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연재해를 만나면 깊은 두려움을 느낀다. 몇 년전 일본 오사카의 한 고층 호텔에서 자는 데, 새벽 5시쯤 강도 6-7정도의 지진이 일어났다. 일본의 독특한 문화에 심취해 너무 재미있었던 여행 일정이었지만, 단 한번의 지진 경험 때문에 다시는 일본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 버렸다. 끼익거리면서 오른쪽, 왼쪽으로 추처럼 움직이는 방에서, 이미 상상만으로도 나는 끔찍한 죽음을 맛보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급하게 챙겨 입고 일층으로 내려오니 평소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일본인들의 반응이었다. 이 정도가지고 왜 그리 호들갑이냐는 듯이.. 그래도 일본 동북부 해일사태에 관한 특집을 보면 그런 일본인들 조차, 자연재해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숨길 수 없는 모양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해도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속절없이 작아지고, 당연히 분노하는 신의 존재를 떠올린다. 어느 시대, 어떤 종교를 믿든 세계 어디에서나 자연재해는 신의 분노, 징벌로 받아들여진 것이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이번에도 네팔 지진을 보고 일부 개신교 목회자들이 네팔의 ‘불신앙’에 대한 심판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문제가 된 모양이다. 무너진 집 사이에서 부모를 잃고 울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대하면, 그런 잔인한 소리를 함부로 할까 싶은데.. 문제는 이런 반응이 이전 인도네시아 쓰나미 때도 그렇고, 일본의 동북부 해일사태 때도 들리던, ‘전혀 새롭지 않은’ 소리라는 점이다. 일부 목회자들이 강단을 사유화하여, 영적 권위를 명목으로 맘대로 떠드는 문화가 만들어낸 사고라는 주장부터,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잘못된 신학 때문이라는 지적까지 다양한 평가가 나온다. 전자의 경우는 필자 역시 철저하게 공감하는 문제이지만, 안타깝게도 후자의 경우에는 인간의 죄성에 대하여 충분한 성경적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기독교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 언론쪽에서 이번 사태가 단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 다시 말해 인간이 만든 재해라는 점을 점점 더 많이 지적하는 분위기다. 최근에 극심한 혼란에 빠진 네팔의 정치상황과 카스트제도로 분열된 국민, 그리고 그동안 전혀 지진 내진설계나 있을 수 있는 재해앞에 안전문제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인구를 늘려온 행정.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거에도 있었던 지진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인명과 물질적 피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무원들의 부패와 비리, 도시집중화의 과정 속에 탐욕의 문화가 끼여들지 않을 리가 없기에, 네팔 사태는 적어도 ‘인간의 죄악’으로 더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면은 인간의 창조자의 지혜와 창조 원리를 부정하고, 자신이 우주의 주인행세를 하면서부터 시작된 갈등과 모순, 파괴과정의 일환이기도 하다. 성경이 말할 뿐 아니라 인간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의 한계를 망각하고, 인간 개인과 능력에 기초한 ‘주인행세’는 결국 자기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뿐 아니라, 이웃과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도 끊임없는 상처를 가져다 주고, 자연계에서도 착취와 오용, 탐욕이 만연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종종 범죄나 폭력부터, 환경재해나 자연재해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이 원인이 된 재앙’ 속에서도 경험된다. 이 점에서 모든 재해 속에는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적’ 요소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이것을 특정 사람들의 행위나 반응에 연관을 시키는 것은,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죄의 속성을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장 누구를 괴롭히지 않아도, 우리가 신는 신발 속에는 방글라데시의 8살짜리 아동노동착취가 포함될 수 있고, 우리가 아내를 위한 반지 속에는 중부아프리카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핏빛 다이아몬드’가 끼여져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당장 우리가 그 신발을 신다가 발이 부러지는 식으로 처리하지는 않으신다. 그렇다고 안심하긴 아직 이르다. 성경은 세상의 퍼진 ‘죄의 문제’는 모두 다 바로 바로 죄의 파국적인 결과를 경험하게 되지는 않지만, 결국 마지막 때의 평가를 통해 책임을 지도록 하실 것임을 분명히 말한다. 마지막 심판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점에서 네팔 사람들이 교회를 가지 않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다는 식의 주장은, 무례할 뿐 아니라 무식한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죄의 본질,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자기생각과 마음에 더 지배되는 인간의 모습 때문일 수 있다. 이점에서 네팔의 위기는 네팔 사람들에 대한 경고라기 보다는, 정신 못 차리고 사회 흐름을 그대로 답습하며 욕심과 경쟁, 자랑과 허영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하나님의 경고일 가능성이 더 높다. 교회를 가고 있든 안가고 있든 상관없이 말이다...
 
김석원(교육전문사역단체 under broomtree ministry 대표)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