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다녀온 교민이라면 누구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커피 맛이 왜 그 모양이냐?”는 것인데, 입맛 까다롭기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국 사람들이 어째서 커피 맛이 그 지경인데도 아무 불평이 없을까? 하고 의아해 합니다. 그러면서 “맛대가리 없는 커피가 값은 또 ‘우라지게’ 비싸다”는 말을 반드시 덧붙입니다. 

 하기사 저도 ‘한국의 커피’에 그 사람들처럼 똑 같이 세 번 놀랐습니다. 첫째는 저 역시도 너무나 비싼 값에, 둘째는 형편없는 커피 맛에, 세 번 째는 그럼에도 전혀 타박을 않는 한국인들의 너그러움에 놀랐던 것이죠. 아니, 솔직히는 네 번 놀랐다고 해야겠습니다. 단아하고 깔끔한 고급스러움을 지나쳐 사치의 극에 달한 커피숍이나 카페의 인테리어와 규모에 말입니다.

기왕 놀란 김에 다섯 번을 채워 놀라야겠습니다. 그런 호화찬란한 실내장식을 가진 숍에서 그런 ‘말도 안 되고 맛도 안 되는’ 커피를 내 놓을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매치가 안 된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라게 됩니다. 마치 미스코리아의 외모를 가진 여자가 천박하기 그지 없는 언행을 보일 때의 충격이랄까요? 내면의 향기를 전혀 갖지 못한 사람을 볼 때의 당혹과 실망과 나아가 비애감이라 할지. 

겨우 커피 맛 하나를 가지고 이죽거림이 너무 심하다 할지 모르지만 심한 건 내가 아니라 ‘커피 맛’이라는 것을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한 가지 이해한다면 한국의 비싼 커피 값은 ‘자리 값’ 탓이라는 점입니다. 주인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카페를 사무실 삼아, 독서실 삼아 온종일 죽치고 앉아 있는 판에 커피 한 잔 값이라도 확실히 받아야 하지 않겠나 싶은 거지요. 그런 까닭에 자판기 앞과 다름없이 줄 서서 주문하고 줄 서서 받아오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불만이 없고, 정식 커피 잔이 아닌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에도 그러려니 할 수 밖에 없나 봅니다. 도무지 가격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서비스건만 아무도 타박을 않는 이유를 저 나름대로는 그렇게 생각해 보는 거지요.  

다 좋은데 말입니다, 아무리 양보해도 엉망인 커피 맛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스타벅스 등 세계적 프랜차이즈 커피 점일수록 커피 맛에는 아랑곳 없다는 점에 분개심 마저 입니다.  

장황하게 커피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한국 사람들의 유별난 유명 브랜드 선호 풍토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커피점이든, 빵집이든, 편의점이든, 심지어 닭 튀김 하나를 사 먹으면서도 프랜차이즈 점포를 선호하는 쏠림 현상이 요즘처럼 심한 때가 없었으니까요. 커피도, 빵도, 닭도 남들이 알아주는 ‘화려한 스펙’이 있어야 한다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 다소 과장된 면과 한 쪽 말만 듣는 형국이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프랜차이즈에 대한 프랜차이저의 횡포가 도를 넘어서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런 마당에 소비자들은 이른 바 ‘이름없는’ 곳에는 눈길도 주지 않으니 동네 구멍가게, 동네 빵집 등 동네 상권이 다 죽는다고 말로만 걱정할 뿐, 정작 본인들은 유명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브랜드 있는’ 빵집만 가지 않냔 말이지요. 이러니 울며 겨자 먹기로 ‘노예 계약’이라 불리는 프랜차이즈 형태의 창업을 하게 되고 그 결과는 대부분 별로 좋지 않을 수 밖에 없겠지요. 

프랜차이즈 커피 점을 운영하는 지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달이 빠져 나가는 프랜차이즈 비용, 임대료, 인건비까지 모두들 내 몸에 빨대를 꽂고 피를 쫙쫙 빠는 것 같다고. 그분의 고통스러운 표현이 제게는 섬뜩하고 섬찟한 신음으로 들렸습니다. 요즘처럼 중년의 가장들이 어쩔 수 없어 떠밀리다시피 자영업자가 되어야 하는 현실에서 이 문제는 보통 딱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장사가 안 되면 괴로운 것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잘 되도 계약 연장이 어려워 일껏 고생만 하고 쫓겨나는 것이 다반사라고 하지요. 그쪽 생리가 그렇게 ‘생겨 먹었다’는 게 중론입니다. 
내실보다는 겉치레나 외형, 브랜드에 치중하고 집착하는 소비 패턴을 돌아보지 않는 한 제한된 자본으로 생업 전선에 뛰어든 자영업자들의 입지는 점점 위태롭고 옹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에 관한 한 상황은 호주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으니 겨울을 맞아 스산하고 고달픈 현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1992년에 호주로 이민,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현재는 한국의 신문, 잡지, 방송사등과 일하며,  중앙일보, 스크린골프다이제스트, 자유칼럼그룹, 자생한방병원, 여성중앙 등에 글을 썼거나 쓰고 있다.

저서로는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자식으로 산다는 것 (공저)> 등이 있다. 

블로그 :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 
http://blog.naver.com/jinwonkyu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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