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는 ABC와 SBS의 복수 공용 방송이 있다. 양사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정부 예산 지원으로 2개 공용방송이 유지되고 있다. 
퇴임을 앞둔 마크 스콧 ABC 방송 사장이 또 다시 양사의 통합을 요구하고 나섰다. 24일(수) 켄버라의 내셔날프레스클럽 초청 연설을 통해 종전의 통합 주장을 되풀이했다. (관련 기사 7면)
그는 “SBS가 호주 주류 방송계 안에서 스스로 차별화에 실패했기 때문에, 또 ABC와 통합을 하면 연간 4천만 달러 예산 절감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우호적인 통합(friendly merge)’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반복된 주장을 보면서 비영어권인 한인 커뮤니티 입장에서 본지는 다음과 같은 반대 이유를 밝힌다. 
 
첫째, SBS 방송의 존속 이유는 비영어권 커무니티를 대상으로 방송을 통한 사회적 융합 증진이라는 특별한 역할(special role)을 수행하는 것이다. 70년대부터 비영어권 이민자 인구가 증가하면서 호주가 다문화사회의 성격이 강해지는 시대 변화에서 공용 ABC만으로는 다문화, 다언어 방송을 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SBS가 출범했다. 이유는 ABC의 한계, 즉 앵글로계 시각 위주의 보도 관점 때문이다. 
ABC는 호주에서 가장 앵글로계 중심의 기관(Anglocentric-dominated organisations) 중 하나다. 프로그램, 방송 인력을 분석하면 쉽게 이같은 특성을 알 수 있다. ABC는 인기 없는 영국 드라마와 영국 국영 BBC방송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방영하는 곳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스콧 사장은 통합 이후 SBS가 ABC의 통제 안에서 어떻게 개선될 것인지에 대해 타당성 있는 설명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본지는 ABC가 이민자 라디오와 TV 영역을 관장할 적합한 기관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둘째, ABC와 SBS는 규모, 예산, 인력과 장비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양사의 ‘우호적인 통합’은 구호에 불과하며 사실상 ABC의 SBS와 NITV(국영원주민텔레비전, National Indigenous Television) 흡수 합병(takeover)을 의미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호주에서 다문화 프로그램 방영의 종영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이민자 시각에서 더욱 우려된다. 
ABC 방송에서 다언어 부서는 라디오 오스트레일리아(Radio Australia; RA)다. 이곳에서 아시아와 태평양을 향해 8개 언어로 방송을 송출한다. 유감스럽게도 ABC 내부에서 RA는 훈련 장소 내지는 좌천 부서로 인식돼있다. 흡수 합병될 경우 SBS가 또 하나의 RA 기능에 국한될 수 있다. 

셋째, SBS의 발전이 제약을 받는 이유는 정부의 예산 제한 때문이다. SBS의 출범은 1970년대 중반 시드니(2EA)와 멜번(3EA)에서 소수민족 라디오 공영 방송에서 유래한다. 반세기를 지나며 비교적 성공적인 다문화, 다언어 공영 방송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역할이 제한돼 있지만 호주가 다문화주의를 지향하는 한 이 역할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ABC의 흡수 합병 추진은 사춘기 단계에 있는 SBS의 싹을 없애려는 것이다. 스콧 사장과 ABC의 통합 본심은 SBS 예산을 ABC로 돌리려는 것이다. 연립 정부 집권 후 ABC 방송은 예산이 줄어 일부 프로그램 폐지와 인력 감축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SBS를 합병할 경우 ABC는 수억 달러의 예산이 늘어날 수 있다.    

호주 소수민족커뮤니티위원회 총연합회(Federation of Ethnic Communities' Councils of Australia; FECCA)의 조 카푸토(Joe Caputo) 회장은 “SBS 파괴는 국가적 수치”라면서 주요 정당들에게 총선 전 공약인 SBS 독립 지위 유지를 이행하라고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마이크 베어드 NSW 주총리와 다니엘 앤드류스 빅토리아 주총리, 두 주의 야당 대표 등 유력 정치인들이 SBS 통합 반대 의견을 분명히 연방 정치권에 전달해야 한다. 소수민족 커뮤니티가 앞장서 목소리에 힘을 실어야 한다.   
토니 애봇 전 총리 시절, 인종차별법 18C조 개정 추진 때 두 주총리들이 반대 의사를 밝힌 것처럼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시드니한인회도 SBS 흡수 합병에 반대를 한다면 다른 커뮤니티 대표 단체들과 연대로 이런 의견을 표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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