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치러진 20대 총선이 새누리당 참패로 끝났다. 광범위한 민심 이반이 표출되면서 친여(親與) 무소속을 합하더라도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여야 1대1로 치러진 19대 총선보다도 못한 결과밖에 얻지 못했다. 심지어 새누리당 아성인 서울 강남권까지 흔들렸고 친박(親朴) 후보들이 전국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부산?경남에서도 야권에 10석이 넘는 의석을 넘겨줬고 충청?강원에서까지 의석을 잃었다.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도 전국적으로 19대 때보다 5%포인트 가까이 떨어졌고 서울에서는 30%를 간신히 넘겼다. 
새누리당은 선거전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최대 180석까지 얻을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이런 오만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야권이 분열되지 않았더라면 어떤 참담한 상황이 왔을지 알 수 없다.

이 결과에 대한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과 진박(眞朴)이라는 사람들이 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과 대통령을 둘러싼 사람들이 새누리당에 책임을 미루려 한다면 민심은 더 멀어질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작년 5월 자신의 말을 충실히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지목해 끌어내렸다. 진박이라는 사람들은 이번 공천을 주도하면서 유 전 원내대표와 가까운 사람들을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모두 잘라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거칠게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 쏟아졌지만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을 몰아냈다. 유권자를 한 줄로 세울 수 있다는 오만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박 대통령은 1년 전부터 국민을 향해 정치권 전체를 심판하고 국회를 완전히 바꿔 달라는 말을 수시로 했다. 선거 며칠 전까지 지방을 돌며 국회 심판론을 되풀이해 선거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대통령이 국회 심판을 외치다가 스스로 심판당한 꼴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 투표하기 싫다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실제 국민의당 수도권 지역구 후보들이 고르게 10~20%대 득표를 한 것을 보면 여당 지지표가 상당히 흡수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여당은 눈 가리기 식 읍소(泣訴)를 하거나 ‘식물 대통령 막아 달라’ ‘야당이 발목 잡지 않게 해달라’ 같은 상투적인 말밖에 하지 않았다. 이러고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면 정상이 아니다. 이번 총선 결과는 대통령의 독주, 이걸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진박, 이 판을 뒤집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따라간 여당 전체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은 임기 초에는 인사 실패를 거듭했고, 안하무인의 태도로 불통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박 대통령 주도로 선진화법을 만들어 주요 국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매번 의사 결정이 지연되면서도 국민에게 사과 한번 하지 않고 국회 탓만 했다. 이제 국정 주도력이 국민 불신을 받음으로써 사실상 임기 말 레임덕이 그 어느 정권보다 빨리 시작됐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야당은 물론 여권 내 반대 세력과 대화하는 길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이 나라가 지금 안보?경제 동시 위기라고 말해왔다. 실제 상황이 그렇다. 밖으론 격동하는 동북아 국제 정세 속에서 평화와 통일을 우리 손으로 주도해갈 수 있느냐, 아니면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우리 운명을 휘둘릴 것이냐는 갈림길에 섰다. 경제도 장기 저성장 국면에서 자칫 길을 잘못 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우선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 국정(國政)도 일대 쇄신해야 한다. 그 변화는 이번에 표출된 민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새누리당도 모든 것을 바꾸지 않으면 이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중한 심판이 내려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조선일보 14일자 사설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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