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 시드니 비엔날레 예술감독 스테파니 로젠탈(Stephanie Rosenthal)이 한국인 작가 이 불(Lee Bul)의 작품 ‘기꺼이 상처받을(Willing to be vulnerable)’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Cockatoo Island.

정신과 철학의 교차점에서..

시드니 비엔날레가 한창이다. 하늘은 높고 양이 살찌는 시드니의 가을, 전세계에서 온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시각 예술작품들이 시드니 곳곳에서 전시되고 있다. 비엔날레는 일반 전시와는 달리 미술을 통한 현실 참여와 미래 지향적인 예술적 경험을 통해 소통의 담론을 형성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일반 미술 전시가 기존 제도권의 전통적 시스템에 근간하고 있다면 비엔날레는 모든 권위와 체제로부터 독립적이며 즉각적이고도 유연하게 접근한다고 할 수 있다. 

시드니 비엔날레는 1973년 세계에서 네 번째로 시작해, 세계 5대 비엔날레로도 불리었으나 최근 들어 풍부한 자본과 기획으로 무장한 후발 신진 비엔날레들에 밀리는 듯한 느낌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호주는 물론 아시아 태평양 지역 최대의 인터내셔날 현대 미술 축제임은 분명하다. 특히 올해는 현대 자동차가 메이저 스폰서로 있어 전시관 곳곳에서 익숙한 이름을 보게 되어 반갑다.

올해 시드니 비엔날레는 ‘미래는 이미 여기에 있다. 다만 균일하게 분포되어있지 않을 뿐.(The future is already here - it's just not evenly distributed)’이라는 큰 주제 아래 35개국 83명의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보여진다. 작가의 개인적이거나 사회적, 종교적 또는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매우 진지하면서도 도발적인 접근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멜라 자스마(Mella Jaarsma)는 인도네시아인 남편과 함께 인도네시아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이다. 그녀의 시드니 비엔날레 참여 작품 ‘Dogwalk’는 동물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태도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뉴사우스웨일즈 미술관 지하 1층의 비엔날레 특별 전시관을 들어서면 입구에서 패션 퍼레이드를 연상시키는 설치 작품을 만난다. 언뜻 가볍고 경쾌하게  보이지만 인간의 동물에 대한 ‘그때그때 달라요’식의 이기적인 편견을 풍자한 작품이다. 작가는 인간과 동물, 특히 개(Dog)에 대한 강한 연결을 가진 서양 문화권에서 이슬람 종교 문화권으로 삶의 터전을 바꾸면서, 애착 관계의 대상이 불결하고 금지된 대상이 되어버린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애완동물(Pet)이 상반된 종교나 문화에 의해 유해동물(Pest)로 바뀌어버리는 모순적 상태는 나아가 상황에 따라 쉽게 조작되고, 개연성없이 숭배되거나 매도되는 혼돈의 우려를 표현한다.

계속되는 다양한 주제의 전시를 지나 막바지에 이르면 게임보드를 연상시키는 다섯개의 테이블 위에 성좌도 형태의 목탄 드로잉이 전시된 방이 나온다. 이 작품은 아시아 근대사에 나타난 다섯가지의 정치적 대학살을 포괄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대만 출신 작가 인주 첸(Yin-ju Chen)은 각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지구에서의 위치를 우주의 성좌도(Star chart)에 대응시켜 각각의 지도를 만들고 와해도(Liquidation Maps)라 이름지었다. 

Liquidation Maps(Gwangju Uprising, South Korea,1980), Yin-ju Chen, Charcoal, Pencil 125 cm x 126 cm

작가는 아시아 전체를 하나로 보고 있으며, 현재의 아시아의 근대성은 과거의 폭력과 고통을 수반하며 집단의 공동 기억을 형성한다고 전제한다. 작가가 주목하는 사회적, 정치적, 나아가 인간 존엄성의 와해라 보는 일련의 사건들은 싱가폴의 숙칭 대학살(1942),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 사건(1975), 대만의 레이유 대학살(1987), 동티모르 대학살(1999) 그리고 한국의 광주 민주화운동(1980)이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비롯하여 킬링 필드로 우리에게 더 익숙한 크메르 루즈 사건 등 수없이 많은 죽어간 이들의 외침이 우리 뇌의 기억에 상처로 남아있다.

통장에 29만 원밖에 없던 그분은 30년도 훨씬 더 지난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 자신이 시나리오, 주연, 감독을 맡았던 그때 그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까. 공기 반, 최루가스 반이었던 80년대 초 대학을 다닌 내게는 사뭇 만감이 교차하는 전시 작품이다. 

*시드니 비엔날레 한국어 안내 투어 ; 6월 4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 

이 규미(Community Ambassador, Art Gallery N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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