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톱 지면을 장식한 원주민 관련 기사를 보니 선거철이 다가왔음을 알게 된다.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든지 호주 땅에 최초의 정착민인 원주민에 대한 정책은 늘 어두운 여운을 남겨준다. 현재의 호주 헌법은 4만 년 전부터 호주 대륙에 정착한 원주민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1800년대 정착한 영국인들의 백인역사를 정착의 시기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원주민 단체나 일부 옹호론자들은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 일간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ABC방송의 선거 분석 설문조사인 투표 나침반(Vote Compass)이 8~18일 동안 196,9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원주민을 최초의 정착자로 인정한다는 데에 찬성 72%, 반대 14%가 나왔다”고 한다. 시선을 돌린다고 잘못된 역사의 흔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이 땅의 숨겨진 역사의 한 부분을 알게 되었을 때의 당혹스러움은 새로운 시선으로 호주라는 나라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퀸즐랜드대학에서 애보리진(호주 원주민)들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원주민의 전망'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침략을 당한 민족의 동질감 같은 비애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대한민국도 오랜 세월동안 끊이지 않았던 외침과 3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일본에 의해서 지배당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기에 백인들의 침략에 의한 원주민의 숨겨진 역사가 세상에 드러났을 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다. ‘애보리진과 토레스 스트레이트 섬 원주민의 전망’이라는 과목을 강의했던 교수는 애보리진이며 자신은 ‘구랑구랑’ 부족 출신이라고 했다. 그는 마이클 윌리암스라는 영어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애보리진 역사학과의 책임교수였다. 혼혈임을 짐작할 수 있는 외모는 짙은 갈색 피부와 뭉툭한 코를 가졌으며 덥수룩한 구레나룻 수염은 사람 좋은 이웃 할아버지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자신의 조상과 종족을 이야기 할 때는 강인한 눈빛과 목소리에 힘이 실림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의 강의를 통해서 애보리진들이 1967년에 들어서야 호주 시민으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00년대 이후의 ‘빼앗긴 세대(Stolen Generation)’ 그리고 화해 (Reconciliation)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호주사회의 과제로 남아있다. 고정 관념이 되어버린 원주민의 이미지는 정부에서 타는 연금으로 생활하며 알코올에 찌든 교육수준이 낮은 미개인의 존재로 비쳐진다는 사실이다. 원주민을 비하하는 언어를 쓰지 말고, 피부색이 검다는 것이 사람의 인격을 만드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는 마이클 교수의 강의에 가슴이 뭉클해오는 감동을 받았다. 

마이클 교수는 2시간의 이론 강의와 1시간 정도의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여주고 사실성에 집중하며 강의를 했다. 어느 날 강의 중 1824년대의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태양의 여인들(Women of the Sun)’이라는 제목의 비디오 한편을 보여주었다. 그 내용은 바닷가에서 피쉬 트립(Fish Trip)을 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한 부족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백인들에 의해서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아닐타라는 한 어린 원주민 소녀의 눈을 통해서 보여주는 영화였다. 아닐타는 이 부족의 우두머리(족장)의 딸로서 나이가 들면 부족의 아이들을 잘 교육시킬 수 있는 교사의 자질을 가진 영리하고 착한 소녀였다.  부족의 어른인 한 할머니는 모닥불 주변에 젊은 여자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지혜를 전하며 여자로서 지켜야 할 소양을 교육시키곤 했다. 어느 날 두 명의 백인들이 바닷가에 표류되어 왔는데 외딴 섬의 교도소에서 탈출한 죄수들이었다. 처음 보는 노랑머리, 파란 눈의 백인들이 원주민들에게는 마치 유령의 모습으로 보였으나, 얼굴을 손으로 만져보고는 점토로 만든 피부의 사람 같다고 생각한다. 

태생적으로 온순한 성격과 외부인에게 우호적인 성격을 지닌 그들은 그 백인들이 불쌍하다고 여겨져서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음식과 물을 제공하고 상처를 돌봐주게 된다. 백인들의 건강이 회복되고 난 후에 그들의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라고 권하지만 탈옥한 죄수들이었던 그들은 그 부족에서 함께 살게 해달라며 등의 회초리 자국을 보여주며 애걸한다. 어린이를 제외한 부족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의견을 말하며 다수결로 결정하는 회의 진행이 민주주의 방식을 잘 따르고 있었다. 부족의 어른들인 장로들은 두 명의 백인들을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캥거루 사냥도 다니며 조금씩 의사소통도 가능하게 된다.  어느 날 ‘바닷가에서 구한 놈’ 이라는 별명을 가진 한 백인이 어린 소녀를 강간한 사건이 발생했다. 부족의 규율을 깨뜨린 그 자에게 가한 벌칙은 작은 방패를 쥐어주고 혼자 세워놓은 채 부족의 우두머리가 창을 던져서 죽이는 것이었다. ‘불붙는 머리’라는 별명을 가진 금발의 백인은 모든 면에서 원주민들과 동화되어가며 만족스럽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총을 가진 한 무리의 백인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원주민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며 호감을 갖고 안심하게 만든 후에 땅을 내놓으라고 무력으로 요구를 한다. 하지만 애보리진들은 백인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땅을 어떻게 사고 팔 수가 있는가, 땅은 우리들의 어머니이며 우리들의 혼이 스민 우리들의 정신이다”라고... 백인들은 어른 아이를 구별하지 않고 그 부족을 모두 몰살하는데 그 죽음의 혼란 속에서 아닐타는 자신의 아들과 유일하게 살아남고 몰락한 부족을 위한 역사의 증인으로 남겨진다. 처참하게 죽은 부족민들의 시체 사이를 누비면서 통곡하던 아닐타의 모습이 긴 여운을 남기며 잃어버린 역사의 뒷길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이 비디오는 모두 4부로 나누어져서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와 화해의 시대까지 연결되어있다. 2부는 1936년에 멜번의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어린 아이들을 강제로 빼앗아 가는 백인들의 횡포를 한 지식인 원주민 여자의 눈을 통해서 고발하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땅을 존중할 줄 알았던 순수한 애보리진들의 삶이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보면서 많이 슬퍼하며 가슴앓이를 했다. 과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영악스러움이 드러나는 세상에 살면서 해결되지 못하는 한 민족의 애달픈 역사가 아직도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여겨질 뿐이다. 태양의 여인들은 결코 지쳐서 쓰러지지 않을 거라는 마음의 격려를 보내며 애보리진의 역사가 바르게 쓰이기를 기대해본다. 호주의 첫 정착인들은 영국에서 온 백인이 아니고 애보리진이라고 헌법은 바뀌게 될 것이다.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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