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Youtube)에서 자료를 검색하던 중 우연히 한국의 다문화 가정을 소개하는 “러브 인 아시아” 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한국사회에서는 이미 익숙해져버린 다문화 가정, 이주여성이라는 단어가 오래전 한국을 떠난 사람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90년대 중후반, 한국을 방문했을 때 거리 곳곳에 걸려있는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결혼 중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보면서 꽤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한국인들은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전통을 오랫동안 지켜왔기 때문에 직계 혈연관계를 몹시 중요하게 여기는 혈통사회이다. 
그러나 세대가 바뀌고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인종의 벽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 같다. 나 역시 이민자로서 다민족 문화로 이뤄진 호주사회에 섞여 살다보니 인종에 대한 경계선이 자연스레 허물어지게 된다. “러브 인 아시아(Love in Asia)에서는 다양한 나라에서 한국남자에게 시집 온 외국여성들의 삶과 애환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로 제작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 많은 다큐멘터리들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두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히말라야의 소녀! 정선 아지매 되다.”라는 제목에 관심이 가서 보게 되었다. 한 네팔여성이 강원도 정선으로 시집가서 용접공으로 일하는 남편과 알콩달콩한 삶을 꾸려가는 내용이었다. 정선의 복덩어리라는 별명까지 얻은 스미리티   체트리(25세)씨는 노인정에서 노인들을 위한 위문공연으로 네팔 전통 춤을 추기도 하고 시어머니께 배운 정선아리랑을 멋들어지게 부른다. 그녀는 강원도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 초대 받아서 이미 유명인이 되어있다. 스미리티씨는 결혼 후 4년 만에 남편, 15개월 된 딸 현아, 시어머니와 함께 네팔 친정집을 방문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먼 타국으로 시집간 막내딸과 친정어머니의 눈물 젖은 해후는 돌아가신 나의 친정엄마를 떠 올리게 해서 내 마음까지도 애잔하게 만들었다.  딸과 사위에게 음식을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어 안달하는 친정엄마의 애틋한 정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 했다.  스미리티 부부는 친척과 친구들을 초대해서 힌두교의 종교의례에 따라서 전통결혼식을 다시 올리고 친정나라의 전통을 한국에 소개하는 계기를 만든 것 같다. 혼인잔치를 할 때에 신랑과 신부가 계속 흥겨운 춤을 추고 있으면 하객들이 신랑 신부의 모자에 돈을 꽂아주었는데 일종의 축의금을 재미있게 전달하는 풍습으로 보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안사돈들은 눈만 쳐다보고도 의사소통을 하며 서로 끌어안고 상견례의 정을 나누었다.  먼 낯선 땅으로 막내딸을 시집보낸 네팔의 엄마는 그저 고마운 마음만을 전하고 싶어 하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사위는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을 한다는 전래속담이 있다. 한국인 사위는 전기 사정이 열악한 곳에 사는 처갓집을 위해서 태양열 전지판을 설치해주고 마음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 했다. 밤에 전기불이 들어와서 환해진 집과 기뻐하는 식구들의 얼굴을 보며 정선아지매의  얼굴도 알전구처럼 밝게 빛나 보였다.  그리고 한국으로 떠나기 전 날에 김치 삼겹살을 구워서 한국인의 서민적인 입맛을 알려주기도 했다. 네팔을 떠나는 날 친정엄마가 시어머니에게 팔찌를 끼워주니 시어머니도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빼서 사돈의 팔목에 채워주며 꼭 끌어안았다. 한국인 남편과 네팔인 아내는 두 손을 마주 잡고 영원히 사랑하며 살 것을 자연의 대지 앞에서 굳게 약속했다.  스미리티씨의 친정 식구들은 산골 집에 전기불이 환하게 켜질 때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하며 가슴이 따뜻해져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내 사랑 흑진주 우바”의 주인공은 2008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로 여행을 갔던 한국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그의 아내가 된 검은 피부의 예쁜 우바 무하메드(30) 씨이다. 아들(5살)과 딸(오 개월)두 자녀가 있으며 남편을 큰 아들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만큼 부부의 사랑이 유난하다. 우바씨의 한국어 실력은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지만 낯선 한국문화에 적응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남편은 회사에 출근을 했어도 때때로 전화해서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점심시간에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보고 싶어진다고 수줍게 고백을 했다.  생김새가 다르고 문화와 언어가 달라도 부부의 사랑은 최고의 수준이다.  남편 가족의 반대를 극복하고 낯선 문화 속에서 정착하기 힘들었을 텐데도 우바씨와 남편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머물러있다. 
 
우바씨 가족은 4년 만에 고향인 디레다와(Diredawa)를 함께 방문하게 되었다.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서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비행기로 500킬로미터를 더 날아가야 하는 제 2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고향 땅에 도착한 그녀는 너무 그리웠다면서 눈물을 짓는다. 친척들이 에티오피아 특유의 인사법으로 아~라~~ 라~라 하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와서 환영을 해주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으로 보인다. 집안에는 사르(손님을 맞을 때 환영과 축복의 의미로 집안에 부리는 풀)를 이른 아침부터 뿌려놓고 우바씨를 기다린 친척들은 먼 나라에서 처갓집을 방문한 한국인 사위를 반갑게 맞아준다. 그 나라의 풍속으로 손님이 오면 즉석에서 커피콩을 볶아서 커피 세리머니를 해주는데 화면을 보는 나에게도 진한 커피향이 풍겨 나오는 듯 했다. 이웃사람들이 모여서 동네잔치를 벌리는 모습을 보니 인간적인 훈훈한 정이 넘쳐나 보인다.  하라르 커피로 유명한 도시 하라르를 방문해서 한국에 있는 시부모님과 친구들을 위해서 좋은 커피를 사는 착한 며느리 우바씨. 그리고 자신이 다녔던 초등학교를 방문해서 남편회사에서 마련해준 공책, 연필 티셔츠를 선물하며 어린 학생들에게 기쁨을 전달해준다.  2011년 유엔 통계에 따르면 에티오피아는 문맹률이 60%에 이르고 초등학교 취학률은 80%가 조금 넘는다고 한다.  
아내의 고향을 떠나기 전에, 한국인 사위는 상수도 시설이 없어서 이틀에 한 번씩 힘들게 물을 사다먹는 처갓집을 위해서 상수도 시설을 설치해준다. 아프리카는 건조한 기후와 더운 날씨 그리고 물 부족 현상을 겪는 어려움을 안고 있기에 친지들을 위해서 가장 큰 선물을 마련해 준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우바씨 친척들은 수돗물이 콸콸 쏟아질 때마다 다시 한 번 한국인 사위와 딸이 시집 간 나라 한국을 생각하며 무척 고마워하리라 믿어진다.  
 
세계는 글로벌화 시대가 되었고 낯선 얼굴들이 바로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내 이웃으로 변했다.  한국정부의 교육부와 여성가족부가 교육전문가들의 포럼을 통해서 다문화 가정의 2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다문화 가정의 부부들과 그 자녀들이 한국사회의 일원으로서 미래를 향한 큰 몫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할 때에 사랑이 있는 다문화 가정은 성공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의 세속적인 관념을 깨고 때 묻지 않은 다문화 가정의 단란한 삶을 단지 영상을 통해서 본 것만으로도 가슴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황현숙(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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