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이 오래 만에 참신한 정책을 들고 나왔다. 빌 쇼튼 야당대표는 14일(토) 시드니에서 열린 NSW 노동당 컨퍼런스를 통해 그동안 말이 많았던 네거티브 기어링 세제 혜택을 신축 주택으로 제한하겠다는 개혁안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또 양도소득세 감면(capital gains discounts)을 현재의 50%에서 25%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 두 이슈는 정치권에서 초당적으로 ‘손 댈 수 없는 영역’으로 인식돼 왔는데 정부보다 야당이 과감한 개혁안을 먼저 제시했다. 네거티브 기어링 혜택으로 인한 정부의 세수 손실은 연간 20억 달러로 추산된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액수다. 집권 5개월을 넘기면서 이렇다 할 개혁 정책안을 제시하지 못한 턴불 정부로서는 보기 좋게 선제공격을 당한 셈이다.
근자에 노동당이 유권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은 것은 매우 드물다. 지난해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 회피 청문회를 소집해 300억 달러의 세금이 각종 명분과 편법으로 탈루됐다면서 국세청이 고삐를 조이도록 한 것이 거의 유일했다. 

네거티브 기어링 제도의 개혁 이유에 대해 쇼튼 야당대표는 “중산층과 노동자 계층도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는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라고 다분히 유권자를 의식한 발언으로 설명했다. 그는 “첫 내집 매입자들이 투자자들과 경쟁에서 공평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노동당이 이를 돕겠다. 너무 오래동안 집값이 앙등해 주택 시장이 중산층과 노동자 계층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지적하며 정부를 겨냥했다. 이어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50%에서 25%로 낮추는 것은 조세제도의 효율성과 공평성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할 경우, 2017년 7월부터 두 가지 개혁안을 시행할 계획이다.
이 시기 이전에 매입한 투자용 부동산에는 제한 조치가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의회예산국(Parliamentary Budget Office)에 따르면 노동당의 네거티브 기어링 신축 주택 제한으로 향후 10년 동안 321억 달러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쇼튼 야당대표의 발표와 관련, 스콧 모리슨 장관은 “네거티브 기어링을 이용하는 대다수가 중산층”이라면서 “야당이 대상을 잘못 짚었다”라고 반박했다. 이 비난에는 급격한 변화로 정치적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는 여당내 평의원들의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여당 안에서도 “네거티브 기어링을 과도하게 이용하는 계층을 겨냥해야 한다”, “투자용 부동산 개수 제한 또는 연간 비용감면 상한선 설정이 필요할 것”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다.

17일 모리슨 장관은 내셔날프레스클럽 연설을 통해 “5월에 발표될 차기 예산안은 정부 지출 감축이 핵심”이라면서 “부가세(GST) 인상안은 더 이상 검토하지 않는다”라고 철회를 확인했다. 그는 “자유-국민 연립 정부가 집권을 한 2년 동안 800억 달러를 절감했지만 700억 달러를 지출했다. 사실상 2년 전과 같은 재정 상황이 됐다. 광산 붐이 종료됐고 예산 적자 해소에 생각보다 훨씬 오랜 기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부가세 세율 인상안을 더 이상 검토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네거티브 기어링과 퇴직연금세제혜택 등 다른 세제 옵션만으로는 세율 인하에 필요한 재원 조달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세율을 인하하려면 지출 감축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주정부들도 세금 인상보다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정부 지출 삭감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네거티브 기어링 개혁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이와 관련, 경제지 AFR(오스트레일리안 파이낸셜리뷰)지는 ‘모리슨 세제 개혁 포기하다(Morrison surrenders on tax)’란 제목으로 “모리스 장관이 17일 연설에서 정부 지출 감축을 강조했지만 세제 개혁을 포기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라고 보도했다.

지난 1999년 주거비 채무(housing debt)는 가처분 가구소득(disposable household income)의 66%였다. 5년 전보다 18% 늘었다. 2004년 이 비율이 103%로 37% 급증했다. 현재는 132.5%에 달한다. 16년 사이 2배가 급증했다. 호주인의 집에 대한 강박관념(obsession)이 커지면서 부산물인 개인 채무도 덩달아 늘어난 셈이다. 
지난 3, 4년 동안 시드니와 멜번 등 호주 대도시 집값이 폭등했다. 집을 갖지 못한 계층은 이를 지켜보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이 더욱 커졌다. 이들의 심리(불만)는 지금 미국 대선의 정당별 후보 지명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후보에 대한 지지율 폭등과도 일맥상통한 측면이 있다. 74세의 핸더스 후보에게 특히 젊은층이 열광하고 있다. 그 이유는 기성 정치인들에게 대한 실망감과 샌더스 후보의 발언에 반영된 진정성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쇼튼은 네거티브 기어링 혜택 제한과 양도소득세 감면 인하 제안으로 여당의 공세를 제압했고 노동당 내부에서 당권 도전 가능성을 낮추었다. 정부는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수단이지 정권 획득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네거티브 기어링 변경 제안처럼 핵심을 건드리는 과감한 정책 개혁이 있어야 유권자들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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