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다니는 동네 길목 한 귀퉁이에 우동집이 새로 생겼습니다. 노란색 외관이 눈에 뜨인 것 말고 제가 우동을 좋아하니까 그 가게가 눈에 들어온 것이지, 그 전에는 뭘 하던 집인지 무심코 오갔을 뿐 기억에도 없습니다. 마치 양옆의 다른 두 가게 사이에 ‘틈’을 내어 비집고 들어선 것처럼 아주 작은 공간인 데다 같은 장소에서 폐업과 개업을 번갈아 하는 통에 그 전에는 뭘 하던 곳인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곳뿐 아니라 있던 가게가 사라지고 다른 상호가 적힌 간판이 새로 올라가는 것을 수시로 보게 되지만 그때마다 ‘전에는 뭘 하던 곳이었지?’ 하고 기억을 되짚어봐도 도무지 생각이 안 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되는 장사는 ‘간판 만드는 것과 명함 찍는 일, 그리고 인테리어업’ 이 세 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도 멀쩡한 간판을 내리고, 또 다른 간판이 올라가고 하는 일이 다반사인 데다 그렇게 개점이나 폐점, 업종 변경을 하면 당연히 명함도 새로 만들고 실내 장식도 새로 해야 하니 말입니다. 

식당뿐 아니라 일반 상점들도 한 집이 간판을 내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옆 가게가 폐점 세일에 들어가고, 며칠 후 그 옆집은 아무 사인도 없이 덜컥 장사를 그만둡니다. 한 밤 자고 나면 하나씩 사라지는 점포들을 볼 때마다 폐업을 결정하기까지 피를 말렸을 주인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버틸 때까지 버텼으나 더는 어쩌지 못한 자괴감과 함께 한숨 어린 불멸의 밤이 숱하게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황량히 비어버린 ‘그 집 앞’을 얼마간 지나다니다, 무작정 날아든 불나방처럼, 휘황한 집어등에 유인된 오징어처럼 덜컥 새 입주자가 들어선 것을 보게 됩니다. 분명히 망해 나갔음에도, 사람 심리란 게 다른 사람은 다 안 돼도 나는 될 것 같아서인지, 아니면 배운 도둑질이라 울며 겨자 먹기 식인지 여하튼 점포는 하나둘 다시 메워집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의 멀쩡한 실내를 뜯었다 붙였다, 좌판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합니다. 아무 상관 없는 사람조차 심란한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심지어 어떤 집은 가게를 접은 그 자리로 다시 돌아와 장사를 다시 하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닭 집-카페- 다시 그 닭 집’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만만하기란 자영업자만 한 것이 없다고 할지, 동네 상권을 장악하고 들어오는 대기업의 횡포가 투전판의 ‘싹쓸이’를 방불케 하기는 호주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습니다. 마트 형태의 대형 유통업체가 동네에 들어서면 소형 슈퍼마켓이나 구멍 가게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고, 장사가 좀 된다 싶은 곳은 임대료가 가히 살인적이니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진다’는 말을 그대로 체험합니다. 그런가 하면 생계형 자영업자들 대부분이 초기 투자금을 들이고 나면 막상 운영 자금에는 여유가 없기 때문에 부부나 가족들이 온종일 들러붙어 뼈 빠지게 일해 각자 인건비라도 나오면 다행이라고 여깁니다. 

영어권 국가에서 회자되는 “만약 지옥을 통과하는 중이라면 멈추지 말고 계속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명언에 대해 <나를 깨우는 서늘한 말>의 저자 노재현 씨는 “당신이 지금 끔찍한 고통과 공포, 비명으로 가득한 지옥을 걷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벗어날 수도, 그대로 주저앉을 수도 없다. 유일한 방법은 묵묵히 걷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 계속 걷는다. 자포자기해도, 패닉에 빠져 날뛰어도 안 된다. 살다 보면 드물게 이런 상황을 만난다. 적지 않은 이들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술이나 도박, 때론 다른 도피처를 찾는다. 그러나 도피가 해결책이 아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출구가 보이기 마련이다” 라고 주를 달아 주었습니다. 가슴에 와 닿습니다. 

부디 새로 간판을 올린 우동집이 장수를 상징하는 면발을 닮아 오래오래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 운영을 해 나가다 지옥을 만나더라도 주저앉지 말고, 자포자기하지 말고, 패닉에 빠지지도 말고 출구를 찾아 묵묵히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1992년에 호주로 이민,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현재는 한국의 신문, 잡지, 방송사등과 일하며,  중앙일보, 스크린골프다이제스트, 자유칼럼그룹, 자생한방병원, 여성중앙 등에 글을 썼거나 쓰고 있다.

저서로는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자식으로 산다는 것 (공저)> 등이 있다. 

블로그 :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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