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 ‘오스트레일리아 데이(Australia Day)’는 호주에 영국인 등 유럽계가 정착하며 앵글로계 국가 시스템(입헌군주제)과 제도, 사회관습, 문화가 뿌리를 내린 것을 기념하는 경축일이다. 흔히 건국일로도 부른다. 정부 단위(연방, 주정부, 지자체)로 올해의 호주인 시상식(Australian of the Year Awards), 시민권 수여행사, 오스트레일리아 데이 연설과 오찬, BBQ 등 다양한 이벤트가 있다. 
올해는 목요일인 관계로 27일(금) 휴가를 내면 4일(목~일)동안의 황금연휴가 된다.

물론 이 땅의 원래 주인인 원주민들(Aborigines)에게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백인 정착 이후 수많은 죽음을 초래한 ‘침략일(Invasion Day)'이며 ‘통탄스러운 날(Day of mourning)’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호주 헌법을 개정해 하루빨리 원주민에 대해 인정을 하는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 

호주 수도에 있는 켄버라 시어터센터(Canberra Theatre Centre)가 오스트레일리아 데이와 관련해 시끄럽다. 센터 전면에 히잡을 쓴 2명의 무슬림 소녀들이 호주 국기를 든 사진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데이를 축하한다(Happy Australia Day 2017)’란 문구가 들어간 홍보 간판을 내걸었다. 
ACT 준주 정부는 ‘다문화주의의 멋진 사례(wonderful example of multiculturalism)’라고 호평했다. 23일 ACT준주 정부는 “26일까지 켄버라 중심부에 대형 스크린에 이 광고판을 부착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입장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러자 소셜미디어에는 “망할 놈의 간판을 태워버려라!(Burn that sh*t down!)", ”폭파하라“는 등 극단적인 욕설과 협박이 등장했다. 이에 이 포스팅을 삭제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반 이슬람 단체인 리스펙트 오스트레일리아(Respect Australia)는 ACT 준주 정부를 ‘호주에 반대하는(un-Australian)’ 정부라고 비난하며 회원들에게 시어터 연락처를 전달해 항의를 하도록 유도했다. 이 광고판이 멜번 남동부에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광고회사 협박이 시작됐다.   
앤드류 바(Andrew Barr) ACT 수석장관(노동당)은 “이런 협박에 절대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커뮤니티에나 인종차별주의적 촌놈들(racist rednecks)은 있기 마련이다. 폭파 위협이 있다면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한다. 켄버라 시민들 다수가 빌보드를 지지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반박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데이에는 청소년들이(특히 백인들, 지방에서) 호주 국기를 몸에 휘감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우월감을 나타내는 행동을 하거나 술에 취해 욕설을 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비영어권 이민자를 배척하는 행동도 종종 보였다. 마치 이날만큼은 방종이나 인종차별 행위가 어느 정도 허용된다는 뉘앙스를 풍긴 것이다. 

또 이날은 호주의 ‘국가적 정체성(national identity)’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기도 한다. 올해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지난 주 극우 파시스트 그룹인 연합애국자전선(United Patriots Front)이 빅토리아에서 히잡을 착용한 무슬림 소녀(5세) 두 명이 호주 국기를 흔드는 것을 공격했다. 이 단체의 추종자들은 국가 의미를 재정의하고 점차적으로 백인계 호주인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한다. 소셜미디어 펀드 모금 켐페인을 통해 이미 15만 달러 이상을 마련했다. 빌보드를 활성화와 주요 신문 광고를 할 계획이다.  

국가적 정체성과 호주 가치관은 종종 정치인들과 극우주의자들이 이용하는 단골 메뉴가 된다. 다양한 외국인혐오주의(xenophobia)로 비백인 소수그룹을 소외시키기도 한다. 최근 무슬림 호주인들이 타깃이 된 사례는 너무 많아 재론이 불필요할 정도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 영국의 브렉시트(EU 탈퇴), 호주에서 폴린 핸슨의 원내이션당 지지율 급등 등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대세를 이룰 경우, 국수주의와 외국인혐오주의가 판을 칠 수 있다. 
국가적 정체성을 만들거나 파괴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봅 호크와 폴 키팅 정부 시절(노동당) 국가적 다양성은 축하를 받을만 했다. 포용과 동정이 정치적 규범이었다. 호주 국기는 국가적 단합의 중요한 상징으로 기억됐다. 
그러나 다양한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적대감은 하워드 정부(자유-국민 연립정부) 시절에 그 씨앗이 심어졌다. 9.11 테러 참사에서, 2005년 시드니 남부 크로눌라 폭동(Cronulla Riots)를 통해 인종차별주의 무대 뒤에서 전면으로 나왔다. 
당시 존 하워드 총리는 지금도 인종차별주의자 건달들이 사용하는 국기의 남용을  규탄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보다 넓은 커뮤니티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호주 국기를 인종차별주의, 증오, 배제(소외)의 표현으로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호주 국기를 전용하려는 우파 극단주의자들의 계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민자들은 호주 국기를 분열과 인종차별주의의 상징으로서 보지 않는다. 호주 국기를 들고 있는 멜번의 무슬림 소녀들을 볼 때도 국기 이상의 국가적 단합을 구체화하는 싱징물은 없다.  
오스트레일리아 데이를 맞아 이민자들이 호주 국기를 인종차별주의적 건달들과 외국인 혐오주의자들로부터 되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자부심을 갖고 호주 국기를 전시하도록 권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인종, 피부색, 계급, 문화와 무관하게 모든 호주인들이 단합을 하는 것을 축하하는 방법이다. 

호주가 자랑하는 사회 요소 중 하나가 다문화주의다. 다양성(diversity)에는 한편으로 포용성, 포괄성이란 의미가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소통을 통해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포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양성이 빛을 발할 수 있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차단하고 배타적이 되기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실 너무나 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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