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불긋, 왁자지껄! 대강당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학생들과 교사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뒤섞이며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독일 전통 의상을 입은 동료 선생, 한복을 입은 나 그리고 인도 전통의상인 사리(Sari)를 입은 리타를 선두로 우리는 흥분과 에너지가 넘치는 도가니 속에 빨려가듯이 강당으로 들어섰다. 
 
개량한복이어서 그런지 옷을 입는데 단 몇 분 걸렸던 나에 비해 인도 수학선생 리타는 오늘 아침 사리를 입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고 남편 타박을 했다. 보통 인도에서는 엄마가 도와주는데 호주에서는 하는 수 없이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해 오래 걸렸다고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이날 행사는 ‘통합교육’(Integrated Study) 과목을 듣는 7학년 학생들의 하모니 날 행사였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크고 화려했으며 참여한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선생님들의 열정도 더욱 뜨거웠다. 
각 나라를 자세히 보여주는 부스가 설치되었고 학생들과 담당 선생들은 그 나라 고유의상을 입고 열심히 설명해 주고 있었다. 음식 또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전시였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들을 맛보라고 내미는 학생들의 손을 거절할 수 없으니 이것저것 마구 맛보았다. 내심 한국 부스를 찾아볼 수가 없어 아쉬웠고 한국인들이 많은 시드니에 있는 학교들과 비교되었다.
 
부스에 서 있는 학생들은 평소 수업 때 보았던 모습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
 
수학을 싫어하는 존(John)은 교실에서 매일 말썽 피우기가 전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위탁가정 (Foster Home)으로 여러 군데 옮겨 다니며 온갖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받아 아이로서는 차마 겪지 말아야 할 끔찍한 일들을 많이 경험해 왔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하지만 오늘 부스에서는 의젓하고 묵묵히 자기 일을 잘 하고 있다. 한참을 이곳저곳 부스를 돌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나의 어깨를 톡 친다. 존이다. 쿠키를 나에게 내밀면서 “맛있게 드세요” 한마디만 던지고 사라진다. 가슴이 뭉클했다.  
 
게리(Gary)는 영리한 것 같은데 수업시간에 핸드폰을 자주 보고 열심히 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 내 관심을 끈다. 대화를 나눠보니 그도 자라온 배경이 남달랐다. 미국인과 결혼한 호주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한살 남짓된 어릴 적에 이혼한 미국인 아빠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갔었으며 그를 찾기 위해 나타난 엄마 손에 이끌려 다시 호주로 돌아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엄마와 관계를 맺었던 여러 의붓 아빠들을 거쳐 십대를 지내고 있어 형제자매들 관계 또한 복잡했다. 그러나 마약중독이던 의붓 형과 산 경험이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자신이 지켜야 할 소신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골 큰 농가에 살면서 매일 다양한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등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상의 일들을 책임감 있게 해내고 있고 다른 열악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보다 자기가 현재 누리는 많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다고 제법 성숙하게 말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해병대에 입대할 거라는 샘(Sam)은 키도 크고 늘씬하며 미남인데다 예절이 바르고 의젓해서 마음이 많이 가는 아이다. 쌍둥이 중 몇 분 늦은 동생으로 태어난 샘은 초등학교 시절 심한 비만이어서 뚱뚱보라고 왕따를 당한 아픈 경험이 있었다. 스스로 운동과 단식으로 살을 빼 5학년 긴 여름 방학 후 학교에서는 자기를 알아보는 친구가 없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아빠 집을 일주일 간격으로 번갈아 가며 살고 있지만 불편한 줄 모르겠다는 그는 아빠와 함께 운동하러 다니는 것이 제일 즐겁다고 했다.
 
이태리 후식을 자랑스럽게 권하는 앤(Ann)과 마주쳤다. 호주 토박이로만 알고 있었는데 엄마가 이탈리아인이라고 한다. 먹음직해 보이는 후식은 어제 저녁 엄마가 도와주어 자기가 만들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먹어보니 역시 맛있었다.
 
하모니 날을 통해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학생들 성장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해가 거듭할수록 전통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줄어든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 반 이상이 결손 가정에서 자라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우리 선생들은 수업 내용을 가르치는 것 이외에 학생들의 수업태도를 제도(behaviour management)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라온 환경과 배경이 다를지라도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나를 잘 알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 속에서 시간을 같이 한다는 것은 얼마나 편안한 일인가. 이제는 어느덧 학생들과 하모니를 이루며 생활하는 법을 익혔다.
 
새로 산 운동화를 처음 신었을 때의 거북함과 불편함. 발과 운동화가 따로 노는 듯한 그 일시적인 어색함 같은 느낌이랄까. 내 발이 새로운 운동화 속에서 익숙해지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호주에서 교직생활은 마치 이제 막 새로 산 운동화를 신은 바로 그 느낌이었다. 그런 나의 일상이 어느덧 오래 신은 운동화처럼 편해져 가고 있다.
 
*Harmony Day: 하모니 날은 매년 3월 21일에 열리는데 이날은 인종 간의 편견을 없애자는 취지로 유엔이 정한 기념일과 일치한다. 호주에서의 다문화주의를 기념하는 날이다. Harmony Day is held every year on 21 March to coincide with the United Nations International Day for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 The message of Harmony Day is everyone belongs. It’s a day to celebrate Australia’s diversity - a day of cultural respect for everyone who calls Australia home.
 
송정아(글무늬 문학사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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