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9대 대통령선거 재외투표가 25일 시작돼 30일(일) 종료된다. 대통령 탄핵으로 비롯된 한국 헌정사상 초유의 조기대선이란 점에서 호주를 비롯 대부분의 나라에서 투표 참가율이 지난 대선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시드니 한인 커뮤니티도 대통령 탄핵 및 구속기소,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진 극심한 분열 등 지난 몇 달 한국을 휩쓸고 간 악몽 같은 혼란을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재외유권자들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며 바른 선택으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를 기대한다. 

이번 대선은 선거기간이 짧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후보들은 단기간에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설익은 정책들을 남발하고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좌충우돌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유권자들은 각 후보의 정책이나 비전을 충분히 검토할 여유도 없이 서둘러 지지 후보를 결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재외유권자들은 공식선거일인 5월9일보다 2주나 일찍 투표해야 하니 더 밀도 있게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출신 지역이나 좌우 이념 등에 기초한 선입관으로 지도자를 뽑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는 충분히 확인되었다. 투표에 앞서 후보들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호주에 살면서 한국의 후보들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온-오프 라인의 미디어를 통해 슬로건이나 공약들만 보고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후보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싶은데, 이번 선거에는 다행히 그런 기회가 있다. TV토론이다. 후보들이 사전 원고나 자료 없이 즉석에서 묻고 대답하며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TV토론은 후보들의 민낯을 보는 좋은 기회이다. 2시간 토론을 보면 각 후보의 인품, 능력, 철학 혹은 정체성을 대충은 판단할 수 있다. 새로운 눈으로 새롭게 후보들을 검증해야 하겠다. 검증을 제대로 못해 난리를 겪은 뼈아픈 실책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선거기간이 짧다보니 재외동포 공약들은 한마디로 성의가 없다. 재탕에 재탕이다. 재외동포 정책 총괄기구로 재외동포청 혹은 대통령 직속 재외국민 위원회 설립, 재외국민 보호법 제정, 복수국적 대상 확대 등 후보마다 거기서 거기다. 이들 공약은 선거철마다 나왔다가 아무 진전 없이 사라지기를 여러 번 여러 해 반복했다. 재외유권자들은 한국 정치인들에게 아직 존재감이 없다는 반증이다. 그나마 이번은 조기 대선이기 때문에 인수위원회가 없다는 점에서 유력 후보들이 공약한 재외동포청 공약이 실현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번 선거는 이런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기회이다. 재외등록 유권자가 근 30만이다. 이만하면 캐스팅보트 역할은 가능하다. 30만이 다 같이 목소리를 내면 표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호주의 1만2천여 유권자들부터 책임감을 가지고 반드시 투표하는 본을 보이기를 당부한다. 재외동포로서 존중받고 싶다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목소리가 곧 투표이다. 해외 동포 입장에서 ‘투표 외면’의 대가를 생생이 보아왔다.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 했던 2,500년 전 플라톤의 경고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무쪼록 5.9 조기 대선이 한국의 ‘사회적 갈등(social conflicts)’을 완화하고 새로운 도약을 하는 역사적 계기가 됐으면 한다. 
호주에서도 투표소가 4개(시드니, 브리즈번, 멜번, 켄버라)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참정권의 소중함은 잘 알지만 그것을 행사하는 데는 정신적 물리적으로 적지 않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다음 선거에서는 이런 불편이 줄어들도록 선거법도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투표율이 높을수록 정치인들은 국민들 눈치를 보게 돼 있다. 감시의 눈이 그만큼 매섭게 작동하고 있다는 걸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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