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내 사전에는 어머니란 자리가 비었다”
 
고승주 시인의 시집 <<가을경전읽기>>에 수록된 시 <사전에서 사라진 단어>의 첫 구절입니다.
 
“이제 어머니를 부르는 일은
멸종된 도도새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큼이나 막막하다”
 
시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가을이 깊어감으로 시심(詩心)이 부추겨진 것은 아닙니다. 지난 9월에 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심과 동시에 어머니의 이름마저 홀연히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표현대로 멸종된 도도새의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시는 그런 제 마음을  대신 말해 주었던 것입니다. 물론 시인은 어머니의 존재 부재를 애달파하고 있지만요.
 
‘顯妣孺人仁同張氏 神位(현비유인 인동장씨 신위)’
 
어머니의 위패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현비’란 돌아가신  어머니를 뜻하며, ‘유인’은 생전에 벼슬하지 못한 사람의 아내에게 사후 붙여주는 경칭입니다. 하지만 원래는 지금의 9급 공무원 정도에 해당되는 조선시대 정ㆍ종9품 문무관의 아내에게 쓰던 존칭이지요. 요즘 말로 하자면 ‘여사’ 정도가 될 테지요. 그러니까 ‘현비유인 인동장씨 신위’란 ‘돌아가신 어머니 인동 장 여사 혼령을 모시다’ 이런 의미라 하겠습니다.
 
이처럼 위패에는 ‘인동 장씨’라고만 표기되어 있을 뿐 어머니의 이름이 없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죽고 나서 이름 자체가 증발해 버리는데 무슨 이름을 어떻게 남길 수 있을까요? 도종환의 시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에는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 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라는 구절이 나오지만 차라리 옷은 못 해 줄망정 살아 평생 불리던 이름은 왜 빼앗아 간단 말인가요? 제 어머니뿐 아니라 조선시대 이래 모든 어머니들이 돌아가시면서 이름을 잃고 '멸종된 도도새'로 화(化)합니다. 존재가 떠나간 자리에 이름마저 떠나니 여자는 두 번 죽는다고 할까요?
 
물론 전통적 유교사회에서 아명 말고는 여자가 정식으로 이름을 가진 예가 거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일반 백성뿐 아니라 사대부나 귀족 계층의 여성들조차 이름이 없거나 안 알려진 경우가 허다하지요. 실옥이란 이름을 쓰던 인현왕후, 민자영(명성황후), 초희(허난설헌), 옥정(장희빈), 인선(신사임당) 정도가 당장 생각나지만 실은 그조차 정확한 게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니 제 아무리 잘났다 해도 여성은 그저 이런 식으로 알려집니다.
   
“안동 장씨(張氏, 1598~1680)는 퇴계의 학통을 전수받은 당대 영남의 거유(巨儒)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1564~1633)의 외동딸로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1590~1674)의 부인이며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 1619~1672)의 어머니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흘러, 같은 묘지에 제 어머니와 성이 같은 인동 장씨 묘가 두 개 이상 들어서지 말란 법이 없고, 묘비에 새긴 글자가 흐려져서 역시 같은 묘지에 잠들어 있는 안동 장씨와 혼동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지 않겠습니까. 망자를 뵌 적이 없는 후손들일수록, 아랫대로 내려갈수록 훗날 조상의 묘를 찾는 데 큰 혼란을 겪을 것입니다.
 
어머니뿐만이 아니라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顯考學生府君 神位(현고학생부군 신위)’
 
생전에 벼슬 한 자리 못하고, 배우지 못한 한을 죽은 후 마치 옷 한 벌 해 입혀 풀어주고자 하는 것처럼 관직명과 학생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교 문화의 전통을 거두고 생각해 보면 무척 엉뚱한 발상입니다. 국민들의 학력 수준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요즘 세상에는 학사는 기본이고 석박사도 수두룩합니다. 
 
또한 반드시 벼슬을 해야만 자아실현과 삶의 가치를 구현하며 이른바 출세를 하는 세상이 더 이상 아닌 것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기업인, 의료인, 언론인, 문화 예술인, 스포츠인 심지어 연예인까지 사회적 인식이나 가치관 면에서 벼슬아치에 버금가는, 능가하는 대우와 자부심을 심는 전문직과 직종은 많고도 많습니다. 그러니 기왕 고인에게 예를 갖추기 위한 것이라면 생전에 하던 일과 연관된 직함으로 기록해야 마땅합니다. 그런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자는 맹목적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를 기리는 유교적 전통의 맥락을 살리되 현대에 맞게 변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엄격한 유교사회에서는 부모를 비롯하여 조상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면 현대 사회는 조상들의 이름을 익히고 기억하는 것이 공경과 효심을 표현하는 길입니다. 또한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뜻도 모르기 십상인 한자 지방 대신 한글로 바꾸는 것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합니다.
 
저는 내년, 어머니 첫 기제사 지방 지에 ‘顯妣孺人仁同張氏 神位’ 대신 ‘돌아가신 어머니 장복환 님을 기리어 모심’ 이라고 써서 어머니의 이름을 되찾아 드리고 싶습니다. 생전의 어머니는 남자 이름 같다며 당신의 이름을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그래서 위패나 묘비에 드러내기 원치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1992년에 호주로 이민,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현재는 한국의 신문, 잡지, 방송사등과 일하며,  중앙일보, 스크린골프다이제스트, 자유칼럼그룹, 자생한방병원, 여성중앙 등에 글을 썼거나 쓰고 있다.

저서로는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자식으로 산다는 것 (공저)> 등이 있다. 

블로그 :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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