 숱한 현지인의 틈에서 당당히 우뚝 섰다는 한국인의 자랑거리가 가슴을 설레게 했기 때문이다.
 
“아이구 우리 공주 장하구나. 잘했다 잘했어. 이렇게 우리공주가 공부도 잘하고 신통한 데 할미가 바빠서 자주 오지도 못하고 우리 예쁜 공주 좋아하는 음식도 못해주니 미안하다. 이제 시간을 내어 자주 오도록 할게, 알았지? 더 열심히 잘해요!”하며 우리는 손도장도 찍고 굳은 약속을 했다.
 
두 남매는 만족한 모습으로 즐거워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과자보따리를 들고 어디론가 간다. 그들을 보니 반세기 전 이 땅에 어린이를 위하여 평생을 바친 방정환 선생님의 어린이 헌장 제정과 금과옥조와 같은 수많은 격언 등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우리 집 두 늙은이는 서로 각자 서재에서 책을 일고 글 쓰고 신문보고 시사에 관한 의견 나눔 혹은 꼭 필요한 말만하고 정원 가꾸기, 청소, TV뉴스 시청하기 등 조용한 정적의 삶을 보내서 큰소리 내며 웃을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때로는 주요 뉴스가 나오면 즐거움과 안타까움, 슬픔, 애절함, 분노 등의 오감의 대화가 오고 가지만 참으로 시간시간마다 웃음 띌만한 즐거운 매개체가 없다. 역시 집 안에 웃음도 놀람도 감탄도 즐거움도 눈물도 희망도, 어린 자녀들이 있어야 한다. 어느 집이든 어린 자녀들의 재롱이 없으면 정박하다.  하루가 언제 지나갔는지 바쁘고 늘 시끌벅적했던 과거 어린 자녀들을 기를 때가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그래서 춘원 이광수 선생은 역사는 살아서 움직이는 현재의 ‘연속사’라고 했던가.
 
갑자기 손주 녀석이 할머니를 부른다. “나 많이 컸어 할머니. 그래서 네발자전거가 작아서 세발자전거로 바꿨어”하고 자랑한다. “빨리 나와보세요”하며 재촉이 심하다. 할머니 앞에서 저 큰 세발자전거를 타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신나게 페달을 밝는다. 거의 다섯 바퀴를 돌렸는데 큰 나무 위에서 칠면조가 즐거운 듯 소리치는 것을 보며 달리다 넘어지고 말았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 둘러 앉은 자리에서 손자 녀석은 온 가족을 두루 살피더니 다음은 손 검사를 한다. 다들 깨끗하게 씻었는지 확인하더니 할아버지를 부르며 빨리 기도하란다. 지엄한 손자의 명령에 다같이 머리 숙여 기도하는데 또 누가 머리 숙이고 눈 감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살펴본다. 참으로 이러한 그들의 의기양양하고 잘 다듬어져 가는 자태에 감사하며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했다. 행복의 근원이 어린 자녀들의 자라는 모습에서 역력히 보여지고 있다.
 
행복의 근원은 즐거운 가정 식탁에서 시작된다고 한 모윤숙 선생의 격언이 생각난다. 이들로 인해서 웃고 즐거워하며 가족 간에 평화가 이루어지는 행복이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 모든 가정은 어린 천사와 같은 심정을 잘 알아서 사랑의 결핍을 느끼지 않도록 길러야 하겠다.
 
기성세대가 아이들에게 정신적 장애를 만들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좋은 토양에서 햇빛과 물과 바람의 조화를 이루어 잘 자라게 하는 자연현상과 같이 가정에서 자녀 양육에 온갖 사랑을 베풀어서 잘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세심한 부모들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조금도 구김살없이 잘 자라서 우리 미래의 사회가 건강하고 평화로운 사회 또는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져서 우리의 삶 전체가 이웃 간에 사랑이 강물처럼 넘쳐 흐르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갈망해본다. 
 
유성자(호주한국문학협회 부회장,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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