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출처] sydney-city.blogspot.com
스트라스필드 광장에 위안부 소녀상을 건립하려던 한-중 커뮤니티 연대의 계획이 11일(화) 시의회 특별회의에서 시의원들의 ‘반대’ 표결로 무산됐다.(본지 8월 13일자 보도) 
 
이날 회의는 160여명의 방청객과 8명의 시민 발표자 등 공청회 형식을 취했지만 회의 전 배포된 관보에 ‘시의회 동상 건립 반대 권고’ 내용이 이미 게재되는 등 공청회 자체가 사전 결정 사항을 전달하는 요식 절차로 비쳤다.
 
스트라스필드 시의회는 소녀상 건립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로 “위안부 상 건립이 스트라스필드시의 기념비 설치 정책 기준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안의 처리 과정을 보면 이러한 표면적 이유 외에 국제적 이슈에 대한 지자체의 부담감이 소녀상 건립 무산의 주 배경임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 3월 한-중 커뮤니티 연대가 위안부 소녀상 건립 제안서를 시의회에 제출한 후 그해 4월 1일 열린 공청회에서 지지 및 반대 의견이 치열하게 대립했다. 이에 시의회는 "이 안건이 지자체 수준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의견을 먼저 청취하겠다"며 소녀상 건립 제안에 대한 결정을 보류했다. 
 
그러나 시의회가 주정부와 연방정부로부터 받은 의견들은 한결같이 기념비 설치 문제가 지자체 소관으로 ‘정부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는 것이다. 
 
● “지자체 소관” vs “정부 차원 이슈”= 스트라스필드시의 위안부 소녀상 건립 이슈에 대해 연방 외교통상부는 “정부는 지자체의 기념비 설립에 있어서 ‘역할’이 없으며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 조언을 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밝혔다. 
 
보훈부 역시 “기념비 건립의 진행 여부는 스트라스필드 시의회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통보했고 여성부는 “이러한 성격의 문제는 지자체에서 판단할 일”이라고 답했다.
 
연방총리실은 “공식적 조언을 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밝혔고 NSW 주총리실은 “시민권 및 커뮤니티부 장관이 답할 것”이라며 공을 넘겼다. 
 
빅터 도미넬로 NSW 시민권 및 커뮤니티 장관은 “이 이슈는 호주와 일본, 한국 간 관계에 관련된 사안이므로 연방정부의 조언을 모색하는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측이 모두 위안부 소녀상 건립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음에 따라 이 문제는 스트라스필드 시의회로 다시 돌아왔다. 시의회는 결국 11일 특별회의에서 위안부 소녀상 건립 계획 반대를 결정했다. 
 
● “전쟁 기념비에도 해당 안돼”= 시의회는 위안부 소녀상 설치 반대의 주된 이유로 시의 ‘기념비 정책(Memorials Policy)에 대한 부적합’을 내세웠다. 지난해 4월 공청회에서는 '기념비 정책'이 언급되지 않았었다. 
 
스트라스필드시의 기념비 정책 조례는 2005년 2월에 채택된 것으로, 관내 공공공지(公共空地, public open space)에 설치하는 기념물에 적용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시의회는 관련 정책 하에서 네 가지 자격 조건 중 하나를 만족해야 기념비 건립이 고려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자격 조건은 첫째 스트라스필드 주민이면서 지역사회에 기여가 컸던 개인(사망자), 둘째 지역사회에 기여가 큰 협회나 단체, 셋째 연방이나 주, 지역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행사나 장소, 넷째 전쟁 기념비이다. 
 
시의회는 그러나 위안부 소녀상이 이들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며, 국방 의무 중 희생된 장병의 추모를 주 목적으로 하는 전쟁 기념비 조건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시의회는 또 제출된 위안부 소녀상 건립 제안서가 조각상 설치 비용과 관리 비용을 어떻게 부담할지 내용을 담지 않았으며, 기념비 개발허가(Development Consent) 신청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정책 조건도 충족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주민 대상 설문조사에서 605명의 참여자 중 33%만 위안부 소녀상 건립에 찬성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 “언젠가 다시 기회 올 것”= 위안부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송석준 위원장은 11일 시의회의 결정이 나온 후 교민들에 전하는 메시지에서 “2년간의 투쟁으로 일본의 전쟁범죄를 세상에 알린 것은 큰 성과이고 역사는 여성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한 우리의 땀과 노고를 기억할 것”이라며 “언젠가 기회가 다시 올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한중 연대 공동의장을 역임한 옥상두 스트라스필드 시의원은 “시의회가 소녀상 건립 제안을 심의하면서 기념비 정책 조건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것 같다”며 “한인사회가 위안부 소녀상 건립 지역을 바꿔 다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인과 중국계 주민이 지역인구의 약 30%를 차지하고 한국계 시의원도 있는 스트라스필드에서 위안부 소녀상 건립 계획이 무산됨에 따라 사업이 다시 동력을 찾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허인권 기자 ikhur@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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