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휴대전화기에 이상이 생겨 근처 대리점을 찾았습니다. 마침 할아버지 한 분이 최신 스마트 폰을 개통하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마치 비싼 장난감을 갖게 된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십니다. 개통이 완료되자 직원 하나가 할아버지 곁에 붙어 앉습니다.

 “단단히 일러줘야 혀. 한 두 번 가르쳐 줘서 알아먹을 것 같지 않응게.”

막상 스마트 폰을 손에 쥐자 할아버지의 태도가 결연해집니다. 아니나다를까 할아버지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것에서부터 막힙니다. 카카오톡 사용법 설명으로 넘어가니 알겠다며 건성 대답을 하십니다. 일단 ‘첫 수업’은 그 정도로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시는가 싶더니, 잠시 후 득달같이 문을 열고 들어오십니다. 전화가 걸려 왔는데 받지를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 길로 막바로 ‘2교시’ 수업이 진행되었지만 할아버지의 의기양양하던 처음의 기가 한풀 꺾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스마트 폰이 신분을 말해주는 세상이니, 비용을 치를 능력만 있다면 어르신이라고 소지하지 말란 법도 없고, 아무리 기능이 복잡하고 다양하다 해도 젊은이 못지않게, 익히려 들면 못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연세에 최신 버전의 전화기를 구입한 것은 별로 잘한 선택이 아니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런 생각은 비단 연세 많은 분에게만 드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든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너무 많은 기계작동이 끼어들면 거기에 얽매이게 되고 그로 인해 본성을 해치게 되어 삶이 피폐해지기 때문입니다. 
 장자 ‘천지편’에는 이런 우화가 나옵니다. 

   어느 노인이 밭에 물을 주느라 끙끙거리며 애를 쓰지만 도무지 효율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자 보다 못한 한 젊은이가 “ 여기 기계가 있는데 한번 써 보시지요. 별로 힘들이지 않고 하루에 백 이랑의 밭에 물을 줄 수 있지요.”라고 권합니다.

 “어떻게 사용하는 거요?”

 “이른바 두레박이라는 건데 나무에 구멍을 뚫어 만든 물 긷는 기계이지요. 이것으로 우물의 물을 끌어 올리면 그 빠르기가 마치 물이 끓어 넘치는 것 같습니다.”

 “ 예끼, 이 사람. 내가 소싯적에 스승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소. 기계가 있으면 그것을 쓰는 일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되면 반드시 기계에 사로잡히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법이라고. 기계에 사로잡히면 순진하고 결백한 본래의 마음이 없어지게 되어 뭔가를 꾀하게 되고 그런 순수하지 못한 마음으로 인해 정서가 불안해진다고 했소. 그러면서 스승은 정신과 본성이 들뜨고 정서가 안정되지 못한 사람에게는 도가 깃들지 않는 법이라 하셨소. 내가 두레박을 모르는 게 아니라 도를 거스르는 게 부끄러워서 쓰지 않을 뿐이오.” 

그 말을 들은 젊은이는 자신의 경솔함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얘기인데, 기계라고 할 것도 없었을 2,500년 전에, 기껏 두레박을 두고 기계 운운한 것에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현대 사회에 적용해 보자면 무엇보다 자동차나 컴퓨터, 스마트 폰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자동차가 발명되었기 때문에 자동차를 타게 되고 컴퓨터가 있으니 거기에 의존하지 않고는 도무지 무슨 일을 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무엇보다 스마트 폰의 편리성으로 인해 외울 수 있는 전화번호가 자기 것 하나밖에 없다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니 이것이 바로 장자가 말한 기계 의존심이 아니고 무엇인가요? 우화 속 노인처럼 도를 거스를까 두려워하기는 고사하고 일상생활에서조차 바보가 되어가는 지경이랄 밖에요. 예를 들자면 한이 없지만 자동차에 장착된 내비게이션 탓에 이른바 ‘길치’가 태반이고 노래방 기기로 인해 외울 수 있는 노랫말이 하나도 없다며 하소연을 하는 사람도 주위에서 흔히 봅니다. 

최신형 스마트 폰을 장만하신 그 어르신도 이제 비슷한 경험을 하시지 싶습니다. 어르신은 대리점 직원의 도움을 받아 가까운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외워서’ 입력시키셨는데, 이미 기심(機心)에 사로잡혀 사는 제게는 지인의 전화번호를 외울 수 있다는 사실이 그분만의 놀라운 능력처럼 경이롭게 비쳐졌습니다. 하지만 그 어르신 역시 스마트 폰에 익숙해질수록 외울 수 있는 전화번호를 기억 속에서 줄여갈 것입니다. 

신아연 shinayoun@daum.net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1992년에 호주로 이민,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현재는 한국의 신문, 잡지, 방송사등과 일하며,  중앙일보, 스크린골프다이제스트, 자유칼럼그룹, 자생한방병원, 여성중앙 등에 글을 썼거나 쓰고 있다.

저서로는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자식으로 산다는 것 (공저)> 등이 있다. 

블로그 :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 
http://blog.naver.com/jinwonkyu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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