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땡땡이를 치고 싶을 때가 있다. 성실하게 잘 해오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지만 그 달콤한 맛을 일찍 경험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과외 공부를 했었는데 비가 억수처럼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길을 잘 찾아 가다가 공부할 장소 가까이 오자 갑자기 가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갈 곳도 없었다. 
 
그 때 유일한 오락이라는 것이 만화방에 가서 만화를 보는 것이었다. TV도 흔치 않았던 시절이라 만화책을 몇 권 보면 TV를 볼 수 있는 표를 주었다. 
 
한창 만화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마침 사촌형이 들렀다가 나를 본 것이다. 사촌형은 말썽쟁이였고 나는 모범생이라서 항상 형의 눈총을 받던 차에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바로 어머니에게 가서 고자질을 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어머니는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놀라셨던지 빗속을 우산도 안 쓰고 만화방으로 달려 오셨다. 그리고 나의 팔을 획 낚아채고 아무 말씀 없이 끌고 가셨다. 
 
그 때 근처에 큰 개천이 있었는데 마침 비가 많이 와서 그 곳에는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에 너랑 나랑 같이 빠져 죽자!”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두 손을 싹싹 빌며 어머니 옷자락에 매달렸다. “어머니, 잘못은 내가 했고, 어머니가 죽으면 동생들은 누가 돌봐요? 나만 죽을게요.” 어머니는 나를 품 안에 안고 하염없이 우셨다.
 
그 후 고등학교를 다니며 공부하기 싫을 때면 가끔 그 곳을 찾아가곤 했다. 사실 그 개천은 떨어져도 죽지 않을 만큼 얕았다. 하지만 아들에 대한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졌으니 오죽 답답하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그 시절 아버님은 바람을 많이 피우셨다. 바람 핀 여자를 내 손가락, 발가락을 다 합쳐도 모자랄 정도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어찌 그런 사람과 어머니가 그냥 같이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너무 싫어서 어머니께, 아버지와 이혼을 안 하시면 내가 집을 나가겠다고 옹심을 부렸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너희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더라도 집의 돈은 가져가지 않고서 바람을 피운단다” 하시는 것이었다. 
 
그 때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아버지를 미워하지 말라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인 줄을 이제 나는 안다.
 
우리 아버지는 참 잘 생기셨다. 옷을 쫙 빼 입고 나서면 마치 영화배우 같았다. 그러니 뭇 여성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었겠는가. 게다가 마음이 무척 약하셨으니 접근하는 여자들을 매몰차게 내치지 못하셨을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생각이다. 
 
여하튼 어머니는 무척 자존심이 센 분이셨지만 그렇게 참아 가면서 한 평생을 사셨다. 그런 어머니의 장남이었기에 나의 대한 어머니의 기대는 컸다.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철도 일찍 들었고 공부도 곧잘 했었다. 
 
어머니는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셔서 의대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를 했으나 재수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당시는 막연하게 철학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나 또한 철학에 관심을 갖고 철학을 하겠다고 했더니 그러면 대학을 안 보내주겠다고 하셔서 할 수 없이 의대를 갔다. 하지만 영 의대공부가 마음에 안 들어 어머니 몰래 전과를 하고 말았다. 
 
지금도 그때의 아쉬움이 남아 있어 구십이 내일 모레이신 노모는 “너는 내 말을 안 들어서 그 고생이다” 하신다. 
 
어느 날인가 아들이 내게 “아빠 저에게 큰 기대를 하시지 마세요” 했다. 처음엔 무척 괘씸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어머니에게 했던 그대로이다. “아하! 내가 이제 그 죄를 그대로 받는구나.” 
 
예전에는 노후대책이라는 것이 없어서 늙으면 당연히 자식들에게 보살핌을 받았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우리 세대가 마지막으로 부모를 모시는 세대이고 자식들에게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세대라고 한다. 
 
그들도 자기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꾸려가기 바쁜데 어찌 부모까지 보살피라고 하겠는가. 그저 자기들만이라도 행복하게 살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리라. 
 
어렸을 때 어머니를 속상하게 하면 어머니는 “너도 이 다음에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 하시곤 하였는데 이제 그 뜻을 제대로 알 것 같다. 
 
품 안에 자식. 그 자식이 어느새 자라 어엿한 한 인격체로 살아가고 있다. 그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하고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껴야 할까 보다. 
 
어머니가 나에게 그리 느꼈을, 그때 그 모습으로…
 
임보형(글무늬 문학사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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