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항공기에 미녀 승무원들의 친절한 안내로 특별히 앞자리를 배정받은 행운으로 편안한 여행길에 올랐다. 내가 자란 조국을 십여년만에 방문하는 기쁨과 감회를 가눌 길이 없다.
 
문득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지만 그 향기를 결코 팔지 않는다는 ‘매화일생불매향’(梅花一生不賣香)이란 구절이 떠올랐다.
 
비록 타국에서 어려운 삶을 영위하지만 나의 조국은 결코 잊을 수도 없고, 또 잊어서도 안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더욱 한국 문인과 문화단체에서 한국에서 최초로 창설된 문인석비(文人石碑) 및 육필문화창립(肉筆文化創立) 장소인 충남 보령시 작은샘길 일대 동산에 미숙한 나의 시비(詩碑) 제막식(除幕式)에 참석차 조국을 간다는 자부심에 만감이 교차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기라성 같은 유명 문인들, 시인들, 선배들의 시비 가운데 부족한 나의 글귀가 새겨진 석비(石碑)가 한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일면 부담감과 아울러 감회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스치는 행운의 미소 속에 문사와 선비정신을 회상하면서 진념(眞念)에 잠겼다.
 
인류 역사에서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든지 그 공동체의 이상을 제시하고 역사의 방향을 이끌어가는데 강인한 품성과 고매한 인격을 갖춘 사람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우리 사회의 가치 기준을 정립하고 인간들의 공동체 구심점으로서 역사의 방향을 제시하여온 이상적인 인격을 ‘선비’라고 선현들은 일컬어 왔다.
 
선비정신은 우리 역사를 통해 그 사회의 올바른 가치 기준을 밝히는 의리정신이요, 정의로운 이상을 수호하기 위해 불의에 항거하는 비판정신이자 저항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선비들은 시대마다 불의한 세속적 물질과 명예와 권력의 유혹을 물리치면서 고난과 시련을 감당하는 불굴의 인성과 지성의 용기를 발휘했음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선비정신은 불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더불어 자기정화를 위해 끊임없는 성찰을 지속해왔다. 현재도 우리 역사의 고귀한 이념과 문화를 이루었던 선비정신은 면면히 계승되고 있다. 극세척도의 이념을 재해석하고 기필코 계승해야 할 시대적 의무와 책임이 현재 문인들에게 주어진 의무라고도 하겠다.
 
선비라는 우리말은 세종시대에 제작된 용비어천가에 처음 나타난 명사로서 물질적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지조를 선비의 인격적 조건으로 지적하고 있다.
 
충남 보령시 작은샘길 산일대(山一帶)의 ‘시와 숲길 공원’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꽃길은 박정희 대통령의 어록과 민족시인 윤동주의 시비를 비롯하여 전현 시인 300명이 넘는 문사들의 비가 각자 높고 낮은 명소에 유유자적하게 자리잡고 있다.
 
감탄을 자아내는 이름 모를 꽃과 초목의 아름다운 단장과 세밀한 조경으로 어우러진 목적지 작은샘길 현장 입구엔 거대한 화강암에 ‘시와 숲길’ 공원이라고 새겨진 비문이 진입로를 알려주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사무실까지 수백 미터에 수많은 비석으로 석림(石林)을 이룬데서 다시 한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창설자이며 운영 책임자인 정곡(井谷) 이양우 사단법인 한국 육필문예 이사장은 진심어린 미소로 환영해주었다. 전면에 시비제막 플래카드가 봄바람에 펄럭이고, 호주동아일보 발행인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보내준 대형 축하 화환과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주민들로 구성된 축하 사물놀이 연주는 분위기를 한층 가열시켰다. 여러 선배 문인들의 축사 및 격려사에 나의 부족함을 더욱 느끼며 열심히 공부해 여러 선후배 문인들과 축하객들에게 보답하는 것이 도리라고 새삼 다짐했다.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오늘의 학문세계를 이룩한, 한국 문단의 거목이며 육필문학의 창시자인 정곡 선생께 재삼 감사 감탄과 아울러 존경심이 가슴을 요동친다. 조국의 모든 문인들은 물론 여러 학문적 세계인들이 정곡 선생의 이념에 적극 동참 협조하기를 염원해 본다.
 
심원 유성자(호주한국문학협회 부회장,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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