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박
 
덩굴에 매달려   
길 떠난다
 
푸르고 싱싱했던 시간 
훠이훠이 날려 보내고 
 
때로는 더위에 시달리고 
때로는 궂은비에 젖어 
 
덩굴손 놓치면 나락(奈落)
안간힘으로 부여잡지만 
 
어딘들 만만한 세상 있겠는가 
리듬이란 아무 때나 부서지는 것  
     
이길 벗어나면 보일까 
안개 젖은 울음 지천에 깔려 
걸음걸음이 노역이다
 
이제 걸음은 천근으로 가라앉으니
내 이름은 늙은 호박 
 
손영선(호주한인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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