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 학비보조(VET FEE-HELP) 파문은 호주 정부의 대표적인 교육정책 실패 사례로 꼽힌다. 5일(수) 사이몬 버밍햄 연방 교육장관이 마침내 내년 초부터 제도를 개혁할 것이라고 발표하며 개혁안을 제시했다. 처음으로 문제를 공식 제기한 뒤 거의 2년이 지난 늑장 대응을 한 모양새다. 

가장 골칫거리는 코스를 개설한 엉터리 사설 학원이 수강 능력이 사실상 없음을 잘 알면서도 마구잡이식으로 수강생(시민권자/영주권자)을 모집해 정부로부터 1만5천 달러~2만 달러 사이의 학비를 받아 챙긴 것이다. 학원들은 수강생 모집을 위해 브로커(모집책)를 동원하기도 한다. 브로커에게 약 5천 달러의 소개비를 지급한다. 브로커는 학생들을 모집하는 미끼로 태블릿 PC나 랩톱 등을 무료로 제공하며 수강 신청서를 내밀고 서명을 받아간다. 

서명을 한 학생 중 코스를 수료하는 사례는 소수에 불과하고 다수가 코스를 중단한다. 코스 수료 여부와 상관없이 정부가 학원에 지불한 학비는 전문대 학비 융자(VET FEE-HELP) 형태로 학생들의 채무가 된다, 연간 5만4천 달러 이상의 소득을 벌면 세금 공제 때 학비를 분할 상환해야 한다.    

당초 VET FEE-HELP는 전문대(TAFE)에서 디플로마 및 디플로마 고급 학위(diplomas and advanced diplomas) 과정을 이수하는 학생들에게 대학 학비 융자제도(HECS-type loan scheme)와 비슷한 혜택을 주기 위해 시작됐다.  
정부가 교육기관에 학비를 먼저 납부하며 학생은 졸업 후 현재 연소득 5만4천 달러를 넘는 경우, 세금에 추가해 납부하는 방식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비양심적 교육기관이 제도의 맹점을 악용했고 사실상 이를 방치했다가 문제가 커졌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받은 학생들도 문제였지만 비양심적인 사설 교육기관 소유주들이 허술한 법망의 허점을 이용한 것은 더욱 심각했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 취약 지역에 거주하는 실직 청소년들 또는 장애인 학생들까지 부추겨 학원 등록을 권유했고 쇼핑센터 부스를 통한 마케팅, 기차역 앞에서 홍보물 배포 등 등록만하면 자격증과 일자리를 약속한다고 무차별 홍보를 전개했다. 학생들에게는 부담 없이 등록신청서에 서명을 하면 랩톱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상술도 동원됐다.  
코스를 이수할 자격 또는 의향이 없는 젊은 학생들에게 서명을 하도록 했다. 일부 원주민 커뮤니티까지 겨냥했다. 그런 한편, 학생들에게 학비 채무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시키지 않았다. 

학생이 일단 등록을 하면 사설 학원들은 정부로부터 학비를 챙겼고 해당 부채는 학생들이 언젠가 상환해야 할 빚으로 남았다. 학비 상한선도 없었다. 디플로마 학위 학비가 급증했다. 디플로마 코스를 수료한 졸업생들 다수의 소득은 상환을 할 정도가 되지 못해 결과적으로 납세자들의 부담이 된다. 일부 학생들은 코스에는 관심이 없고 아이패드나 랩톱을 받기 위해 등록을 한 사례도 보고됐다.   

이 제도를 통해 교육브로커 시장이 활짝 열렸다. 이들은 높은 커미션을 받으면서 학생들의 서명을 유도하고 사설 학원에 관련 자료를 넘긴다. 교육의 질이 양호한 사설 학원들도 브로커를 이용하도록 압력을 받았다.  

왜 현 정부가 문제를 조기 발견 못했을까? 전임 노동당 정부(줄리아 길러드 총리 시절)가 이 제도를 시행했는데 연립은 2013년 집권 이후 제도를 개혁하지 못했다. 
예산처의 관련 부담이 2012년 3억2500만 달러에서 2014년 18억 달러, 2015년 29억 달러로 폭등하자 정부가 늑장 대응에 나섰다.  

버밍햄 교육 장관은 지난 2014년말 애봇 정부 취임 직후 교육부차관 재임 때 문제를 제기했었지만 개혁안을 내놓는데 거의 2년이 걸렸다.

왜 이리 오래 걸렸는지에 대해서 정부가 “2백여 개의 사설 칼리지와 TAFE가 VET FEE-HELP 등록을 했고 다수는 문제가 없었다”는 판단을 하며 안일했다고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호주의 초중고교 과정에는 약 30%를 가톨릭 학교가 차지한다. 가톨릭 재단의 공교육 참여는 100년 이상의 전통이 있다. 정부가 미처 다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을 맡기 때문에 그에 필요한 지원금을 받고 있다. 현재 너무 많은 예산이 돈이 많은 명문사립에 집중되는 반면 공립은 지원이 부족하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버밍햄 교육장관도 일정 부분 이에 동의한다.  
초중고교 교육 분야에서 가톨릭과 사립에 대한 지원과 동시에 감독을 하는 것이 교육부의 역할이다. 이같은 감독 기능이 전문대 학비 보조를 받는 사설 학원에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 잃고 오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이제라도 철저한 감독과 지원을 해야 한다. 사립 교육계의 질적 저하는 호주 전체 교육 산업과 유학 시장의 이미지와도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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