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떠들썩했던 정치인 여행경비(출장비) 스캔들이 결국 수잔 리(Sussan Ley) 의원의 보건장관 사임과 소폭 개각으로 일단락되는 듯 하다. 리 전 장관은 여행경비 혜택을 남용했고 장관 윤리규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있었고 결국 그 후폭풍으로 장관직에서 낙마를 했다. 
턴불 총리에게는 장관 1명 사퇴로 이 스캔들을 마무리한 것이 한편으로 다행일 수 있다. 턴불 총리는 “리 의원이 장관직을 사퇴한 것은 정부를 위한 적절한 행동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리 의원은 “규정 안에서 경비를 청구했으며 위반 사항이 없었다”고 항변을 하면서도 턴불 정부의 안정을 위해 장관직 사퇴를 선택했다. 이 파문을 계기로 리 전 장관 외 다수의 여야 의원들(대부분 장관들)도 유사한 여행경비 논란의 대상임이 드러났다.

호주 연방 및 주의회 정치권에서 여행경비 스캔들은 반복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최근 사례는 2015년 토니 애봇 총리 시절, 브론윈 비숍 전 하원의장의 헬기 대여 파문이다. 비숍 전 의장은 멜번의 한 골프클럽에서 열린 자유당 모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의회 의전 차량을 대신 헬기를 대여해 말썽의 주인공이 됐다. 결국 이 파문으로 그녀는 하원의장을 사퇴했고 자유당 공천도 받지 못한 채 정계를 은퇴했다.  

이번 파문과 관련, 턴불 총리는 의회혜택제도의 개혁안을 발표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라고 판단한다. 개혁안의 골자는 영국에서 도입한 의원 경비 심사제도다. 고든 브라운 총리 시절인 2009년 영국 의회에서 의원들의 경비 스캔들이 터져 국민들이 크게 분노했고 대안으로 독립의회규범감독국(Independent Parliamentary Standards Authority)이 발족됐다. 
 
호주 의회에서는 비숍 전 하원의장의 ‘헬기 게이트(Choppergate scandal)’ 이후 건의안이 정부에 전달됐는데 2년도 안 돼 또 다시 파문이 커지자 턴불 총리가 개혁안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골자는 독립 감독 기관을 신설해 자문과 감독을 하도록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다. 감독 기관은 전직 판사. 전직 의원, 봉급 심판위원회(Remuneration Tribunal) 위원장, 회계전문가 등으로 구성된다.  
의원들은 예산부가 관리하는 현행 제도와 달리 여행 경비 청구에서 모호한 경우, 감독 기관으로부터 유권 해석을 얻을 수 있다. 종종 초정 받은 행사 참석의 목적이 모호할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 감독 기관에 유권 해석을 의뢰하면 문제 소지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또 종전까지 6개월 단위로 해 온 의회 경비를 월별로 공개할 계획이다. 빈번한 자료 공개로 제도의 투명성(system's transparency)이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턴불 총리가 발표한 개혁안에서 경비 청구의 주목적이 의정 활동 수행으로 제한된다. 정당의 행정 및 관리, 정당 후원금 모금, 상업적 이익 추구 또는 개인적 혜택을 받는 활동은 제외된다.  
제도의 법적 강제성도 커진다. 의원들이 혜택을 남용하는 경우 25%의 페널티를 추가해 환불해야 한다. 의원들의 ‘권리(parliamentary entitlements)’란 명칭도 ‘활동 경비(work expenses)’로 변경된다. 공익을 위한 활동을 하는 대신 의무를 수행하기 위한 재원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혁안의 장점은 제도의 단순화, 규칙 및 투명성 강화, 페널티 도입 등이다.  

개혁안이 시행될 때, 호주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이 공금으로 헬기나 민간 항공기를 동원해 사적 문제를 처리하는 사례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개혁안은 선출직 의원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재구축하는 중요한 첫 단계가 될 것이다. 호주 정계에서 책임 정치 원칙이 살아있음을 입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최근 여행 경비 스캔들로 낙마를 한 정치인들은 브론윈 비숍 전 하원의장과 수잔 리 전 보건장관으로 우연이겠지만 유독 여성 의원들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18일 한국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조 장관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의혹을 받고 있다. 또 국회 청문회 위증 혐의도 있다. 정무수석 시절에는 관제 데모까지 부추긴 의혹도 나오고 있다. 문체부는 1년 앞으로 다가온 국가적 행사인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준비 등 현안이 산적해 있는 가운데 현직 주무 장관이 구속될지도 모르는 전례가 없는 상황에 놓였다. 
한국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호주 연방 의원들의 여행경비 스캔들은 비교 대상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관련 의혹을 부인하다 쇠고랑을 차지 않고 잘못이나 판단 착오, 실수를 인정하고 자리에 물러나는 모습이 호주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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