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니 밥도 주로 혼자 먹습니다. 식당에서 혼자 ‘늠름하게’ 밥을 시켜 먹는 일에도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고깃집에 혼자 갈 생각은 아직 안 해봅니다. 혼자 불판을 껴안고 궁상을 떠는 꼴 만큼은 남에게 보이기 싫어서인지, 아니면 1인분을 시키려니 주인의 눈치가 보여서인지(팔지 안 팔지도 모르지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역시나 혼자 사는 선배 하나가 어느 날 하도 고기가 먹고 싶어서 ‘보무도 당당히’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삼겹살을 시켜먹었다는 말을 듣고 저도 ‘용기’를 냈습니다. 

한국에서의 일입니다. 며칠 전 동네 닭갈비 집엘 혼자 갔던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원래는 1인분은 안 팔지만 개시 손님이니 그냥 돌려보내기 뭣해서 먹게 해주겠다며 주인 여자가 오만 생색을 다 냅니다. 내 돈 내고 밥 먹으면서 이렇게 눈치를 보기는 또 처음입니다. ‘혼자도 설워라커늘 퇴박조차 주실까’ 하며 정철의 시조에 내 처지를 얹어 읊조리며 그나마 못 먹고 쫓겨나지 않은 것에 감지덕지하면서 주인 여자가 앉으라는 자리에 얌전히 앉았습니다. 

‘혼자 상인데도’ 기본 찬이 다 놓입니다. 당연한 일임에도 다시금 황공합니다. 숯불이 날라져 오고 불판이 놓이고 거기에 달랑 몇 점의 닭갈비가 오르자 저는 그만 주인 여자에게 아부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아졌습니다. 겨우 1인분에 더러워진 불판을 씻게 해서 미안하다고 짐짓 비굴하게 구는 순간 돌아온 주인 여자의 말은 고기 맛이 싹 가실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불판은 일회용이에요. 한 번 쓰고 버리지요. 불판 닦는 게 얼마나 번거로워요. 그 일만 하는 종업원을 따로 써야 할 정도니까. 일하는 사람 더 쓰느니 이렇게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오히려 돈이 적게 들어요. 위생적으로도 더 낫고. 그러니 1인분만 시키는 손님도 큰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는 거지.” 

저는 그만 아연했습니다. 일회용 불판 덕에 고기를 먹게 된 것이라면 시작부터 엄두도 내지 않았을 겁니다. 주인 여자가 내게 강조한 ‘위생적’이라는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이건 절대 아니라는 생각을 넘어 분노마저 일었습니다. 주방 한 편에 잔뜩 쌓여 있는 일회용 불판이 담긴 박스가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게다가 중국산이라고 인쇄된 문안을 보자 선입견 탓에 위생적이라는 말에도 선뜻 신뢰가 가질 않았습니다. 고깃집 주인으로서야 위생보다야 인건비 절감에 가치를 더 두었을 테니 애초 위생을 위해 일회용 불판이 제작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살인적 경쟁으로 몸살을 앓는 요식업계의 사활이 인건비 규모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요? 

그 많은 고깃집에서 불판을 죄다 한 번만 쓰고 버린다면 유기물 쓰레기처럼 썩는 것도 아닌 그 엄청난 화학적 폐기물이 어디에 가서 쌓일지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습니다. 재활용 처리를 한다 해도 전량이 수거될 리가 없고 그 처리 비용은 또 얼마나 막대하며 이미 극한 상황에 이른 지구 환경은 도대체 어떻게 되라는 것일까요. 

저는 카페나 푸드코트에서 제가 쓴 포크나 숟가락 등 플라스틱 용기를 집으로 가져옵니다. 카페에서 커피나 차를 마실 때도 되도록이면 머그 잔에 담아 달라고 합니다. 일회용 컵으로 마시더라도 내용물이 아주 뜨겁지 않은 한, 컵을 감싸고 있는 원통형의 종이 보호대와 플라스틱 뚜껑은 그 자리에서 벗겨 다시 돌려줍니다. 길에서 음료수나 주스를 사 마시면 그 병도 집으로 가져와 물병으로 몇 번 쓰다 버리고, 물 한 번 받아 마신 종이컵을 덥석 버릴 '용기'가 없어서 가방 속에 넣고 다니며 하루 동안이라도 사용합니다. 음식점에서 한 번 쓴 냅킨도 가능하면 이리 첩첨, 저리 첩첨 해서 한두 번 더 씁니다. 

저의 근심은 끝이 없습니다. 

비 오는 날 건물 앞에 비치되는 젖은 우산을 넣는 비닐 주머니를 보면 나중에 저걸 다 어디다 버리나 하고 걱정이 앞섭니다. 요즘은 대형 건물이나 공공장소뿐 아니라 작은 음식점에도 우산 주머니가 비치되어 있는 걸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비가 왔다 하면 하루에 억 단위의 비닐 주머니가 소모된다지요. 여기서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맨 처음 방문한 장소에서 한 장을 뺀 후 우산 손잡이에 말아 가지고 다니면서 다른 곳에 갈 때에도 재사용하는 것 뿐입니다. 한 번 뽑아낸 비닐 주머니에 젖은 우산을 다시 집어넣는 것에 얼마간 짜증이 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하고 있습니다. 

종이컵을 예로 들자면 종이컵 소비가 늘어나야 원자재 납품 업체, 컵에 무늬를 넣는 인쇄업체, 유통업체 등등이 모두 잘 돌아갈 것입니다. 취업이나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도 이 거대 연쇄고리의 한 점에 연결되길 원하는 것이며, 경기가 좋다, 나쁘다 할 때의 의미도 소비와 직결된 개념입니다. 서로 사주고 팔아주고 써주고 해야 경기가 잘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온갖 것을 다 만들고 온갖 것을 다 팔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습니다. 경기가 돌아가려면 소비가 일어나야 하지만 환경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건 너무하는구나, 이런 것까지 만들어 팔아야 하나”하는 절망적인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제가 아연실색한 일회용 고기 불판 같은 것도 그런 것 중 하나입니다. 저라면 고기를 덜 사 먹음으로써 한 번 쓰고 버리는 불판 사용을 적극 저지하겠습니다. 한동안 고기를 못 먹은 저만 여태껏 몰랐을 뿐, 일회용 불판은 고깃집에 이미 좍 깔렸는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1992년에 호주로 이민,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현재는 한국의 신문, 잡지, 방송사등과 일하며,  중앙일보, 스크린골프다이제스트, 자유칼럼그룹, 자생한방병원, 여성중앙 등에 글을 썼거나 쓰고 있다.

저서로는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자식으로 산다는 것 (공저)> 등이 있다. 

블로그 :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 
http://blog.naver.com/jinwonkyu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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