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지난 2016년 12월 15일자(금) 한호일보에 실린 한상대 씨의 기고문 ‘탄핵과 마녀사냥’을 읽고, 정말 무겁고 참담한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냥 다른 생각이겠거니 하고 넘어가기엔… 첫째, 그 내용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고, 둘째, 아무런 대응이 없으면 호주 교민사회가 암묵적으로 그 칼럼의 내용에 동의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겠다 싶은 우려 때문이었으며, 셋째, 한상대 씨가 린필드 한국학교의 교장으로서 교민 자녀들을 바른 지식으로 가르쳐야 하는 교육자의 위치에 서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상대 씨는 글 서두에서 ‘따지고 보면 그런 사람(박근혜)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의 잘못이 더 크다’ 라고 했습니다. ‘국민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도 아니고, ‘국민의 잘못이 더 크다’?  이건 현 시국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표현입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입니다. 잘못된 표심의 결과였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정당하게 민주주의 국민들로서 한 표를 행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출된 대통령 당선자의 책임은 막중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책임을 하찮게 여기고 측근들과 친구에게 국정을 떠맡기다시피 한 무책임한 대통령을 이제 국민들이 법에 따라 내려앉혀야겠다는 것입니다. 법을 어긴 것은 박근혜 피소추자입니다. 잘못은 국민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녀에게 있습니다.    

이제 한상대씨 글의 논지를 하나 하나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여야 정치인들과 지식인들, 언론들이 모두 강성 노조 등 촛불집회를 선동하는 세력과 동조하며 대통령을 몰아낸 후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머리 굴리기에만 바쁜 사람들이다. 

정말 그럴까요? 우선 아무런 증거자료도 없는 ‘강성 노조 등 촛불집회를 선동하는 세력과의 공조’ 부분은 차치하고라도, 정말 이 정치인, 지식인, 언론들이 박근혜 없는 세상에서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자 이러는 것일까요? 현재 대통령 자리에 있어선 절대 안 될 범죄자를 조속한 시기에 퇴진시키고, 혼란한 정국을 빨리 수습하려는 의도로 보실 수는 없는지요? 이 싸움은 좌파 대 우파도 아니고, 진보 대 보수도 아니지 않습니까? 상식 대 비상식, 정의 대 불의의 문제입니다.

그 썩었다고 하는 ‘정치 검찰’ 조차도 공소장에 박근혜를 ‘공모자’로 올렸습니다.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도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같은 최측근이 박근혜가 공모자임을 증언했고요. 또한 JTBC에서 입수한 최순실의 태블릿 PC는 박근혜가 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범, 또는 공범임을 명확하게 가리키고 있지요. 본격적으로 시작된 특별검사팀도 매일같이 육성녹음과 같은 직간접적인 정황증거들과 증인들의 결정적 증언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오히려 국가보다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머리 굴리기에 여념이 없는 자들은, 검찰 (권력의 시녀), 보수 언론 (권력의 개), 재벌 (정경유착), 국정원 (댓글 민심조작 부대), 뉴라이트 (친일조직), 친박 (환관내시당), 김기춘과 우병우 (악의 축), 그리고 이명박 (‘사.자.방’ 비리 주범), 바로 이들이 아니던가요.  

(2) ‘대통령 사냥 열기’와 ‘포퓰리즘’에 빠져있으며, 도저히 대통령 탄핵 이유가 안 되는 건들을 갖고 마녀 사냥 열기에 휩싸여 있다.  

과연 그럴까요? 박근혜는 이미 수없이 많은 헌법 또는 형법 조항들을 위반했습니다. 국민은 박근혜라는 인물에게 대통령의 권한을 준 것이지, 최순실에게 부여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사권, 연설문 작성, 국정 현안 및 외교정책에 관한 결정에 있어서도 최순실이 실질적인 대통령 고유권한을 행사했고, 박근혜가 이를 방관 또는 묵인했음으로 헌법 제 1조 2항과 헌법 제 67조를 위반했습니다. 이것 만으로도 탄핵감입니다.

또한 헌법 제 71조, 헌법 제 96조에서 말하는 ‘행정권한의 위임 및 위탁에 관한 규정’을 위반했고, 최순실 및 비선의료진이 출입증 없이, 검문검색 없이 청와대를 수시로 출입하며 대통령에게 시술하고 채혈까지 했으니 ‘대통령의 경호에 관한 법률’도 위반했으며, 대통령 기록물 및 비공개문서, 그리고 안보관련 문건까지 최순실에게 건냈으니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까지 어겼습니다.  

이 뿐인가요. 헌법에서 이미 1919년 3월 1일에 대한민국이 건립하였음을 천명하고 있는데, 친일행적 등의 추악한 역사를 세탁하기 위해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 대놓고 칭하고 있으니, 이 또한 헌법과 역사를 부정하는 심각한 매국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독립운동의 전통 위에 세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스스로 자국을 친일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해 세워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4대 요소가 무엇인가요. ‘법치주의의 확립’, ‘자유경쟁의 실현’, ‘기회균등의 보장’, 취약계층의 보호’입니다. 현 대한민국은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국가원수가 친구인 최순실과 함께 이 네 가지의 민주국가 요소들을 모두 깨뜨려 버린 나라입니다. 
박근혜는 심각한 위법자입니다. 그녀에 대한 탄핵 요구는 ‘마녀 사냥’이 아닙니다.

(3) 군중은 우중(愚衆)이다. 그래서 쉽게 폭도(Mob)로도 변할 수 있다. 선동을 잘하면 대중은 히틀러의 나치 때처럼 그룹 히스테리아에 빠지기도 한다. 

지난 2 개월 간에 걸쳐 보여준 광장의 촛불은 전 세계가 칭찬하고 놀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하나의 경외의 대상이었습니다. 100만명 단위 집회가 매주 도심을 가득 채우면서도 물리적 충돌 한 건 벌어지지 않는 집회 양상을 보고 외신은 놀라워하며 보도했고요. 자신들을 막고 있는 경찰들에게조차 따뜻함과 배려를 보인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전무후무한 아름다운 시위문화입니다. 4.19 혁명 이후 처음으로 중고등학생들까지 앞에 섰습니다. 

과거의 촛불 집회들이 정부를 향해 ‘해달라’고 요구하는 양상이었다면, 2016년의 촛불 광장은 ‘우리가 나라의 주인이다’ 라는 자신감과 함께 ‘내려와, 나가라!’ 라고 명령하는 헌법적 권리 주체로서의 재탄생, 재각성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민주시민들이 선동된 우중이라니요. 폭도로도 변할 수 있다니요. 이 곳 시드니에서도 촛불시위가 열리고 있으니, 칼럼니스트께서 한 번 쯤은 참석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민주적으로 얼마나 성숙해져있는지 직접 느껴보실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4) 박근혜는 나름대로 애국심이 있고 나라를 위해 몸바쳐 일해온 여자다. 나는 박근혜가 역대 대통령 중 부정이 가장 없는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친하다고 생각한 측근 최순실이 오버하는 걸 모른 건 죄가 크다. 그러나 대통령 직을 물러날만큼 크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할 말은 너무 많지만, 뇌물죄 부분은 현재 특별검사팀이 조사하고 있는 사안이니 필자의 견해는 여기서 안 밝히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박근혜가 애국심이 있고 나라를 위해 몸바쳐 일해온 여자라고 단정을 지은 칼럼니스트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 기억엔, 국가에 재난상황이 있을 때마다 그녀가 보여준 안일한 자세와 가식적인 태도, 그리고 아랫사람에게만 나무라며 혼을 내던 오만한 모습들만 또렷하게 기억이 납니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이런 자괴감이 들 정도로…’ 라고 얘기한 대목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박근혜는 본인이 국민들에 의해서 선출된 대표가 아니라 마치 자기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걸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근대적이고 반민주적인 개념의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몸바쳐 일했을 리 만무합니다. 온 나라가 ‘세월호 7시간’ 규명에 혈안이 되어있는 판국에3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두고 ‘작년인가, 재작년이었나요?’ 라고 기자들에게 되묻는 이 사람이 과연 정상일까요?  

무엇보다도, 그녀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눈꼽만치라도 있었다면, 추운 겨울에 몇 백만명의 국민들이 주말밤마다 모여 퇴진하라 목놓아 외치는데, 눈 감고, 귀 닫고, 관저에 틀어박혀서 이들이 지쳐 나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국회와 국민의 80% 이상이 그녀의 퇴진을 원합니다. 지지율이 한 자리 수에 불과한 그녀입니다. 나라를 사랑한다면 즉시로 물러나야 혼이 정상이죠.

(5) 헌법재판소는 한국이 법치 국가인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촛불 민심이 법이 되면 안 된다. 판사들이 촛불 민심 압박에 못 이겨 자기의 양심에 어긋나는 판단을 하지 않을 것을 기대한다.

칼럼니스트와 다른 의미로 첫 문장에 동의합니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의 위헌, 위법 행위들을 준엄하게 조사하여 그녀를 반.드.시. 파면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이 법치 국가인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촛불 민심의 압박과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박근혜 피소추자의 대통령으로서의 적법 여부를 판단하여 그녀에 의해 망가진 헌정체제를 복원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헌법재판소는 2004년 故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시에 적용됐던 아래의 원칙을 반드시 고수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은 정당화되는 것이다.”  (헌재2004.05.14. 선고2004헌나1)  

나가는 글
2016년 촛불은 위험한 저항권 대신 단호한 비폭력을 선택했습니다. 광장은 절묘하고 현명한 방법으로 국회를 압박하며 압도적인 찬성표로 탄핵 소추를 이끌어냈습니다. 국법에 근거하여 국민이 나라의 주권자임을 재차 행사한 것이죠. 주권자가 입법부를 시켜 통치자에게 해고 통지를 보낸 것입니다.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일제에 저항한 만세운동, 타락한 이승만 독재에 항거한 4.19 혁명,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의 퇴진을 요구했던 피의 5.18 광주 민주항쟁,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1987년 6월 항쟁….. 2016년의 광장촛불은 이 역사적인 항쟁들의 연장선에 숭고하게 서 있습니다.

이제 이 성숙한 대한민국의 민주시민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헌법재판소의 최종결정을 지켜볼 것입니다. 박근혜 퇴진과 구속 이후에도, 대한민국 곳곳에 뿌리내려져 있는 70년 묵은 적폐들이 깨끗이 청소되는 그 날까지 이들은 계속해서 촛불을 들 것입니다. 

한모세(St. Columba’s 호주 장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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