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공화국 제정 운동이 주요 아젠다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달 호주공화국운동(ARM) 본부의 피터 핏츠사이몬즈 대표는 “6명의 주총리 중 5명과 2명의 준주 수석장관들 모두 공화국 제정을 지지하고 있다”고 발표하며 “올해 총선에서 공화국 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병행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 주총리와 준주 수석 장관들은 호주인을 국가수반으로 해야 한다는데 초당적인 의견의 일치를 보인 것이다. 이들을 포함해 4천명 이상이 공화국 제정 청원 캠페인에 합류를 했다. 

그동안 여러 설문조사에서 “호주인을 국가수반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은 과반 이상의 지지를 받아 왔다. 그러나 현행 입헌군주제를 공화국으로 변경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지율이 과반을 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호주는 큰 변화에 대해서 매우 더딘 반응을 하는 나라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재위에 있는 기간 동안 공화국 제정에는 국민 다수가 반대 입장이다.  

말콤 턴불 총리는 ARM 대표를 역임한 자유당 정치인이다. 그는 최근 캠페인과 관련,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이후 추진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면서 “서두르지 말자”는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입장 발표에 대해 보수 미디어인 데일리텔레그라프지는 “열렬한 공화국 지지자인 턴불이 총리가 된 뒤 태도를 돌변했다”는 시각으로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턴불 총리는 “공화국 제정에 대한 지지 입장을 철회한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제정 추진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지난 1999년 국민투표 부결처럼 실패를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란 이유를 설명했다. 

17년 전 공화국 제정을 위한 국민투표 부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지지자들 사이에 호주인 국가수반(head of state) 선출 방법에 대해 이견이었다. 국민들이 투표로 선출해야 한다는 주장과 의원내각제인 만큼 의회에서 임명을 해야 한다는 반론이 맞섰다. 공화국 지지자들 사이에 이에 대한 합의가 있지 않는 상태에서 국민투표를 다시 강행하는 것은 두번째 부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턴불 총리의 지적에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 

국가수반이 선출된다면 또 한 명의 중요한 정치 지도자를 갖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명칭인 연방 총독(Governor-General)을 호주인으로 의회에서 임명하는 방식이 적합하다고 본지는 판단한다. 여당 대표인 총리가 임명을 하고 의회에서 인준을 받는 방식이 무난하다. 직접 선거로 여야 대표 외 또 다른 정치 지도자를 만들 필요는 없다. 

만약 연방 총독이 아닌 대통령을 국가수반으로 국민들이 선출한다고 가정할 때, 집권당과 대통령이 이견을 보일 경우, 정치적인 혼돈과 파국이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국가수반 선출 방법에 대한 이견이 없을 때까지 국민투표를 보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턴불 총리는 야당대표 시절 기후변화정책(탄소세 신설)에서 자유당 보수파의 반발에도 불구 케빈 러드 정부를 지지했다가 애봇에게 당권 도전을 당해 불과 1표 차이로 패배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따라서 국가수반 선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도출되는 것이 중요하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사후 추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세제 개혁과 노사관계 재정립, 자원 붐 이후 호주 경제의 성장 동력 만들기 등 경제적 난제들이 산적해 있는 총선의 해에 공화국 제정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보다 턴불 총리의 주장대로 서두르지 말고 준비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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