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첫 공연, ‘찔레꽃’ 향기 진하게 흩뿌려지다

가왕 조용필, 젊은 윤도현, 함께 공연한 적이 있는 원로 이미자 등을 언급하며 혹시 가수 중에 누굴 좋아하느냐고 그에게 질문했다. “방금 말씀허신 분들 다 좋아혀유…” 충청도 사투리가 구수하게 배어나온다. 그러면서 불쑥 최백호를 얘기한다. “최백호가 최근 내 얼굴을 그려가지고 왔는데 무려 1년이나 걸렸대요.”
질문에 대한 답대신 뜬금없는, ‘가수가 그린 그림얘기’를 한다. 사익을 통해 오랫동안 잊고 있던 백호소식을 듣는 것이 신기하면서 둘의 접점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장사익의 입을 통해서는 기대했던 답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걸 그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않아 이해할 수 있었다. 호불호를 말하지 않을 사람. 이 것 때문에 좋고 저 것 때문에 싫고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오면 만나고 가면 보내주고 마음에 들어와 앉으면 벗하고, 가을이 되면 자신이 가을이 되고 봄이 오면 그렇게 꽃이 되어 노래하는 이. 노래가 시이고 시가 그의 삶인 사람이 장사익이다.
토해낼 것밖에 없는 모진 삶들을 살아가고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찔레꽃에 비유해 노래했던, 그가 호주 첫 공연을 앞두고 주최측인 한호일보 기자와 만났다. 

장사익은 달링하버 전경이 빼어난 레스토랑에 기자가 들어서자 타국에 온 흥분이 진하게 배어있는 ‘24명의 대식구들을 향해 “아! 잠시 주목혀봐유. 여기 기자양반이 오셨네!”
인사대신 명함 한 장 내밀고 식구인양 사알짝 그 무리에 스며들려 했는데 단박에 부끄럽다. 산해진미가 풍성히 놓인 식탁에서 “공연을 앞두고 과식하지 않겠다고 우리 와이프랑 약속을 혀서 안되유”하며 “엇따 이거 진짜 맛있겄네. 어서 많이 들어~” 대식구들 챙기느라 분주한 모습에서 ‘스타 모습’을 도무지 읽을 수 없다.

- 많은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일본 나고야에 말기 암이라 오늘 내일할만큼 병이 위중한 친구가 있었어요. 내 노래를 너무 좋아하니까 이 친구를 위해 일본에 가서 공연을 혀야겄다하고 일본에 간거죠. 2001년 2월 24일, 25일 공연날을 잡고 그 전날 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거의 임종을 앞둘만큼 상황이 안 좋더라구요. 그래서 그랬죠. 널 생각험서 공연을 허겄다. 그러고 돌아와서 다음 날 리허설하고 있는디 친구가 걸어서 공연장을 들어오는 거에요. 깜짝 놀랐죠. 그 전날 앉아있을 수도 없이 쇠약했던 친구가 누구 부축도 받지 않고 공연장을 들어오니까. 그래서 본 공연 전에 그 친구 한 명을 놓고 공연을 헌 거에요. 그 친구 한 사람을 위해. 그 친구는 다시 본 공연 마칠 때까지 꼿꼿이 앉아 있더군요. 기적같은 일이죠. 그리고 나서 3월 1일 친구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친구의 가는 길을 그는 노래로 ‘봄날’처럼 함께 갔다. 

- 첫 호주 공연인데 다른 해외 공연과 다른 점이 있다면요.
“공연은 언제나 설레요. 호주 공연은 처음이라 더 설레죠. 내 노래를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제가 사실 오래 전에 이민 온 분들한테는 낯설잖아요. 또 십대 아이돌도 아니고. 한호일보 신 발행인께서 한국에서 제 공연을 보시고는 어느 날 찾아와 호주에서 꼭 제 공연을 해야겠다는 거에요. 반신반의 했죠. 왜냐면 공연하자고하는 사람은 많거든요. 대식구(20여명 연주단)가 움직여야하니까 사실 주최측으로서는 큰 부담이 되는 일이라 마음만 갖고 할 수 없는게 저희 공연이에요. 그래서 제가 오히려 말렸다니까요. 그런데 호주 교민들을 위해서 꼭 내 공연을 하고 싶다, 제 노래의 힘을 믿고 ‘일을 저지르신거쟎아유’. 문화에 대한 투자, 귀한 일이지요. 한국의 노래를 지대로 호주사람들에게 한국동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난 2천석이든 열석이든 얼마나 많이 와서 성공적인 음악회였나보다 나를 좋아하는 그 사람들을 위해 유행가가 아니라 노래를 불러주고 싶어요."

- 다 노래아닌가요? 유행가가 아니라면 노래란 무엇을 의미하나요.
"내 노래는 유행가가 아니죠. 판소리도 아니고 뭐라고 규정할 수 있는 장르가 없쟎아유. 인생인거죠. 사랑, 자연, 죽음, 고향, 어머니.. 그런 우리네 풍성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삶의 에너지, 생명력을 얻고 위안 받았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다음 날(21일) 시티 리사이틀 홀에서 열린 라이브 콘서트에서 장사익은 그의 노래 가사 중 ‘가는 길을 아는 이’처럼 새하얀 한복과 고무신을 신고 등장했다. 그는 동포 관객들에게 “이국 땅에서의 외로움, 설움을 이기며 즐겁게 살라”면서 ‘찔레꽃’ 향기가 물씬한 감동의 무대를 선보였다.
'인생을 알고서 가수가 됐다는' 장사익의 두번 째 시드니 공연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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