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할 정도로 여러 날 동안 음산한 날씨로 햇빛을 못 보니 마음까지도 우울하기 그지없다. 또한 나의 체온까지도 이상이 왔는지 걸맞지 않게 두터운 옷을 겹겹이 껴입어도 한기를 느껴 전기난로 옆으로 다가가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오랜만에 푸른 창공을 바라보니 기분이 상쾌하며 마치 여학생처럼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호주의 독특하고 포근하며 산뜻한 청명한 하늘에 떠있는 하얀 구름 한 점이 미소짓는 듯하며 산들바람조차도 부드럽게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여학교 시절부터 음치인 나지만 오늘따라 마음이 상쾌해서 현제명 선생의 ‘고향생각’ 노래도 흥얼거려보기도 했다. 오랫동안 소식이 단절되어 항상 궁금했던 여고동창 K여사로부터 뜻밖에 전화가 걸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두서없이 “어쩐 일이니. 오래간만이다.” 학창시절의 말투가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얘 미안하다.” 우리는 서로 반말을 하고 박장대소하며 몇 시간이나 수십 년 쌓이고 쌓였던 가지가지의 옛추억을 회상하며 감격적 수다를 떨었다.
 
인간이란 운명적으로 또 이합집산(離合集散)으로 서로 상생하는 가운데 희로애락의 공존의 인과관계에서 각자 사회적 집단적으로 교차하며 상호 이해하고 관용하고 양해하며 소통하는 가운데 사랑으로 의지 협력하며 역사를 창조하면서 생을 영위한다.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을 세가지 종류로 대별했다. 첫 번째는 돈과 명예와 권력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로마(Roma)적인 사람. 두 번째는 프랑스(France)적인 사람. 즉 인류를 위한 봉사나 사회활동, 종교활동을 하는 사람. 세 번째는 그리스(Greece)적인 사람. 글로써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 문화 문명 활동 및 글 쓰는 사람.  
 
그리고 그는 인간의 승리 중에 나 자신을 이기는 승리가 가장 값진 승리라 했다. 반면에 춘추전국시대의 한나라 귀족출신 한비자는 철저한 성악설을 신봉하는 사람으로서 운명적인 관계 즉 부모자식 사이 및 부부 사이가 아니면 그 누구도 결코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겼다. 지배자 밑에 있는 사람이나 고위직 비서로 있는 사람 등은 결코 믿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기원전 212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 역시 철저한 성악설 신봉자로 한비자의 이론을 따른 왕으로 결국 두 사람 역시 사람을 못 믿은 죄가 막중하다고 자복하고 생을 마쳤다. 오늘의 세상 역시 너무도 물질만능시대가 되어 생존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면서 인간 본연의 선하고 바른 세상이 점차 멀어져 가고만 있는 현실이 참으로 통탄스럽다. 인간관계는 정신적 차원에서 두터운 소통으로 서로 사랑을 나누는 가운데 쓰디쓴 고통을 오랜 세월 동안 함께 감수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진가를 맛 볼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정녕 내가 있어 네가 있고, 네가 있으므로 또 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소중한 만남과 소통의 관계를 성립하면서 ‘나’라고 하는 자아를 늘 겸손하고도 겸허하게 낮추고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며 세상 고해 속에서도 끝까지 함께 세파를 헤엄쳐 나갈 때 삶의 존엄성을 높이 평가받게 될 것이다.
며칠 전 다정했던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하직했다고 하는 비보를 듣고 인생의 무상함을 통감하면서 나 자신 생의 종말을 고하는 마음의 준비와 주위 유관단체 및 가족 친지들과 여러 가지 필수적 절차 등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기로 했다. 서글픈 일이지만 인생의 마지막 나의 의무요 책임이기도 하다. 영적 세계의 허전함과 여러 각도의 현실성의 모순 등을 토로한 것이 그와 나의 다정한 마지막 대화가 되고 말았다.
 
세상사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만나는 회합별상(會合別相)이라 하지만 선현들께서도 어제는 청춘인데 내일은 백발이요 내일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인간의 운명적 종착역을 목전에 둔 사람의 유한한 생명이란 것을 누구나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역시 인간의 욕심에서 구원한 생명을 유지하려는 모순을 간직하고 있는 인생들이 한편 아희와도 같다는 생각이라 할까? 역사 속에 나타나는 천하를 호령하던 위세 당당한 칭기스칸이나 천하통치의 꿈만을 위해서 죽이고 뺏고 짓밟고 탈취하고 금관을 머리에 쓰고 살아온 무수한 통치자들은 진정 마음에 평화를 가졌으며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던가?
 
그런 무사적 기질로 천하를 통치하려는 지도 이념보다 세상을 평화롭고 아름답게 가다듬은 선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 많은 것을 갖지 못했다 할지라도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삶의 향기를 나누어주는 생활은 그 얼마나 평온과 아름다움이 있을까 싶다. 
 
이 세상을 착하고 선한 마음으로 사노라면 우리사회는 선한자들의 공생으로 인하여 악은 자연적으로 도태되어 서로 믿고 의지 협력함으로써 인간 세상은 아름다운 것으로 장식된 문화 문명의 시대가 도래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점차 삶의 질에 있어서도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보람있게 사는 선진국에 진입함으로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인 문화 문명 시대에 생을 영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 시대가 초고속 과학문명시대에 진입함으로써 좀먹는 독버섯처럼 번지는 모든 사회악의 병폐를 물리치길 바란다. 또한 우리사회가 만고불변의 대자연의 거짓없는 순수함을 본받아 진실하고 고고한 인간성이 근본이 되는 성숙된 국가를 형성하여 우리가 희구하는 서로 믿고 의지하는 질서와 준법정신으로 영성깊은 평화의 세계를 이끌어 가기를 바라는 바이다.
 
유성자(호주한국문학협회)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