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해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우리들은 무언가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뒷동산에 우르르 올라 그럴듯한 지형을 골라 요새를 만들고 대나무 가지들을 곱게 잘라 활과 화살을 만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산을 활보하고 개울에서 헤엄치고 골목길에서 뛰어놀던 그 시절엔 동네 모든 아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소위 멤버였습니다. 고르고 골라서 멤버를 구성하는게 아니라 어느 누구도 낙오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원칙이었습니다. 구슬치기나 딱지치기 같은 따먹기 게임을 하다보면 치사하게 구는 아이, 우기는 아이, 속이는 아이, 아니면 말 못하고 속앓이하는 아이 등 가지각색의 본색을 어김없이 드러냅니다만 그만한 일로 사이가 쉬이 갈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 무리에는 늘 서열이란게 암묵적으로 존재했습니다만 약하고 뒤처진 아이를 괴롭히거나 착취하거나 소외시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대장이라는 훈장에는 늘 약자를 앞장서서 보호하고 챙긴다는 믿음이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시절 시골의 청소년들은 과외나 촌지라는게 뭔지 전혀 모르고 살았었습니다. 학교 선생님께는 “우리 아이 많이 때려주세요”가 믿음과 존경의 표현이었고, 불시에 들이미는 막걸리 한사발, 체육대회나 소풍 때 건네드리는 김밥과 통닭 한마리가 감사와 정의 표시였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이 자식 저 자식이 듬뿍 섞인 투박한 훈계 안에서도 관심과 사랑을 느꼈고 꿀밤 맞고 돌아서는 입가에는 미소가 배시시 번지곤 했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꿈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사랑하고 헌신하시는 부모님의 책임감을 이어받고 선생님들의 지혜와 자애로움을 본받고 어떤 멋진 어른들처럼 돋보이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상상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그림들을 그렸겠지만 모든 아이들의 꿈들은 결국 언젠가 먼 미래에는 자신도 후세의 꿈꾸는 세대들에게 모범이 되어주는 좋은 어른이 되겠다는 한가지로 통했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성세대의 세속적인 가치관에 젖어들었습니다. 서서히 변해갔지만 돌이킬 수 없는 변화였습니다. 사회 안에서의 서열에 집착하면서 올라서기 위해 부단히 궁리하고 치열하게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올라서려고 애쓰는 이유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면 서글픔을 당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거나 돋보임으로써 으스대고 싶은 욕망 때문이겠지요. 소위 수준이 맞지 않고 경우가 다르면 소외시키기도 하고 스스로 고립되기도 합니다. 누군가 치사하거나, 우기거나, 속이거나, 또는 속을 모르게 행동하면 멀어지거나 응징할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들 오르려 애쓰고 강해지려고 노력하는데 정작 올라서서 강해짐으로써 여유롭고 너그러워진 자들이 별로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 더 갖기 위한 경쟁에는 늘 승패가 있는 듯 하지만 행복해지기 위한 경쟁에는 결국 승자가 없는 듯 합니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1월 15일에 별세하신 후, 출판된지 벌써 28년이 지나버린 선생님의 명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최근에 새삼 화제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정신은 영롱하고 순수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심지어 억지스럽게 만들어낸 죄명으로 자신을 20년 동안 감옥에 가두어둔 그 무리들에게 조차 미움을 드러낸 적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미움에 빠져 있는 시간은 자신에게 독이 될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니까요. 그 오랜 고독 안에서 선생님은 꾸준히 구도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묵묵히 행하심으로써 그 오랜 인고의 세월을 당당하게 맞서 상대하셨습니다. 늘 고전을 읽고 깊은 생각에 잠김으로써 육신의 감금을 영혼의 성장으로 돌려세우셨습니다.
       
고 신영복 선생님의 삶과 정신이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을 일깨워준다고 느꼈습니다. 남루하고 보잘 것 없는 외모의 시골뜨기 아이들에게도 천진한 마음으로 친구가 되어주고 의리를 지키며 배울 건 배우는 자세를 유지하셨습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상대가 누구건 그 사람의 겉이나 이루어온 것들을 보기보다는 마음 안의 지향점을 읽고 존중하며 깊이 나누려 하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정신을 높이 기리고 본받으려는 후세가 많은 걸 보면서 이 사회가 그리 삭막하진 않다고 느낍니다. 사는게 늘 바쁘고 세상은 각박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잠시 숨 돌리면서 잊고 살아온 옛 순수한 기억들을 되새겨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김진관 koreanclinic@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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