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로 집권 1주년을 맞은 말콤 턴불 총리는 사실상 ‘사면초가’ 상황에 놓여 있다. 14일 발표한 내년 2월 11일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국민투표(plebiscite) 시행안 상정 계획, 시급한 당면 과제인 예산적자 감축, 글로벌 기후 온난화정책, 경제(세제) 개혁, 강경 국경보호정책 유지 여부와 인도주의 원칙 강화 등 난제가 쌓여 있다. 

집권 1주년을 맞아 호주 언론 대부분이 턴불 정부의 업적보다 실책을 집중 조명하는 분위기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정부(do-nothing government)’라는 수치스런 표현마저 등장하고 있다. 그나마 25년 연속 경제 성장을 이룩한 거시 경제 지표가 겨우 체면을 살렸다.  집권 자유-국민 연립 여당내 강경 보수파의 내부 불만과 지지부진한 성과에 대한 외부의 불만족이 위험 수위에 다다르고 있다.  

지난주 토니 애봇 전 총리가 방송 대담을 통해 공개적으로 턴불 총리의 결정을 비판한 것은 내부 불만의 대표적인 사례다. ABC 방송(포코너즈)을 통해 노던테리토리 준주 소년원의 재소자 가혹행위가 폭로된 직후, 턴불 총리가 의회 특검(로얄커미션) 발족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애봇은 ‘매우 경솔한 결정’이었다고 비난하면서 “정부는 미디어의 센세이셔날한 보도에 신중하고 의연하게 대처해야한다”고 훈수를 두었다. 애봇의 이같은 공개 비판은 새 의회에서 턴불 총리의 실책에 대해 공세를 취하겠다는 보수파의 간접적인 신호탄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턴불 총리가 지난해 9월 토니 애봇 총리를 당내 표 대결로 퇴출시켰을 때, 가장 큰 질문은 “신임 총리가 이 기회와 권한을 갖고 무슨 계획을 추진할까?”였다. 동성결혼 합법화와 지구온난화 대응 방안으로부터 경제 개혁과 강경 국경보호정책(난민정책) 완화 등 주요 이슈에 대해 많은 턴불 지지자들은 조기 행동을 예상했지만 턴불 총리가 애봇 전임 총리의 정책을 거의 대부분 답습하는 것을 보면서 턴불 지지자들은 강한 실망감을 나타냈다. 이 실망감은 지난 총선에서 형편없는 지지율로 나타났고 턴불 총리는 어렵게 재집권에 성공했다.

턴불 총리가 주요 정책에서 종전의 목소리(소신)를 내지 못한 이유는 자유당내 각료들과 평의원들 중 보수파의 지지를 얻기 위함이다. 이 지지 없이 당권 장악이 불가능했기에 보수파의 요구(절충안)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요구안의 첫 번째가 이번 주 발표한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국민투표 시행안 상정이다. 
그러나 첫 제안부터 상원에서 노동당과 녹색당, 닉 제노폰팀(3명), 무소속의 데린 힌치 의원이 반대할 것으로 예상돼 부결 가능성이 높다. 노동당은 국민투표가 아닌 의회 표결(의원 양심 투표, conscience vote)을 통해 찬반을 결정짓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 국민투표에서 찬반 논쟁을 빌미로 성적소수자 증오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과 정부의 높은 비용 부담이 주요 반대 이유다. 
관련 비용은 약 1억6천만 달러로 추산된다. 정부는 1500만 달러의 찬반 캠페인('yes' and 'no' campaigns)으로 찬성 및 반대 주장 홍보에 각각 750만 달러를 배정하고 관리/감독을 할 계획을 밝혔다. 너무 큰 비용이라는 지적에 턴불 총리는 “이는 민주주의 비용(the price of democracy)이다. 노동당이 국민들의 선의를 평가 절하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지 브랜디스 법무장관은 빌 쇼튼 야당대표에게 “동성커플의 결혼 합법화를 확실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국민투표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야당에게 국민투표 시행안 찬성을 촉구했다. 브랜디스 장관은 “모든 여론조사에서 동성결혼 찬성투표가 승리할 것으로 우세하다”면서 “쇼튼 야당대표가 정치적 게임을 중단하고 국민투표안을 지지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쇼튼은 3주 후 열릴 노동당 당무위원회의(caucus)에 이 아젠다를 상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국민투표안 반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쇼튼 야당대표는 “턴불이 당권을 장악하면서 자유당 강경 보수파에게 동의한 조건 중 하나가 토니 애봇 전 총리가 제안한 국민투표안이었다. 자유당 강성 우파가 동성결혼 국민투표안을 부결시키려는 복안으로 이를 요구했고 턴불은 총리직을 차지하기 위해 이를 수용했다”라고 비난했다.
 
만약 현재의 예상대로 상원에서 야권이 반대할 경우, 국민투표안은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상정안이 상원에서 부결되면 호주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는 현재처럼 불가 상황이 최소 3년 동안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의회 표결 방식은 노동당이 다음 총선에서 승리해야만 가능하다.  
동성결혼이 국민투표를 통해 합법화되려면 사실 3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째 국민투표 시행안이 상하 양원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통과되면 2월 11일 국민투표에서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국민투표 가결 후, 다시 의회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입법안(합법화안)이 통과되어야 한다. 현재는 국민투표에서 통과된 것을 의원들이 반대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야권에서는 자유당내 강경 보수파가 이런 복잡한 절차를 내세워 야권으로 하여금 국민투표 시행안 부결을 유도하고 차기 총선에서 연립의 승리로 의회투표도 연기 내지는 부결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동성결혼 아젠다는 정치 이슈 이전에 사회 규범과 인권 문제의 특성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정략적인 접근보다 후자의 위치에서 호주 국민들의 민의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민주적인 결론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동성결혼 국민투표안이 의회에서 충분히 논의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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