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하나를 사면 갖고 있던 것 중에서 하나나 둘은 버린다’는 원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더 이상 소유물을 늘리지 않을 방도를 일단 세운 다음에 차츰차츰 소유욕 자체를 꺾겠다는 것이 저의 여생의 전략입니다. 그리하여 바라옵기는 지난 2008년에 타계한 박경리 선생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가 죽음 앞에서 나의 묘비명이 될 수 있기를! 
물론 박 작가가 말한 ‘버리고 갈 것’이 물질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건 압니다. 그러나 무엇을 버렸건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이라는 그의 시구가 ‘나의 노래’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은 물질적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연습해야겠다는 거지요. 중년은 그러한 연습을 시작하기에 딱 좋은 나이인데다, 나아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누구나 적극적으로 훈련해야 하는 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은퇴나 실직 등으로 벌이가 전만 못해서, 상황이 상황인지라 하는 수 없이 덜 쓰는 소극적 자세가 아닌, 돈이 있건 없건 이제는 물질로부터 초연해지겠다는 적극적 삶의 태도를 가졌으면 하는 거지요. 

예전 경남 쪽 방언은 ‘돈을 벌다’와 ‘돈을 버리다’가 같은 뜻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디 갔다 왔니?” 하고 누가 물을 때 “돈 벌러 갔다 왔다.”고 하는 대신에 “돈 버리러 갔다 왔다.”라고 한다네요. ‘버리러’는 ‘벌이 하러’의 줄임 말이지만, 속 뜻을 가만히 짚어보면 애써 돈을 ‘벌어서’ 뭔가를 사들인 후, 잠시 소유하고 있다가 언젠가는 그것을 ‘버리게’ 되니, 돈을 버는 것이 결국 버리는 행위와 다를 바 없지 않나요? 생각할수록 함축적 묘미가 엿보이는 방언입니다.  

오래 전 호주 노인요양시설에서 6개월 정도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한 달에도 몇 번씩 장례 치를 일이 생기곤 했는데, 돌아가신 분이 생전에 소유를 즐겼던 분일수록 자질구레한 소지품을 많이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기 마련입니다. 이제 물건에 집착하지 않는 것으로, 뭐든 버리기 딱 좋은 나이의 중년을 살기로 결심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소유에 마음이 매일 때면 ‘시설’에서 일할 때의 느낌을 거울 삼아 비추어 보곤 합니다.  

“살아서는 나가지 못할 곳, 유명을 달리할 회색 지대, 이승과 저승의 환승역 같은 공간 안에서도 평생 살아온 습관대로 시간을 이어가는 것이다. 걸머졌던 자질구레한 것들을 종당엔 몸 비늘처럼 부려놓은 채 세상을 떠날지라도. 누구에게나 자기 방식대로 살 권리가 있고 죽는 날까지 재밋거리가 있어야 하지만 사후에 너무 많은 것을 남겨두는 것은 별로 달가워 보이지 않는다. 돈과 단순 교환했을 뿐인 사연 없는 물건들은 물론이거니와, 정신적 가치가 담긴 것들조차도 거추장스럽긴 마찬가지다.

 ‘시설’에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직원들의 평가는 두 갈래다. 사후에 치다꺼리할 게 적으면 ‘고마운 분’, 잡다하게 처리할 것을 많이 남겨두고 가시면 ‘성가신 분’이다. 어찌 양로원의 일이기만 할까. 오늘 내 죽음을 만나지 말란 법이 없는데 너무 산만하고 잡다하게 이것저것 가지고 있다면 그걸 정리해야 하는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신세 지기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태어날 때와 죽을 때 만큼은 남의 손에 의지해야 하니 너무 많은 것을 두고 떠나지 말 일이다. 돈도 되지 못하는 것들, 더구나 죽은 자의 것은 소유하기를 꺼리는 우리 문화에서는 거의 모두 버릴 것들인 바에야.

물질이 흔하고 뭔가를 사들이는 것이 중독 현상처럼 된 요즘 사회에서 모르긴 해도 집집마다 물건이 넘쳐날텐데 오늘 내가 죽는다면 그걸 누가 다 치운단 말인가.

나는 검박하고 단출하게 사는 편에 속하지만 치워야 하는 입장에서는 여전히 얼마나 일이 많겠나 싶고, 그가 만약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없앨 게 많을수록 마음은 또 얼마나 아릴까 싶다.”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1992년에 호주로 이민,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현재는 한국의 신문, 잡지, 방송사등과 일하며,  중앙일보, 스크린골프다이제스트, 자유칼럼그룹, 자생한방병원, 여성중앙 등에 글을 썼거나 쓰고 있다.

저서로는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자식으로 산다는 것 (공저)> 등이 있다. 

블로그 :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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