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설을 쓰면서 자주 표절을 했다는 신경숙 씨로 인해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신씨만 표절을 했을까, 우리는 그러지 않았을까, 어쩌면 남의 것을 통째로 베껴 놓고는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아니, 내가 언제 글을 썼다고, 소설은커녕 일기 한 줄도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베끼긴 뭘 베껴? 라며 의아해 하실 테지만, 글 몇 줄 훔친 것보다 더 심각한 표절은 인생 자체를 바꿔 치기 한 것 같다는 느낌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도무지 내 인생을 산 것 같지가 않고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준 느낌, 남의 기준에 맞춰 사느라, 남들처럼 사느라, 남의 옷인 줄도 모르고 평생 껴입고 다니며 때로는 원래 내 것인 양, 때로는 불편하기 짝이 없어 당장 벗어 던지고 싶었던 순간들, 내가 가고 싶었던 길, 그래서 지금이라도 되돌아 가고 싶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간절함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 그것이 곧 ‘표절 인생’을 사는 증표이자 비애가 아닌가 하고 돌아보게 됩니다. 

본인은 표절했다는 의식도 없었는데, 독자들에게 추궁을 당하자 뒤미처 ‘표절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며 딴청을 피운 신씨처럼 우리도 삶의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나서야 ‘아차, 내가 잘못 살았구나. 제대로 살았어야 해.’하고 후회나 회한, 자책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21년 간 호주에서 살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엊그제로 4년째 접어듭니다. 1992년 7월에 떠났던 이민 길을 되돌아 2013년 8월에 다시 원점에 서서 제 자신의 좌표를 돌아봅니다. 3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까지, 인생의 가운데 토막 같은 한창 나이를 이민생활로 보냈지만 ‘한 송이 국화꽃’도 피우지 못한 채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을 돌아 낯선 ‘거울 앞에’ 중년 아지매로 섰습니다. 

하지만 속칭 ‘돌싱’이 되어 ‘독거 중년’이 된 지금, 저는 비로소 제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사는 느낌입니다. 이른바 ‘범생’이었던 학창시절, 남들 정도는 공부를 했고, 남들 하는 시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사고, 가족을 건사하면서 남편을 도와 가게도 꾸리며 그렇게 살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남들처럼’ 혹은 ‘남부러울 만큼’ ‘남부럽지 않게’, 그것이 삶의 모토라는 것을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관성처럼, 타성처럼 그렇게 ‘살아졌고’ 그것이 행복인 줄 알았습니다. 일련의 수순처럼 노후도 평탄하게 맞이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그것은 표절인생이었다는 것을. 다는 아니었다 해도 표절의 요소가 있었다는 것을. 중년에 맥없이 꺾인 제 삶이 저를 다그치기 시작하자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산 것이 잘못된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표절이라면 표절일 수도 있겠다’며 신씨의 변명을 ‘표절’하여 제 변명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생의 묘미는 이 시점에서 찾아왔습니다. 위기(危機)라는 말 속에 기회(機會)가 이미 내포되어 있듯이, 넘어진 그 자리가 바로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지점이라는 것, 경험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무엇보다 ‘표절 끝, 창작 시작’이란 새로운 깃대를 꽂기에 가장 적합한 순간이라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가족도, 돈도, 명예도 모든 것을 다 잃은 자리에서 지난 상처들을 거름으로 삼아 내 인생의 서사를, 표절이 아닌 창작 인생을 비로소 써 내려가는 비장함이라니…  

혹여 내 인생이 연전연패(連戰連敗)라고 생각하고 계시나요? 저는 얼마 전까지 그런 생각을 했드랬는데 ‘연전연패’를 ‘연패연전’이라는 말로 바꿔 생각해 보라고 지인이 격려하더군요. 글자의 순서를 바꿔 놓으니, ‘싸울 때마다 지는 것이 아니라, 질 때마다 싸운다.’, 즉 또 지더라도 굴하지 않고 계속 싸우는 불굴의 의지를 다지게 되더라는 거지요.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 모두는 죽을 때까지 연패연전할 뿐입니다. 현재 어떤 환경, 어떤 위기에 처해있을지라도 말입니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1992년에 호주로 이민,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현재는 한국의 신문, 잡지, 방송사등과 일하며,  중앙일보, 스크린골프다이제스트, 자유칼럼그룹, 자생한방병원, 여성중앙 등에 글을 썼거나 쓰고 있다.

저서로는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자식으로 산다는 것 (공저)> 등이 있다. 

블로그 :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 
http://blog.naver.com/jinwonkyu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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